선유도....팬션 소개좀 해주세요~~~
- [서경]뮤즈
- 1850
- 10
인터넷에서 찾아보니...전부 다 좋다고 올려져 있기는 한데...막상 가보면 실망한 적이 많아서..ㅡㅡ;;
가격 저렴하고...시설좋고...경치도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은 마당과...바닷가가 바로 앞에 보이는....그런 환상 적인 곳으로~~~~
음....좀 무리한 듯 하지만....그래도...부탁드려봅니다...^^;;
가격 저렴하고...시설좋고...경치도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은 마당과...바닷가가 바로 앞에 보이는....그런 환상 적인 곳으로~~~~
음....좀 무리한 듯 하지만....그래도...부탁드려봅니다...^^;;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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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정말 그 선유도 공원이에요? ;;;
고창 선유도아닌가???
헛.. 뮤즈님... 그러게여...
제가 다른 횐분들께는 안그러는데...
왜... 왜... 뮤즈님만... ㅡ.ㅡ;;a
^___________^
근데, 선유도에는 우리가 흔히 팬션이라고 생각하는 이쁜 그런 방은 없을거에여...
제가 알기로는 민박수준이 대부분이던데욤...
ㅡ.ㅡ;;;a
이쁜 숙소를 원하신다믄,
아무래도 다른 곳을...
제가 다른 횐분들께는 안그러는데...
왜... 왜... 뮤즈님만... ㅡ.ㅡ;;a
^___________^
근데, 선유도에는 우리가 흔히 팬션이라고 생각하는 이쁜 그런 방은 없을거에여...
제가 알기로는 민박수준이 대부분이던데욤...
ㅡ.ㅡ;;;a
이쁜 숙소를 원하신다믄,
아무래도 다른 곳을...
바다가보이는 선유도라면 어디지욤? ㅡ.ㅡ
(귓속말) 자다가 깨서 한강을 바다로... ㅡ.ㅡ;;;a
선유도는 전라북도 군산시에 속해 있습니다.. ^^
고군산군도에 위치한 많은 섬 중에 가장큰섬 선유도
수정같이 맑은 물, 곱다 못해 눈이 부시기까지 하는 모래밭, 바위섬에 부딛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사이로 아름아름 유서와 전설이 배어있는 고군산군도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길이 1.2킬로미터 폭 50미터 규모의 명사십리 모래밭을 가진 서해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주변의 경관은 신선이 감탄하며 즐겁게 놀 정도라고 할 만하다.
선유도는 행정편의상 1, 2, 3구로 구분하고 있으나 실제 지명은 지형과 연관되어 지어진 이름이다. 선유도 북단에 해발 100여m의 선유봉이 있는데 그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선유도라 불리워지게 되었다.
선유도의 수군 절제사가 진을 치고 있었던 진말(본 마을)이 있으며 통정대부까지 벼슬한 사람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통리(일명:통개)라 부르며 주민들이 촌락을 새로 형성했다하여 샛터라하고, 본마을과 밭을 사이에 두고 있다하여 밭너머를 한문으로 전월리(田越里)라 부른다.
남쪽의 산밑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남악리(南岳里)라 부르고 있는 등 총 5개의 자연부락을 형성하고 있다. 선유도 주위를 둘러싼 무인도로는 쑥섬(일명 닭섬), 앞삼섬(3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장구삼섬(장구모양으로 생긴 섬이라고 해서), 쥐삼섬(쥐가 기어가는 모습)등이 있으며, 이중 장구삼섬은 선유도의 바로 앞에 있는 무녀도의 무녀봉과 한쌍이 되어 무당이 춤을 추고 장구치는 모습의 형상을하고 있다고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다.
선유도는 본래 '군산도(群山島)'라고 불리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려·송무역로(麗·宋貿易路)의 기항지(寄港地)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해안 연안항로의 거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군산도(현 선유도)에 수군진영이 창설되었고 세종초기에는 이곳의 군산진이 옥구현 북쪽 진포로 이동하면서 '군산'이란 명칭까지 옮겨 가므로써 이곳을 '고군산도'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군제도의 변천에 따라 이곳의 수군진은 존폐를 반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선조 2년(1569)에는 이곳에 수군절제사를 두어 인접한 8개군을 관할케 한 일이 있었고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잠시 육지로 피난하였다가 다시 선조 33년(1600)에는 이곳에 감사를 두어 수군절제사가 통할 당시의 동일지역을 관할케 하였던 것이다
.
그 후 인조 2년(1624)에는 별장진을 두었고, 숙종 원년-9년(1675∼1683)에는 고군산진을 각각 신설하기도 하였다.
진말동산에는 당시의 동헌건물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1932년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어 없어졌고 그 유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특히 선유도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에서 크게 승첩을 거두고 이곳 고군산도에 찾아와 열하루동안(1597 9.21∼10.3) 머물면서 명량해전의 승첩을 조정에 보고하기 위한 장계를 초안하여 서울로 보냈고, 왜란 중에 아산 본댁이 왜적들에게 분탕질을 당해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 등 충무공의 통한이 서린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이곳의 수군진터에서 동편 건너, 망주봉 아래에 있는 오룡묘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제신당으로서 그 옛날에는 이곳에 기항하는 항해선들도 해로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처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선유도는 연안해로의 거점이요 관방의 요충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관도 빼어나서 고군산 팔경이 모두 이곳에 집중되어 있으니 과연 신선이 노닐만한 선경인 것이다.
(출처 : '섬이야기' - 네이버 지식iN)
선유도는 전라북도 군산시에 속해 있습니다.. ^^
고군산군도에 위치한 많은 섬 중에 가장큰섬 선유도
수정같이 맑은 물, 곱다 못해 눈이 부시기까지 하는 모래밭, 바위섬에 부딛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사이로 아름아름 유서와 전설이 배어있는 고군산군도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길이 1.2킬로미터 폭 50미터 규모의 명사십리 모래밭을 가진 서해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주변의 경관은 신선이 감탄하며 즐겁게 놀 정도라고 할 만하다.
선유도는 행정편의상 1, 2, 3구로 구분하고 있으나 실제 지명은 지형과 연관되어 지어진 이름이다. 선유도 북단에 해발 100여m의 선유봉이 있는데 그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선유도라 불리워지게 되었다.
선유도의 수군 절제사가 진을 치고 있었던 진말(본 마을)이 있으며 통정대부까지 벼슬한 사람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통리(일명:통개)라 부르며 주민들이 촌락을 새로 형성했다하여 샛터라하고, 본마을과 밭을 사이에 두고 있다하여 밭너머를 한문으로 전월리(田越里)라 부른다.
남쪽의 산밑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남악리(南岳里)라 부르고 있는 등 총 5개의 자연부락을 형성하고 있다. 선유도 주위를 둘러싼 무인도로는 쑥섬(일명 닭섬), 앞삼섬(3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장구삼섬(장구모양으로 생긴 섬이라고 해서), 쥐삼섬(쥐가 기어가는 모습)등이 있으며, 이중 장구삼섬은 선유도의 바로 앞에 있는 무녀도의 무녀봉과 한쌍이 되어 무당이 춤을 추고 장구치는 모습의 형상을하고 있다고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다.
선유도는 본래 '군산도(群山島)'라고 불리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려·송무역로(麗·宋貿易路)의 기항지(寄港地)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해안 연안항로의 거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군산도(현 선유도)에 수군진영이 창설되었고 세종초기에는 이곳의 군산진이 옥구현 북쪽 진포로 이동하면서 '군산'이란 명칭까지 옮겨 가므로써 이곳을 '고군산도'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군제도의 변천에 따라 이곳의 수군진은 존폐를 반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선조 2년(1569)에는 이곳에 수군절제사를 두어 인접한 8개군을 관할케 한 일이 있었고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잠시 육지로 피난하였다가 다시 선조 33년(1600)에는 이곳에 감사를 두어 수군절제사가 통할 당시의 동일지역을 관할케 하였던 것이다
.
그 후 인조 2년(1624)에는 별장진을 두었고, 숙종 원년-9년(1675∼1683)에는 고군산진을 각각 신설하기도 하였다.
진말동산에는 당시의 동헌건물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1932년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어 없어졌고 그 유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특히 선유도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에서 크게 승첩을 거두고 이곳 고군산도에 찾아와 열하루동안(1597 9.21∼10.3) 머물면서 명량해전의 승첩을 조정에 보고하기 위한 장계를 초안하여 서울로 보냈고, 왜란 중에 아산 본댁이 왜적들에게 분탕질을 당해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 등 충무공의 통한이 서린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이곳의 수군진터에서 동편 건너, 망주봉 아래에 있는 오룡묘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제신당으로서 그 옛날에는 이곳에 기항하는 항해선들도 해로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처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선유도는 연안해로의 거점이요 관방의 요충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관도 빼어나서 고군산 팔경이 모두 이곳에 집중되어 있으니 과연 신선이 노닐만한 선경인 것이다.
(출처 : '섬이야기' - 네이버 지식iN)
난 왜 자꾸..이런 글을 보면...이런 말이 떠오르지..--;
"오빠~ 손만잡고 잘꺼야~"
"오빠~ 손만잡고 잘꺼야~"
('' 영석아빠님의 유머를 정리하자면...
모텔 앞에서 두 여인...
남 : 괜찮아~ 오빠 못 믿어?
여 : .....
남 : 걱정마!! 오빠 손만 잡고 잘께... ^0^
여 : 정말? 이상한 짓하면 오빤 짐승~!!
남 : 그럼 그럼~~
하지만 남자는 정말 손만 잡고 잔다 -_-+
여 : 짐승만도 못한 X
ㅎㅎㅎㅎ
모텔 앞에서 두 여인...
남 : 괜찮아~ 오빠 못 믿어?
여 : .....
남 : 걱정마!! 오빠 손만 잡고 잘께... ^0^
여 : 정말? 이상한 짓하면 오빤 짐승~!!
남 : 그럼 그럼~~
하지만 남자는 정말 손만 잡고 잔다 -_-+
여 : 짐승만도 못한 X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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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 위에 있을텐데... ㅡ.ㅡ;;;a
ㅋㅋㅋ
대학때 가본 기억은 있는데,
그땐 민박을... ㅡ.ㅡ;;;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