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태극기?… 독립기념관의 '헛발질'
- [경]庚寅白虎[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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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9일 (금) 02:43 조선일보
28일 독립기념관이“최초의 태극기 원형”이라며 공개했다가“국기로서의 첫 태극기 원형”이라고 말을 바꾼 1882년 11월의 태극기〈왼쪽〉. 이 태극기보다 4개월 전인 1882년 7월 미국 해군부의‘해양 국가들의 깃발’에 이미 비슷한 태극기가 수록돼 있다〈오른쪽>.
27일 "1882년 11월에 나온 원형 자료 입수" 발표 '그보다 넉달 앞선 태극기 있다'는 지적 받고선 어제 "최초의 태극기는 아니었다" 말바꿔
3·1절을 앞두고 '최초(最初)' 또는 '최고(最古)'라는 타이틀을 내건 옛 자료들이 우후죽순처럼 공개되고 있지만, 적잖은 자료가 최초가 아니거나 이미 공개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새로 입수한 태극기 자료를 '최초 태극기의 원형'이라고 발표했다가 "최초가 아니다"고 말을 바꿨다.
독립기념관은 27일 각 언론사에 '독립기념관, 최초의 태극기 원형 발굴 공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자료는 "(이번 자료 공개로) 그간의 태극기 원형을 둘러싼 논란이 결말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이 태극기는 1882년 11월 1일 일본 외무차관이 주일 영국공사에게 보낸 문서에 첨부돼 있다. 중앙에 태극을, 네 모서리에 사괘(四卦)를 그려 놓았다. 독립기념관측은 28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이 태극기의 복사본을 공개한 뒤 "1882년 9월 25일 수신사 박영효(朴泳孝)가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서 만들었던 태극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최초의 태극기 원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간담회 도중 독립기념관측은 "최초의 태극기인 것은 아니다"며 보도자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수정했다. 이번 자료보다 4개월 앞선 1882년 7월 미국 해군부(Navy Department)에서 출간한 '해양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에 이번 자료와 비슷한 형태의 태극기 그림이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독립기념관과 함께 이번 자료를 발굴한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이에 대해 "최초의 태극기가 아니라 '국기(國旗)로서의 자격을 갖춘 최초의 태극기'가 맞다"고 말했다. 간담회 시작 때 "최초의 태극기를 발굴했다"고 했던 김삼웅 관장도 이후 "최초의 국기"라고 수정했다. 그러나 태극기 연구의 권위자인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1882년 7월 자료는 2개월 전 조미(朝美) 수호통상조약 당시 성조기와 함께 게양됐던 깃발로서 당연히 '국기'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태진 서울대 인문대학장은 "'최초'나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은 자료일수록 크게 보도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만큼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친 뒤에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2월 28일 독립기념관의 기자간담회 자리. "최초의 태극기가 아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지적에 한철호 동국대 교수(맨 왼쪽)는 보도자료 제목을 펜으로 수정해 가며 "그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 오른쪽은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다. /유석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