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지난 6일 정유사의 기름 값 리터(L)당100원 할인이 끝난 뒤 나타난 현상이다. 서울 지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2개월여 만에 L당 2000원을 다시 넘어섰다. 지난 12일 하루에만 휘발유 가격이 L당 15원이나 뛰었다. 전국에서 기름 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서울 여의도와 삼성동에는 L당 2300원(휘발유)을 받는 주유소까지 등장했다.

미국 금융전문지 배런스는 "내년 봄이면 국제유가가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 같은 환율이 유지되고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한다면 연말이면 서울 휘발유 가격이 L당 3000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치솟는 기름 값, 손 놓은 정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3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날보다 L당 2.62원 오른 1930.78원을 기록, 두 달 만에 1930원대로 올라섰다. 서울 지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은 L당 2017.67원으로 2000원을 돌파하며 두 달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기업 '팔 비틀기'와 국민들에게 고통을 분담시킨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 등 정유 4사(社)를 강하게 압박해 지난 4월 7일부터 3개월 동안 기름 값을 L당 100원 할인하도록 했다. 정유 4사는 기름 값 할인으로 약 8000억원의 손해를 감수했다. 국민들에게도 고통을 분담시켰다. 여름철 냉방 전력 수요 증가를 앞두고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호텔·마트 등에 대해 냉방 온도를 섭씨 26도로 제한하도록 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유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건 민간에 부담을 떠넘긴 것뿐이고 정부가 고통을 분담한 건 전무하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원유 수입 관세 인하는 부처 간 이견(異見)으로 벽에 부딪혔다. 정부가 자랑했던 국제 비축유 방출 효과도 사실상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휘발유 값이 (L당) 2000원은 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정유사와 주유소에 가격 상한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압박했다. 하지만 이튿날인 12일 서울 지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2013.89원을 기록하며 박 장관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기름 값, 유류세 내렸던 2008년보다 더 심각해

현재 기름 값은 정부가 유류세 한시 인하 조치를 발표했던 2008년 2월보다 높다.

2008년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단행할 당시 두바이유는 배럴당 90달러 초반대였다. 그해 여름 140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08년 연간으로 두바이유는 배럴당 94.29달러였다. 올해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105달러까지 올랐다.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2008년 2월 940원에서 1066원으로 올랐다. 그만큼 정유사들이 원유 수입에 드는 비용이 높아졌고, 국내 기름 값 급등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2008년 2월 유류세를 내리기 전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가격은 L당 1660원이었지만 국제 석유가격 상승과 환율 상승으로 현재 휘발유 가격은 L당 1930원까지 높아졌다. 국민들의 유류세와 부가세 부담도 2008년 2월 L당 884.79원에서 현재 L당 906.25원으로 21원 정도 커졌다. 기름 값에서 세금 비중이 50% 정도를 차지하다 보니 국제 유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국내 기름 값 상승에는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세대 김정식 교수는 "정부가 기름 값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카드는 관세나 유류세 인하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유류세 인하를 요구했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 연구본부장은 "유류세 일괄 인하는 국가재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며 "트럭이나 화훼농가 등 기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