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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Interneeds™

자유 한가더~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대하여~~ ^^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관하여 나름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내용이 길기 때문에, 시간날때 읽어보시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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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카스트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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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계급제도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각기 다른 형태로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도 인도에서는 카스트제도라는 형태로 이 계급제도가 남아 있다라는 사실은 아주 의구심으로 남아있다.  카스트 제도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는 의구심도 있지만, 그 보다 앞서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날 까지 이 제도가 붕괴 되지 않고 세습 될 수 있었는지는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인도의 카스트제도 구조와 성립과 발달에 관한 사항과 함께 카스트를 지지하는 사상들에 관해서 연구해 보기로 한다.


2. 바르나와 자띠
  B.C.300년 경 마우리아왕조의 수도를 방문한 그리스인 메가스테네스는 귀국 후에 저술한 『인도지』라는 책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인도에는 ①철학자 ②경작자 ③목축인·수렵인 ④직공·상인 ⑤전사 ⑥감시관 ⑦고문관·협의관 등으로 7종류의 집단이 존재한다.  인도인인 모두 이 일곱 집단 가운데 어느 하나에 종사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집단과의 통혼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7세기 경에 인도를 여행한 중국의 승려 현장은 『대당서역기』에서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인도에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라고 하는 네 신분이 있는데, 그들은 각각 전혀 별개의 사회집단이다.  결혼은 각 신분 안에서 또는 그들이 구성하는 집단 내부에서만 행해진다.  사종성에 속하지 않는 잡성도 아주 많으며 각각의 종성은 함께 모여 살고 있다.”
  또한 11세기 전반에 인도를 여행한 이슬람교도 알 비르니도 『인도기』에서 이와 같은 사회제도에 관해 언급했다.
  1948년 바스코 다가마가 바닷길로 인도의 서남해안 칼리커트에 도착하여 유럽제국과 인도와의 직접적인 교섭이 시작되었다.  최초로 인도의 땅을 밟은 이 포르투갈인들은 얼마 안 있어 이 지역사회가 결혼에 대해 배타적인 내혼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았다.  인도인들 사이에서는 이 집단이 탄생을 같이하는 집단이라는 뜻에서 ‘자띠’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포르투갈인은 이것을 자기나라말로 ‘가문’,‘혈통’,‘종족’을 뜻하는 ‘카스타(Casta)’라는 말로 불렀다.  이보다 늦게 인도를 찾아온 프랑스인이나 영국인들도 이 말을 사용하여 오늘날의 ‘카스트’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카스트라고 하면 현장이 기록한 사종성으로 알려져 있다.  『마누법전』을 시초로 하는 인도의 고전에 의하면, 각 신분의 주요한 의무는 다음과 같이 정해져 있다.
브라만  자신 또는 타인을 위해 제사를 행함. 베다 성전의 학습과 교수, 보수와 수시
크샤트리아  정치나 전투를 통해 백성을 보호하며 자신을 위한 제사를 행함. 베다성전의 학습, 보시
바이샤  농업, 목축, 상업, 금융, 자신을 위한 제사를 행함, 베다 성전의 학습과 보시
수드라  다른 세 신분에의 봉사
  인도 사람들은 이들 네 신분을 바르나라고 불러왔다.  바르나라는 말은 본래 색(色)을 뜻하는데 아리아인이 인도를 침입하였을 때, 피부색이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나타내 주었기 때문에 새로 ‘신분’,‘계급’이라는 의미가 첨가되고 혼혈이 진행되어 피부색이 신분을 나타내는 표지가 되지 않게 된 때에도 이 바르나라는 말은 여전히 신분·계급의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네 가지 바르나 가운데 상위의 세 바르나는 재생족으로도 불리며 여기에 소속된 남자들에게는 10세를 전후로 재생(두 번째 탄생)을 위한 입문식을 거행하여 아리안 사회의 일원으로 베다의 제식에 참가할 자격이 부여된다.  이에 반해 수드라는 재생의식을 거행할 수 없는 일생족으로 종교·사회·경제 등 여려 면에서 차별을 받는다.  그리고 이 수드라보다 아래에 있으며 네 바르나의 틀 밖에 놓여 있는 아바르나의 불가촉천민이 존재한다.  바르나제도는 후기 베다시대(B.C.1,000∼600)의 후반에 성립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바르나 중 하층의 두 바르나에 직업관계의 변화가 생겨 바이샤=상인, 수드라=농민·목축민이라는 등식이 일반화되었다.  7세기에 인도를 여행한 현장의 기록에서 당시에 이미 그러한 관계가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에도 인도의 대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농민은 주로 수드라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드로 또한 일부 사람들(피혁업과 같은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수드라에 속해 있다.  더구나 『마누법전』등의 힌두교 고전에 기록되어 있는 논리에 따르면 브라만이 수드라를 위해서 제식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수드라가 바로 농민이라는 관계가 일반화됨에 따라 브라만은 수드라 가정(특히 농민가정 중에서도 상층가정)의 제식을 주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마누법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엄격한 차별은 불가촉천민에게 이전되게 되었다.  앞의 네 가지 바르나로 구분하는 것은 사회의 신분구조를 이론적으로 구분한 데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 독자적인 기능(예를 들면 도자기공, 세탁인 등)을 수행하고 있는 배타적인 집단을 이름하여 자띠라고 하는데 그 수효는 인도 전체에 2천∼3천개나 된다고 한다.
  자띠와 바르나라는 두개의 사회구분 사이에는 공통적인 성격(자기 집단 내에서의 결혼, 직업과의 결합, 상하·귀천의 질서)이 있고 또한 각 자띠는 불가촉천민의 자띠를 제외하고는 네 가지 바르나 중 어느 하나에 속에 있다.  그 때문에 예전부터 바르나와 자띠가 혼동되어 두 가지 모두가 카스트로 불려졌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카스트 또는 카스트제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의를 내려 놓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카스트는 자치기능을 가진 배타적인 내혼집단이다.  바꿔 말하면 각 카스트의 구성원은 집단 내부에서만 혼인을 하고 식사에 관한 고유의 제규제를 지킴과 동시에 카스트 고유의 직업을 세습한다.  또한 카스트의 제관습을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촌락 장로회의인 빤차아야뜨 또는 카스트 집회인 사브하의 결정에 따라 제재를 가한다.
(2) 각 카스트는 사회적·경제적 상호 의존관계(전근대적인 분업관계)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카스트 사이에는 브라만 카스트를 최상이로, 불가촉천민 카스트를 최하위로 하는 상하·귀천이라는 의례적 서열이 존재한다.
(3) 힌두교에서 매우 발달한 정(淨)·부정(不淨)의 관념과 업보·윤회의 관념이 카스트제도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면 카스트 내부의 구조, 카스트 상호관계, 카스트를 지탱하는 사상이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카스트를 살려보기로 한다.


3. 카스트 내부의 구조
    3.1. 결    혼
  힌두교도 남자는 학업을 마 친후 결혼하여 가장이 되어 아들을 낳고 조상의 영혼을 제사 지낼 의무가 있다.  또한 그 아들도 장차 가장이 되어 조령제를 지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가계는 연면히 유지되고, 조상의 영혼은 안주 할 수 있게 된다.
  결혼은 카스트 전체의 존속을 보존하고 내부의 결합을 유지시킨다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요컨대 결혼은 힌두교에서 가족과 카스트에 대한 사회적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에 관한 규제는 카스트마다 다양하며, 원칙적으로 카스트는 외혼집단을 포함하고 있는 내혼집단이다.  즉, 카스트의 구성원은 자신과 같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과 결혼할 의무가 있는 것(내혼)과 동시에 같은 카스트내의 특정한 외혼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혼의 범위는 카스트의 대소나 지리적 조건에 따라서 다르며 규모가 큰 카스트의 경우, 그 내부가 다시 몇 개의 내혼집단(서브 카스트)으로 나누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카스트 내부의 외혼집단, 즉 소속자끼리 결혼할 수 없는 집단으로서는 우선 샤삔다가 있다.  샤삔다란 공동으로 조상의 영전에 제사떡을 바치는 집단을 말하는 것인데 가까운 친족을 의미한다.  힌두법전 속에는 그 범위가 부계 7세대, 모계 5세대 혹은 부계 6세대, 모계 4세대 등으로 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부계 4세대, 모계 3세대 정도가 샤삔다 외혼집단 범위에 들어간다.  이 범위 내에는 원적적으로 통혼을 할 수 없지만, 남인도에서는 외사촌간의 결혼이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등 예외도 있다.
  또 하나의 외혼집단에는 고뜨라를 같이 하는 샤고뜨라와, 쁘라와라를 같이하는 샤쁘라와라가 있다.  고뜨라는 어원적으로 ‘소외양간’,‘소우리’를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나중에 ‘씨족’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고, 다시 브라만들 사이에서는 특정한 전설적 조상인 성선을 공통으로 가진 집의 집단을 뜻하기에 이르렀다.  브라만은 원칙적으로 7명 또는 8명(후세에 그 수는 더욱 증가)의 전설적 선조의 자손으로 여겨지며, 실제 혈연관계는 없어도 같은 고뜨라에 속하는 집단 사이에는 통혼이 금지되고 있다.
  이러한 사고뜨라 외혼규제, 사쁘라와라 외혼규제는 브라만이 자기의 집단을 다른 집단과는 달리 특별한 집단으로 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외혼규제에 있어서 그들은 리쉬를 조상으로 하는 혈통이 좋은 가문이라는 것, 또한 엄격한 혼인규제를 통해서 의례적인 청정도를 보존해 왔다는 것을 들 수 있는 것이다.  고뜨라·쁘라와라 제도는 후세의 크사트리아·바이샤 양 바르나 사이에서도 모방하게 되었지만, 그들 사이에서 이 혼인규제는 그다지 중요시 되지 않았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카스트제도 아래서는 배우자 선택의 범위가 극히 제안되어 있다.  그러나 힌두교도의 아버지에게는 아이를 자신의 가계에 어울리는 가문의 이성과 결혼시키는 일이 종교적·사회적 의무였다.  특히 딸은 처녀성과 순종할 것을 요구 받는 까닭에 초조이전에 시집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졌다.  인도사회에서 일찍부터 널리 유행해왔던 유아혼의 풍습은 힌두교와 카스트제도가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내혼제는 카스트제도 중에서도 가장 공고한 부분이다.  오늘날 도시생활자 사이에서는 이 벽이 무너지는 경향이 있지만, 사회적 계급격차가 있는 카스트와의 혼인이 성립되는 일은 아직 거의 없다.

    3.2. 식    사
  힌두교도들은 식사를 일종의 의례로 여기며 식사하는 데 음식물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친족들이나 동료 카스트들이 모여서 회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것은 친족의식이나 동료의식을 서로 확인하는 일종의 예식이다.
  어떤 카스트이건 식사에 관해서는 매우 복잡한 예법을 갖고 있다. 식사 예법은 카스트에 따라, 또는 지방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다른 카스트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일이나 하위 카스트로부터 물이나 음식물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물에 관한 규제가 북인도에서는 조금 완화되어 있다.  그 곳에서 브라만은 수드라의 상위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릇의 물을 자기 그릇에 따라 마실 수 있다.  그들은 그릇에서 그릇으로 물이 옮겨질 때 공중에서 정화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남인도에서는 이러한 예법이 엄격하다. 예를 들면 정거장이나 역에서 식수 판매인은 언제나 브라만이라고 한다.  브라만으로부터 만이 모든 사람이 물을 받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물에 관한 예법은 물에 관한 것보다 더욱 엄격하다.  특히 ‘누가 조리한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레스토랑의 요리인에 브라만이 많은 것은 식수 판매인의 경우와 같이, 브라만이 요리한 것은 누구라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우유·기름으로 조리한 음식물에 관한 예법은 물로 조리한 음식물에 관한 예법보다 덜 엄격하여 하위의 카스트로부터 이것을 받는 것도 허용되고 있다.  음식물의 종류에 대해서 보면 고위 카스트가 될수록 터부가 되는 음식물의 수효가 증가되며 브라만의 서브 카스트 속에는 달걀이나 생선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들조차 있다.  중위·상위의 카스트 속에는 양·산양·새 등의 고기를 먹는 사람은 많으나 쇠고기만은 일부 불가촉천민 카스트에 한정되어 있다.  요즈음 식사에 관한 번잡한 규제는 전반적으로 완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도시의 생활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3.3. 직    업
  카스트는 여러 고유의 직업과 맺어 져 있으며 그 구성원들은 직업을 세습한다.  따라서 카스트의 명칭에는 직업과 관련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상인 카스트인 바니야(Vaniya)는 산스크리트어인 바니즈(Vanij)를 어원으로 하는 이름이고 금세공 카스트인 소나르(Sonar)는 스와르나(suvarna:금), 참기름 카스트인 텔리(Teli)는 타이라(taila:참기름), 대장장이인 카스트인 로하르(Rohar)는 로하(roha), 도기공 카스트인 쿰바르(Kumbar)는 쿰바(kumba:도기)를 각각 어원으로 한다.
  힌두교에서 이상으로 삼는 것은 카스트 고유의 직업을 세습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같은 카스트에 속하는 무리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부족기원의 카스트에서 이러한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모든 노동 가운데에서도 농사일은 현실적으로 어떤 카스트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촌락의 직공 카스트나 불가촉천민 카스트 중에서 주어진 조그마한 토지를 경작하여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이나 농번기에 지주나 농민의 전답에서 농사일에 종사하여 현물로 보수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카스트와 직업의 결합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상당히 유연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고대에 있어서도 마찬가가지였다.  예를 들어 힌두법전은 바르나 고유의 직·업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곤궁한 재생족에 대해서 궁핍한 때의 법을 정해서 하위 바르나의 직업에 취업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근대에 와서 전통적인 경제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카스트와 직업의 결합도 전점 이완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도에서는 공화국 헌법 아래 원칙적으로 모든 직업은 모든 인도인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카스트 고유의 직업을 떠났더라도 카스트 그 자체에서 이탈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출신 카스트에의 소속의식이 아주 강하다.  또한 출신 카스트의 직업보다 사회적 평가가 현저히 낮은 일에 종사하는 것이 기피되고 있다.

    3.4. 자치기능
  각 카스트, 서브 카스트의 구성원은 결혼·식사·직업, 그 밖의 독자적인 종교적·사회적 관행으로 서로 맺어 져 있다.  그리고 이들 관행을 위반한 같은 무리에 대해서는 카스트 장로회의인 빤차아야뜨나 카스트 구성원 집회인 사브하의 결정에 따라 제재가 가해진다.  이미 힌두법전 속에서 국왕은 카스트 관행을 중요시하고 카스트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정해져 있다.  이러한 위정자의 태도는 이슬람교 지배시대, 영국 식민지 시대를 통해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물론 지역사회 전체의 안녕에 관계되는 문제나, 카스트 사이의 싸움 등의 경우에는 촌락의 장로회의나 지역사회 또는 국가의 권력이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해왔다.
  카스트 장로회의나 집회에서 취급하는 위반사항은 식사·결혼·남녀관계·직업 등에 관한 것, 경제적 이해에 관계되는 것 등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제재방법으로 가장 많이 채택되는 방법으로는 카스트 밖으로의 추방이 있다.  추방기간 중에는 카스트와의 교섭이 일체 단절되며 다른 카스트와의 사이에 맺어 져 있는 사회·경제적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시적인 추방의 경우에는 속죄행위나 정화의례를 한 뒤에 동일 카스트 내로 복귀할 수 있는데 영구 추방된 사람은 다른 카스트에서 받아주는 일도 없으며, 가족들도 돌보지 않아서 고립무원의 상태를 강요당했다.
  이 위반사항에는 우리가 보면 아주 사소한 사건이 많은데 카스트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카스트의 명예를 지켜 다른 카스트로부터 멸시를 초래하는 일이 없이 다른 카스트와의 상대적 지위를 유지해 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그마한 규제를 엄수하는 것이야말로 불가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낮은 카스트의 조직일수록 또한 지리적으로 한정된 범위를 주민들로 구성된 카스트일수록 결합이 강하고 조직은 튼튼하다.
  이와 같이 카스트는 자치적 기능을 가진 배타적인 집단이며 인도인들은 중대한 죄를 짓고 카스트 밖으로 영구히 추방되지 않는 한 빈부나 성공·실패에 관계없이 일생동안 자기 카스트를 이탈할 수 없다.  그들은 촌락이나 도시의 일원인 동시에 촌락이나 도시를 초월한 지역사회 속에 사는 동일 카스트와 결합되어 있으며 또한 교제의 친밀도로 말하자면 카스트의 동류들과 결합하는 쪽이 월등히 강하다.  카스트제도 하에서 개인의 생활은 세부에 이르기까지 규제되어 있으며 개인의 선택의 자유는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한편 카스트에 속하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직업에 종사하는 한 최저의 생활은 보장되었다.


4. 카스트 사이의 상호관계
    4.1. 분업관계
  전통적인 인도사회는, 배타적인 카스트가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 즉 분업관계의 의해서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카스트 사이의 분업관계는 보시와 촌락에서는 양상을 달리하고 있지만, 인도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해 온 촌락에서 그 전형을 볼 수가 있다.
  인도의 촌락은 일반적으로 10∼30개의 카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촌락민 대부분은 카스트별로 모여 사는데, 가장 좋은 장소는 상층 카스트, 촌락 주변은 불가촉민 카스트의 거주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촌락에서 카스트간의 분업관계의 중요성을 지적한 사회학자 와이저는, 1936년에 발표한 저서에서, 이 관계를 자지마니제도라고 부르고 있다.  자지마니란 ‘고객’,‘단골손님’을 의미하는 자지만의 파생어이며, 단골손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마을의 도공의 경우, 선조 대대로의 단골인 농업 카스트 가족 또는 가장이 자지만이 되는 것이다.  토지를 소유한 농민을 주체로 하는 촌락을 예로 들면, 자지마니제도란 촌락에 사는 직공 카스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스트 각각에 소속한 개개의 가정이, 농민 카스트에 속하는 가정이나 다른 카스트에 소속하는 가정을 위해서 특정한 일을 세습적으로 하고, 그 보수로서 곡물이나 서비스를 전통적으로 정해진 양만큼 제공받는 제도이다.
  구체적인 예로써 와이저가 조사한 북인도의 한 마을을 예를 들어보면, 이발카스트 집안의 주인인 마을의 장로 등 중요한 고객에 대해서는 주 2회, 사위 카스트 고객에겐 주 1회, 그 밖의 고객의 경우엔 적당한 날에, 그들한테 가서 면도를 해주고 손톱을 깎아 준다.  이발은 대개 월 1회의 비율로 행해진다.  이 주인의 아내는 고객의 여자가족에게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발사 집안은 고객을 위해서 새로운 소식을 마을 안팎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결혼식에는 중매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봉사에 대해서, 고객들은 일정량의 보수를 현물이나 서비스로 지불하는 것이다.  고객 집안의 관혼상제 일에는 특별한 수입도 기대할 수 있다.
  마을 안에 사는 그 밖의 다른 카스트 소속자도 이발사 집안의 경우와 같이 각각의 카스트 고유의 직업에 종사하고, 그 보수로서 다른 카스트 고객으로부터 현물이나 서비스 제공을 받고 있다.
  한 마을 안에 모든 종류의 직공이 충족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웃 촌락끼리 직공을 서로 보충하는 때도 있고, 또 일정 지역내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필요에 따라서 일을 하는 직공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때때로 마을사람들은 화폐를 지불하여 상인으로부터 제품을 구입할 필요도 생긴다.  또 지방도시와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농촌지대로 된 지방경제권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인도의 촌락의 자급자족성에는 한도가 있었으나, 전통적인 촌락사회의 경제관계의 기초는 촌락내의 고정적 분업관계로서의 자지마니제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촌락내에 있어서 카스트끼리의 분업관계는 반드시 대등한 것만은 아니고, 경제적·정치적 힘을 가진 카스트에 유리하게 짜여져 있다.  유력한 카스트란 일반적으로 마을 안에서 가장 넓은 토지를 소유하는 카스트이며, 수적으로도 마을 안의 여러 카스트 중에서 우세할 때가 많다.  촌락의 자치조직인 장로회의를 운영해 온 것도 이와 같은 카스트인데, 사회학자는 이를 지배카스트라고 부르고 있다.
  자지마니제도는 대개의 현상을 보면 집과 집 사이의 개별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촌락의 존재를 전제로 해서야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고 거시적으로 볼 것 같으면, 직공 카스트나 서비스 제공 카스트에 소속한 사람은 ‘촌락 전체의 생산활동을 보조하는 사람’이란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현물이나 서비스의 교환관계가 성립되어 화폐의 매개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이 카스트간의 고정적 분업 관계에 의해 자급자족적 성격이 강한 촌락의 생산활동이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분업관계는 인도사회의 근대화와 함께 무너져가고 있다.  촌락민 중에는 세습되는 직업을 버리고 도시로 나가는 사람도 많아지고, 화폐경제의 침투나 도시제품이 유입된 결과, 이제까지의 자지마니적인 교환관계도 변하여, 화폐에 의한 보수 지불이 요구되게끔 되었다.  직공 카스트나 서비스 제공 카스트에 속하는 마을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촌락경제의 변화에 수반하여 종래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농업노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인류학자가 실시한 촌락조사는, 모두가 촌락사회의 이와 같은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다.


    4.2. 상하관계
  이들 카스트는 경제적 상호의존관계로써 맺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브라만 카스트를 최상위로 하고 불가촉민 카스트를 최하위로 하는 의례적인 상하관계로 맺어져 있다.  촌락조사를 행하는 사회인류학자의 관심의 하나는 이같은 카스트 계급이고, 이들은 브라만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어느 카스트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어느 카스트로부터 음식물이나 물을 받을 수 있는가 등등의 관계를 조사하여 이에 따라 계급표가 작성되고 있다.  직업의 종류나 식사·결혼·교제 따위의 여러 관습은 브라만적인 정(淨)·부정(不淨)의 관념에 의해서 종합적으로 평가되어 상하관계가 정해져 있는 것인데, 이러한 상하관계는 지역차도 다소 있고, 또 직공 카스트 따위의 중간 카스트의 상하관계는 애매한 경우도 많다.
  의례적인 의미의 상하관계와 정치적·경제적 의미의 계층 차이는 본래 다른 성격의 것이다.  예를 들면, 농경카스트가 지배적인 촌락에서는, 브라만은 경제적으로 토지소유농민중의 유력자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촌락의 주민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상중하의 3계층으로 크게 구분해 보면, 그것은 카스트계급에서 보이는 세 구분과 많이 일치한다.
  최하위 계급인 불가촉천민 카스트의 생활이 마을 주민의 최저수준임은 물론이다.  또한 상하관계가 애매한 중간층 제카스트의 상대적인 등급이 경제적·정치적인 힘의 대소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지역사회내에서의 카스트의 상하관계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변화에 따라서 다소의 유동성을 나타내 왔다.  사회적 지위를 올리려는 카스트가 일반적으로 시도하는 방법은, 카스트 구성원 전체가 뭉쳐서 새로운 관습을 채택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관습은 힌두교적인 견지에서 정한 정도가 높다고 보여지는 관습, 이를테면 채식, 금주, 과부 재혼의 금지 등이었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관습이 전체 구성원에게 강요되어 때로는 높은 카스트의 이름을 차용하는 따위의 궁리에 열중하게 되었다.  사회학자 슈린바스는 이러한 움직임을 힌두교 성전에 있는 브라만 문화의 상징이기도 한 산스크리트어에 연관시켜서 산스크리타이제이션, 즉 ‘산스크리트화’라고 부르고 있다.
  전통적 사회가 무너져 가고 있었던 19∼20세기에, 중위·상위 카스트 소속자 사이에서 활발한 산스크리트화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은 다투어서 상위 바르나 출신이라는 주장을 내걸었다.  그 결과 이들 카스트 사이에서는, 카스트 규제가 강화되는 역행현상도 나오고 있다.  산스크리트화 경향이 중위·하위 카스트 사이에서 나타나는 반면에, 브라만이나 도시에 거주하는 상류계층 사이에서는 오히려 탈산스크리트화, 서구화로의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전통적인 인도사회는 이처럼 카스트를 횡(상호의존관계, 분업관계)과 종(상하신분관계)의 관계로 유기적으로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카스트 사회는 반드시 고정화된 것은 아니었는데, 극히 공고하고 본래 카스트적 차별을 인정할 리가 없는 불교도, 자이나교도, 이슬람교도, 힌두교개혁가(시크교, 링가야트파 따위), 기독교도 사이에서도 카스트제도는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혹은 이들 교도 자체가 카스트조직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도의 근대화와 함께 이 횡과 종의 관계는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5. 카스트를 지지하는 사상
    5.1. 힌 두 교
  힌두교는 인도의 민족 종교로 불리고 있다.  교도의 수는 인도공화국 총인구 5억 4천만명(1971)가운데 4억 5천만명, 즉 총인구의 약 83%를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 네팔·파키스탄·뱅글라데시·스리랑카·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에 거주하는 자를 포함시킨다면 그 숫자는 더욱 증가한다.
  힌두교는 실로 아주 막연한 종교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불교·이슬람교와는 달리 개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성전이라고 불리는 것은 방대한 분량에 달하지만 바이블이나 코오란과 같은 근본적인 성전은 존재하지 않으며 고도로 발달한 철학사상과 원시적인 서물숭배가 공존하고 있다.  힌두교도가 숭배하는 신들은 시바신, 비슈누신 등의 절대신에서 촌락의 신, 가정의 신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으며 힌두교의 종교생활도 카스트나 지방에 따라 다양하다.  힌두교도가 되기 위한 초소한의 조건은 브라만의 지도를 인정하는 카스트제도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조건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브라만의 지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힌두교도들도 있으며, 반면 이슬람교나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도 카스트제도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힌두교는 다양한 요소가 혼연일체가 된 종교이며 힌두교도들은 그 안에서 태어나고 생활하며 죽어간다.  그들의 종교는 일상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힌두교를 종교로 보지 않고 ‘인도인의 생활방식’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종교적으로 보면 힌두교는 아리아인이 발달시킨 베다의 종교와 선주민의 종교를 융합하여 성립시킨 것이다.  그 가운데 베다의 종교는 자연을 신격화한 실들을 숭배하는 다신교이며 그 신들 가운데에는 이란인이나 히타이트인 등의 인도유럽계 민족의 신들과 공통되는 것이 많다.  곧 이어 그 종교의 지도자로서 전문적인 사제계급인 브라만이 생겨났다.  제식을 행할 경우에는 제단이 설치되면 화로에 공물을 던져 넣었지만 아직 우상숭배는 행해지지 않았다.
  아리안계 문화와 선주민의 문화가 융합됨에 따라 뇌신 인드라로 대표되는 베다 종교의 신들은 점점 후퇴하고 선주민의 종교에 기원을 둔 신들이 전면으로 부각되었다.  선주민의 신앙적 요소를 강하게 갖춘 최고신들이 바로 시바신과 비슈누신이다.
  비슈누신은 베다성전에 우주를 세 발짝 걷자마자 태양신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당시에는 인드라신이나 화신 아그니만큼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에 점점 두각을 나타내어 자비의 신, 우주를 유지하는 신으로서 최고신의 위치에까지 올라갔다.  비슈누신은 각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려져 왔는데 그는 여러 가지 화신으로 나타나 현실세계를 구제한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것은 지방의 신들을 비슈누신과 동일시함으로써 그 신을 믿고 있던 집단을 비슈누교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이 진행된 결과 비슈누신은 아주 다양한 성격을 갖기에 이르렀다.  불교의 개조인 붓다마저도 비슈누신의 화신으로 숭배되기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최고신 시바도 마찬가지이다.  그 신은 베다 종교의 폭풍신 루드라와 관계가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루드라의 요소보다는 토착신앙의 요소가 훨씬 강하다.  그 신 또한 아주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시바신은 우주의 파괴자로서의 성격을 갖는 외에 자비심이 깊은 신, 무용의 신, 예술·사변의 신, 가축과 짐승의 왕, 고행자이기도 했다.  더구나 창조·생식의 신으로서 여신과 관계하여 사크띠숭배, 탄뜨리즘의 발달을 촉진시켜 왔다.  또한 그 신은 종종 링가의 형상으로 상징적으로 표시되며 시바파의 사원 깊숙한 방에 안치되어 있다.
  힌두교도들은 이 최고신에게 절대적인 귀의를 하는 한편 지모신, 수신, 나아가, 하누만, 가네샤 등 다양한 신을 우상으로서 제사지내고 있다.  힌두교의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포용력은 무수한 신들에게 각각 존재이유를 부여했다.  베다 종교의 지도자였던 브라만은 선주민의 신앙에 기원을 두고 있는 많은 신들과 비베다적인 신앙생활을 수용하여 사제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힌두교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인생은 ① 학생기(브라만 밑에서 교육을 받는다) ② 가주기(가업에 종사하며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조상에 제사지낸다) ③ 입주기(삼림속에 은거하면서 청정한 생활을 보낸다) ④ 유행기(성지순례)라고 하는 4주기(아슈라마)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이고, 이러한 이상대로 생애를 보내는 힌두교도는 적었던 것 같다.
  한편, 힌두교도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각 기간마다 정법이라고 총칭되는 의례를 행하고 있다.  그것은 수태식에서 시작하여 탄생식, 명명식, 입문식, 결혼식, 장례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통과의례이고, 죽은 뒤에도 그 혼을 가족과 자손들의 제사지낸다.  이러한 의례에 의해 각 개인에게 필요한 정성이 유지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브라만에겐 이들 제식의례를 주관하는 권리가 독점적으로 부여되어 왔다.  브라만을 초청하지 않고 제식이 있는 그 집의 가장이 중심이 되어 행하는 일상적인 제사·의례도 있으나, 중요한 일에는 선조 대대로 그 집에 관계하여 온 브라만이 초청된다.  촌락에는 반드시 브라만이 몇몇 정도는 있고, 브라만 집안과 촌락내의 상위·중위 카스트 집안 사이에는 아주 끊기 어려운 세습적인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촌락생활 속에 이렇게 틀이 완전히 잡힌 브라만의 지위는 강대하여, 이슬람교도 지배하에서도 거의 흔들리는 일이 없었다.
  신앙형태의 차이는 있으되 신에게 현세·내세의 행복을 구하는 점에서는 힌두교도 또한 세계의 타종교와 다름이 없다.  힌두교의 특색은 이 종교가 카스트제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 즉 이 종교 밑에서 극도로 발달한 정·부정사상과 업보·윤회사상이 분할과 불평등의 원칙 위에 서 있는 카스트 사회에 종교적 재가를 부여해 온 데에 있다.

    5.2. 정(淨)·부정(不淨) 사상
  어떤 종교에서도 다소간의 정·부정 사상은 있으나, 브라만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힌두교에서 이 사상은 극도로 발달했다.  근년, 사회인류학자·종교학자의 연구는 정·부정 사상이 힌두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원리가 되어 왔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자연계·초자연계의 모든 존재를 정·부정의 관점에서 분류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나무와 소가 특별히 정성이 높고, 물고기는 중간 정도, 돼지·개·닭은 낮다.  그리고 배설물과, 피, 죽음·부패에 관한 것은 부정의 도가 극히 높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살생, 피혁가공, 배설물 청소, 세탁 등에 관계되는 카스트는 불가촉시되었다.  힌두교도는 부정하다고 보여지는 것과 접촉하면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더러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나, 그 더러움은 직접적인 접촉은 몰론 간접적인 접촉(보는 것, 듣는 것, 접근하는 것)에 의해서도 전염된다고 믿고 있다.
  더러움을 받은 자는 그 자신이 더러움을 주는 존재로 변한다.  따라서 힌두교도는 부정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출생·배설·사망 등에 의한 더러움을 피할 수는 없고, 또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부정한 것으로 보여지는 물질이나 사람과의 접촉을 완전히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생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화의례가 발달하였다.  의례에는 목욕과 같은 간단한 것으로부터 고행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가 있는데, 더러움의 정도에 따라 적당한 방법을 가려서 행하였다.  힌두교 법전류를 보면 정화의례가 고대에 있어서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정화의례라고 하는 도피로를 마련함으로써 정·부정 사상은 일찍 발달하게 되었다.
  카스트와 정·부정 사상의 관계를 보면, 먼저 기술한 바와 같이 각 카스트의 등급이 정해졌다.  각 카스트가 그 자체로서 가진 일정한 부정성은 집단적인 것이고 카스트에 소속한 사람 모두가 다같이 또한 일생을 통하여 가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느 카스트이든 각각 그에 알맞은 의례적 정성을 가지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각 카스트가 그 구성원에 강제하는 결혼·식사·직업 등에 관한 번잡한 규제도 결국은 자기의 카스트를 부정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각 카스트는 일체가 되어 부정을 피함으로써 다른 카스트와의 의례적 상하관계를 유지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정성이 높다고 보여지는 새로운 관습을 채택하여 자기의 계급(등급)을 올리는 데에 노력해 왔다.  상위 카스트가 하위 카스트보다 높은 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하위의 각 카스트가 부정하다고 보여지는 여러 일을 각각 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만은 하위 카스트의 이러한 희생 위에 서서 가장 청정하다고 뽐냈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정성이 낮아지다가 여러 카스트 맨 밑바닥에는 불가촉천민이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정·부정 사상은 힌두사회로 된 힌두사회를 질서 있게 만드는 원리가 되고 있다.  종교적·의례적인 의미를 가진 상하의 신분질서가 경제적인 분업관계를 뒷받침하고 영속화 시켜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도 근년에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5.3. 업(業)·윤회 사상
  영혼불멸사상의 소유자인 힌두교도는 영혼은 전생에 한 행위에 속박되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이 업·윤회사상은 카스트제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즉 이 사상 밑에서 힌두교도는 “사람이 각자의 카스트에 태어나게 된 것은 전생의 행위의 결과이므로, 그는 자기 카스트 고유의 직업에 전념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에 의해서만 내생에서의 행복이 약속된다.  다른 카스트의 일은 아무리 잘 해내더라도 공덕은 적다”고 가르침을 받아온 것이다.
  힌두교도는 다르마에 따르는 생활을 명령받고 있다.  다르마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종교·규범·법률·원리·관습 등 다양하나 현실의 생활에 있어서 “다르마에 따른다”라고 하는 것은 때때로 자기 카스트의 직업, 즉 현세의 의무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숙명관이 카스트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데에 이바지한 역할은 대단할 것이었다.


6. 바르나제도의 성립
  바르나제도가 형태를 갖춘 것은 후기 베다시대의 도아브에서였다.  이 시대가 경제적·종교적·사회적으로 어떠한 시대이었는가를 개관하고 바르나제도의 성립과정을 추론해 보고자 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이 시대는 아리아인이 농경사회를 완성시킨 시대라고 할 수가 있다.  B.C. 1500년경 펀잡지방에 들어온 아리아인은 거기에서 목축을 주로 하면서 농사도 짓는 정착생활에 들어갔으나(전기 베다시대), B.C.1000년경부터 일부 아리아인(아리아계의 언어를 사용하나 인종적으로는 초기 아리아인과 선주민과의 혼혈)은 동방의 갠지스강 상류∼중류유역에 진출해서 기기에서 농업 중심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철기를 사용한 것도 이 무렵이어서, 농업생산은 높아지고 농경생활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왕후·사제·상인·직공 등의 활동을 가능케 하는 경제적 기반을 확립하였다.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이 시대는 부족시대가 무너지고 왕권이 신장되고 영구적인 수도가 건설되면서 행정제도와 징세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한 시대이다.  전기 베다시대에는 부족을 통솔하는 수장은 부족의 성운에 의해서 선출된 ‘대표자’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가졌을 뿐 그 권력행사는 부족집회 등에 의해서 제한을 받았으나, 후기 베다시대의 통치자는 전제군조로서의 성격이 강하였다.  또 왕을 도와서 정치·군사에 종사하는 크샤트리아와 기존의 일반 부족민 사이의 벽도 높아졌다.  이러한 전제왕국에의 길을 걸어가는 국가가 있는 반면에, 부족제의 명맥이 남아 있는 크샤트리아 집단이 정치를 하는 국가도 존재하였다.
  종교적으로 보면 이 시대는 브라만교의 여러 성전이 편찬되고 브라만 신분이 확립된 시대이다.  전기 베다시대에 이미 부족 사제직은 전문화되어 가고 있었으나 사회질서의 최고위에 위치하는 배타적인 브라만 집단은 성립되지 않았다.  후기 베다시대에 확립된 농경사회에 있어서 제식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자, 브라만은 제식을 복잡화시키고 그 집행권을 독점하여 자신을 제식에 의해서 신을 움직일 수 있는 ‘인간의 형상을 한 신’이라고 주장하였다.  브라만 계층은 본래 다른 아리아 부족에 속한 세습적인 사제자의 집합체로 성립된 것이다.  아리아인의 동남방 진출에 따라 원주민 가운데에서도 브라만의 대열에 가담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었으나 그들도 또한 아리아 혈통의 순수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정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내혼제를 정하여 배타적인 집단이 되었다.  카스트제도를 뒷받침하는 업보·윤회 사상도 이 시대의 말기까지에는 확립되어 있었다.
  전기 베다시대의 부족사회에서는 4바르나의 신분질서는 아직 존재하고 있지 않았으나 후기 베다시대에 크샤트리아와 브라만은 자기들은 일반 부족민과는 격리된 특권신분이라고 주장하였다.  상위의 두 바르나 사이에서 지상권을 쟁취하기 위한 분쟁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아 이 양자는 서로 이용하면서 바르나 사회를 성립시켜 왔다고 하겠다.  브라만은 정치적·경제적으로는 왕권에 종속되면서 의례적인 서열의 최고위를 확보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반부족민은 제3신분인 바이샤로 떨어뜨리고 상위의 두 바르나에 공납을 바치는 의무를 지게 했다.  그러나 종교면에서 바이샤는 그다지 차별을 받지 않고 드비자로서 베다 제식에 참가하는 권리가 주어졌다.  아리아화한 원주민들에게서도 상위 바르나에 속하는 자가 나타났으나, 피정복 원주민의 대다수는 일부 아리아인과 같이 베다 제식에 참가하지 못하는 수드라로서 상위 3바르나에게 봉사하는 의무가 지워졌다.  수드라는 재생족으로부터 여러 가지 경제적·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불가촉천민과는 달리 바르나 사회의 범위내에만 위치하고 있는 존재였다.  각 바르나는 원칙적으로 내혼집단이었으나 상위 바르나의 남자와 하위 바르나의 여자와의 결혼은 관대하게 허용되어 왔다.
  바르나 사회(농경사회)의 주변에 존재하며, 농경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미개인들은 천민으로 인정되고, 나중에는 그 속에서 불가촉천민시되는 집단 챤다라가 나타났다.  천민층은 처음에 수드라의 최하부에 놓여졌으나 불가촉천민제도가 성립되면서부터 그들은 ‘바르나를 못 가진’, 수드라 밑의 존재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같이 성립된 바르나 제도는 브라만을 최고의 청정으로, 불가촉천민을 최저의 부정으로 하고 그 사이에 직능과 결부된 배타적인 내혼집단을 배열한 제도이고, 그 성격은 카스트제도와 공통되는 부분이 많아 카스트제도 성립의 기본이 되는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르나제도의 이론은 후기 베다시대에 이어진 다르마 수뜨라 성립시대에 이르러 브라만의 손으로 다시 정리되어 『마누법전』을 대표로 하는 힌두법전류의 성립에 의해서 완성을 보았다.  이 기간에 바르나제도는 아리아계 문화의 전파에 수반하여 인도아대륙의 거의 전지역에 전해지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그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사회에서 그 기능이 계속되고 있다.


7. 카스트제도의 발달
  브라만에 의해서 이론화되고 크샤트리아가 그를 지지함으로써 성립된 바르나제도는 말하자면 ‘위에서부터의 카스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4바르나제도와 현실적으로 지역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는 카스트(자띠)집단의 성립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종종 다수의 카스트는 4개의 바르나가 세분됨으로써 성립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다.  오늘날의 카스트의 이름과 서브 카스트의 이름의 어원을 조사해 보면 민족명·부족명·씨족명·선조명으로부터 나온것, 지명에서 나온것, 직업이나 도구·기술·재료 등을 나타내는 말에서 유래하는 것, 종교명·종파명 혹은 풍속·습관을 나타내는 말에서 유래하는 것 등 매우 다양하다.  서브카스트의 이름의 경우엔 직업명과 지명, 직업과 부족명들을 조합한 이름도 있다.  카스트의 이름이 반드시 해당 카스트의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나 대략적인 기원을 알 수 있는 것도 또한 부정할 수 없으며, 그것으로부터 오늘날의 카스트의 기원이 민족적·부족적·지리적·직업적·종교적 원인 또는 정복이나 이주나 혼혈, 사회습관의 변화 등 다양하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고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대사회에서 직업은 일반적으로 세습되고, 기술은 특정집단내에서 비밀히 전해졌다.  이러한 배타성을 가진 집단이 고대인도에 존재한 사실을 문헌이 전하고 있는 것이다.  희랍인 메가스테네스도 농민·상인·목축생활자가 B.C.4세기 말경까지 어느 정도 카스트화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인도에서는 고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농경사회 주변에 독자적인 언어와 습관을 가지고, 내혼을 하는 미개·반미개의 부족이 존속하고 있다.  농경사회의 확대에 따라 그들 중의 대부분은 종종 부족적 결합을 하면서 서서히 바르나 사회에 흡수되었다.  또 아리아인의 내왕 이후에도 서북방 변경에서 인도로 들어온 외래부족은 많으나, 그들도 곧 인도의 문화·습관에 동화되어 갔다.  인도인은 이러한 외래민족들도 일종의 자띠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고대인도의 사회에는 타지역의 고대사회와 마찬가지로 직업, 지연, 원시적 신앙 등으로 맺어진 여러 가지 형태의 배타적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의 집단은 다른 지역에서는 사회의 발전에 따라 그 배타성이 완화되어가고 있었으나 인도에서는 배타성을 보유한 채로 사회적 역할이 고정화되어 카스트로서 존속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밑에서부터의 카스트화’가 진행된 것이다.  이 ‘밑에서부터의 카스트화’를 촉진한 것이 ‘위에서부터의 카스트화’로써 이루어진 바르나 질서의 형성일 것이다.  ‘위에서부터의 카스트화’가 종래의 배타적인 여러 규제를 카스트 규제로 전환시켜 다시 여러 집단을 상하의 질서로 정렬시켰다.  그리고 이 과정은 힌두교의 확대과정, 즉 이 종교가 인도 각지의 원주민의 신앙이나 습관을 무너뜨리는 일 없이 포섭하여 혼연일체가 된 종교체계를 형성하여 나간 과정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후기 베다시대 이후의 ‘위에서부터의 카스트화’의 역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밝혀져 있다.  그러나 ‘밑에서부터의 카스트화’에 대해서는 사료가 부족하며 거의 밝혀져 있지 않다.  복잡한 카스트 사이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자급자족성이 강한 촌락이 언제 어떻게 성립된 것인가를 실증적으로 해명하는 일은 금후의 과제인 바, 그 과정을 대강 추측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기원 전후 수세기 동안에 기록된 문헌에서 내혼제를 지키는 카스트집단의 존재를 알 수 있으나, 촌락 안에서의 복잡한 카스트간의 분업관계(자지마니 관계)는 아직 성립되어 있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왕후가 사는 대도시에는 여러 가지 직공집단이 살고 있는데 불교경전 중에서 목수촌, 대장장이촌, 도공촌 등의 기록이 전하는 것과 같이,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작은 촌락이나 기가마가마라고 불리는 시장촌도 도시 주변이나 농촌지대에 존재했다.  농민들은 행상인을 통하거나 혹은 자신이 그들의 촌락에 가서 농기구나 생활용구를 사 왔다.
  한편 불교경전에는 촌락인들이 서로 의논하여 어느 브라만에게 집과 양식을 제공하여 촌락에 머물게 하고 그들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였다는 이야기가 씌어 있다.  이와 같은 예가 보여주는 것처럼 촌락 안에 사는 직공카스트나 브라만, 불가촉천민과 같은 서비스 제공 카스트의 대부분은 외부에서 소위 동네 고용일꾼의 형태로 데려온 사람들이 기원이었을 것이다.  외부 사람을 이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초기 농경사회에서도 있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나, 그 경향이 일위 ‘봉건제’시대라고 생각된다.  인도의 봉건제도사회의 성립과 발달에 관해서는 근자에 사회경제사가들 사이에 연구가 거듭됨에 따라 꽤 명백히 밝혀지게 되었다.  그들에 의하면 굽타기 또는 후기 굽타기 이후에 지방분권적 통치형태나 토지경작에 의한 주종관계가 일반화하여 고대상업의 몰락과 보조를 맞추어 도시화폐경제의 쇠퇴현상이 나타나고, 지주층의 형성, 농노적 경작자의 형성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인도의 봉건제도화에 따라, 종래의 카스트 사회가 재편성되어 해마다의 농업생산에 필요한 각종 직능을 분담하는 여러 카스트를 내포하는 자급자족성이 강한 촌락이 서서히 출현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촌락의 여러 카스트는 또한 힌두교의 정·부정 관념에 입각한 상하의 신분질서 밑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촌락내의 카스트간의 분업관계 및 신분질서는 촌락 수준에서의 자체 재편성의 결과로서만 성립된 것은 아닐 것이다.  국가나 지방의 대·소영주층의 권력에 의한 위에서부터의 작용에 의하여 촌락질서 형성이 촉진되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시대는 흘렀지만, 후가자와 흐또시씨는 18세기 마라다 왕국의 공문서를 사료로 사용하여 국가권력이 카스트 신분의 상실이나 부활, 카스트의 분할, 카스트에 대한 행동규범의 명시, 카스트간의 차별의 철폐 내지 고정화 등에 관하여 가끔 간섭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왕국에서의 질서는 민간의 자율적 질서일 뿐만 아니라 정부에 의해 보호·통제·강화된 국가적 질서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굽타기 이후에서의 카스트제도의 발달에, 그 시대의 국가나 지방 지배자층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느냐를 해명하는 일도 금후의 연구과제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8. 인도의 근대화와 카스트제도
  허튼은 카스트제도의 가장 주요한 기능을 ‘통합하는’힘에서 찾고 있다.  즉 그는 이 제도가 인도사회를 구성하는 각종 그룹(직업집단, 종교집단, 부족집단 등)에 각각 독자성과 부분적 역할을 부여하여 이들을 전체로 해서 하나의 유기적 사회로 통합하여 온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부우굴레가 “인도인은 스스로를 분리하는 것, 즉 카스트에 대한 신앙 속에서 처음으로 통합된다”라고 한 말도 같은 의미로 한 말일 것이다.
  한편, 카스트제도는 인도사회를 고착화·무기력화·비능률화시켜 인도인의 보수적 성격을 북돋우고, 기술의 진보와 경제의 발달을 지연시켰다고 공격 받아 왔다.  또 카스트간의 배타적 단결심이 독선주의와 외부인에 대한 불신감 및 차별의식을 기로고, 애향심과 민족적 자각·성장을 막았다고 비난 받고, 더욱이 카스트 사회에서는 상위자의 교만성과 하위자의 비굴성이 극단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지적 받고 있다.
  그러나 카스트 사회는 결코 고정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도아대륙 내부에서의 지역차 및 경제생활의 변화와 정치적·사회적 원인으로 인한 카스트의 분열, 새로운 카스트의 탄생, 특정 카스트의 지위의 상승·하강 등의 움직임도 종종 나타났다.  또 카스트적 신분제도를 비판하는 종교운동이 일어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결국에 가서는 카스트 사회 내부의 조그마한 혼란을 야기시켰을 뿐 카스트 사회 구조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사상을 뒤집어엎을 만한 힘에는 미치지 못했다.
  카스트제도의 존속을 가능하게 한 조건 중 하나로서, 이미 기술한 카스트제도가 가진 유연성이 있다.  힌두교도의 생활 모든 면에 있어서 생겨나는 원칙과 현실 사이의 긴장관계는 예외 규정이나 정화의례 등의 ‘도피로’에 의해서 흡수되어 카스트제도 전체의 붕괴가 방지되어 왔다.  카스트의 유기적 통합으로 이루어진 인도사회는 대단한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위정자에게는 잘된 일이며, 힌두교도의 지배자는 물론 이슬람교도와 영국인 지배자도 감히 카스트 사회를 허물어 뜨리는 일이 없이 그 위에 군림한다는 방법을 취하였다.
  식민지시대를 통하여 새로운 토지제도, 교육제도, 사법제도, 관료제도 등이 도입되고 또 서구의 교통·통신기관과 산업의 발달, 화폐경제의 침투, 도시공업제품의 농촌에의 유입, 도시에의 인구집중 등이 나타났다.  여기에다 서구식의 자유평등사상이 도시에 사는 지식인층에 받아들여져서 카스트제도적 신분질서를 비판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선거제도가 도입되어 하층민이 정치에 참가할 길이 열리고 또 독립운동시기를 통해서 카스트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민족운동이 고조되는 양상도 나타났다.  이와 같은 인도사회의 변화에 따라 신분질서의 최상층에서는 브라만의 권위가 흔들리고 카스트제도를 떠받쳐 온 힌두교의 이데올로기도 영향력이 약해졌다.  한편, 신분질서의 최하층에서는 불가촉친민의 지위향상운동이 활발해졌다.  농촌에서의 카스트간의 분업관계도 서서히 무너져서, 도시에 사는 엘리트층 사이에는 카스트 규제에 묶이지 않고, 카스트 전체의 향상보다 개인의 지위향상을 추구하는 사람도 증가하였다.  독립후의 인도 헌법적·경제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특별보호정책을 취하는 등, 입법과 행정력에 의한 사회개혁이 시도되고 있다.  또 혼인·이혼·상속에 관한 카스트적 차별(특히 카스트 내부에 있어서 남녀간의 차별)은 1995∼56년에 제정된 힌두가족법에 의해 크게 개선되었다.
  카스트제도가 이처럼 해체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확실하나, 카스트를 성립시키고 있는 사회적·경제적·종교적 여러 요소가 모든 면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내혼제도는 오늘날에도 매우 엄격히 지켜지고 있고, 카스트끼리의 거주는 앞으로도 존속할 것 같다.  촌락생활자에게는 소속 카스트에의 의존도가 아직도 크고, 자지마니적인 분업관계도 부분적으로는 앞으로도 그 기능을 계속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산스크리트화운동과 선거제도의 도입 결과 카스트적 결합이 도리어 강화되었다고도 보고 있다.  카스트제도는 그 전과 같은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나, 오늘날도 촌락사회를 중심으로 완강한 영향력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근대화에 따라 카스트제도가 어떻게 무너져 왔는가를 밝히는 것은 현대 인도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9. 맺음말
  이상으로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재생족으로 불리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와 함께 수드라를 포함한 개념인 바르나, 그리고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 인도 카스트제도의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역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배타적인 집단으로 자띠가 일상적으로 쓰인다는 것에는 무척 놀랐다.  미얀마어로 자띠라는 것이 ‘고향’으로 해석되는 것을 볼 때, 태어날때 부터의 바꿀수 없는 운명으로 여기는 카스트를 수용하고 있는 인도인들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는 가늠할 수 있다.  결혼, 식사, 직업등의 일상생활까지 이러한 카스트제도의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볼때, 또한 인도인들에게 영향을 준 사상들을 생각 할 필요가 있다.  생활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힌두교의 깊은 영향이 그 첫번째이다.  토착신앙의 요소가 강한 다신교인 힌두교에서의 종교 지도자로서 생겨난 브라만이 일상생활의 의례의식에 관계하며 자리를 굳힘으로 먼저 하나의 계급으로 태어났고, 이러한 브라만에 의해서 이론화 되고 크샤트리아가 그를 지지함으로써 바르나제도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리잡은 바르나제도에 의해서 일상생활들이 한정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일상
[경기]Interneeds™

아들래미 지금 초등학교 2학년~

이넘이 5살때, 차를 몰고 싶어 하길래, 대학생이 되어야 운전면허 딸수 있다고 하자,

"스포티지 대학교 가면 내가 가질거야!~" 하길래 OK한것이 코가 끼었죠.

몇년 남은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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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수원]블루 탱
스크롤만해도 무쟈게 내려옴
시간되면 습독하겠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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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200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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