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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박찬호] 예전 즐거웠던 추억이 생각나서 퍼왔습니다

박찬호 선수에게 비난이 아닌 격려를

[작성자:daffo_dil / 2006-01-20 13:52]

한화 이글스가 계약금으로 3천만원이 아닌 2천만원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한양대로 진학한 박찬호는 강속구라는 매력 하나로 메이저리그에 스카웃되었다.

▲ 제구력이 불안한 파워피처
그는 94년에 동기인 대런 드라이포트와 더불어 메이저리거 중 각각 역대 17번째, 18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빅리그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국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치러진 2번의 시험 등판에서 그는 4이닝 동안 5피안타(1홈런) 5자책점과 함께
무려 5개의 볼넷(HBP도 1개)을 내주며 강속구라는 잠재력만으로는 빅리그 무대에 서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고
국내팬들에게 적지 않은 아쉬움도 안겨 주었다.
다만 6개의 탈삼진을 잡아냄으로써 닥터K로서의 재능만큼은 확실히 보여주었다.
95년에도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면서 두 차례 시험을 거쳤는데 4이닝 동안 2피안타(홈런1) 2볼넷 7탈삼진을 기록하였다.

95년에 제구력이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2년 동안의 시험 등판에서 그가 보여준 기록(8이닝 2피홈런 7볼넷 13탈삼진)은
볼넷 남발과 많은 탈삼진 및 적지 않은 피홈런으로 요약되고 이는 이후 박찬호 선수 기록의 축소판이었다.
한때 빅뉴스였던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그의 마이너리그 생활과 함께 국민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는듯 했다.

그러나 머지 않은 96년 박찬호는 빅리거로서의 시즌을 맞이했고 10번의 선발등판과 38번의 구원 등판을 하였다.
마이너리그에서 밋밋한 슬라이더 대신 커브를 장착한 그는 리글리필드에서 컵스전 구원승을 시작으로
108.2이닝 동안 5승 5패 3.64의 방어율, 119개의 탈삼진과 71개의 볼넷을 기록하며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기 전 나름 준수한 기록을 작성한다.
파워피처로서 향후 LA 다저스의 선발투수가 될 자질을 보여준 기록이었다.
이는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기 1년 전인 93년 페드로 마르티네즈(P Martinez)가 보여준 기록과 비교될 수 있다.
페드로는 107이닝 동안 10승 5패 2.61의 방어율, 119개의 탈삼진과 57개의 볼넷을 기록한다.
현역 최고 투수 중의 한 명인 마르티네즈와 비교되는 것은 박찬호 선수에게 불공평하긴 하다.
그러나 확실히 그는 현역 4위의 통산 탈삼진이요, ML 역대 2위의 9이닝당 탈삼진을 기록하는 페드로 마르티네즈만큼이나
삼진을 잘 잡으면서도 페드로나 다른 수준급 투수들에 비해서 현저히 볼넷이 많았다.

박찬호 LA다저스 96년 108.2이닝 5승 5패 3.64ERA 119K 71BB 7HR K/9 9.85개
페드로 LA다저스 93년 107.0이닝 10승 5패 2.61ERA 119K 57BB 7HR K/9 10.01개

그러나 한국의 팬들에게 97~98마일의 강속구를 뿌려대며 빅리거 타자들을 헛스윙 삼진 잡는 모습은 가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고질적인 제구력 불안은 빠른 직구가 바탕이 된 탈삼진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고 사이영상급 투수가 되긴 어려웠지만
팀내 2~3선발이 되기에 부족함은 없어보였다.

▲ 97년 한국인 최초 ML 풀타임(Full Time) 선발투수가 되다

97시즌을 앞두고 스피링캠프에서 박찬호에게 피칭을 전수한 샌디 쿠팩스는 "박찬호는 다저스를 이끌어갈 투수다.
뛰어난 직구를 가진 그가 제구력과 커브만 보완한다면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매덕스 역시 박찬호의 직구를 인정하고 "볼끝을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스볼 위클리'는 박찬호가 97시즌에 13승 2.88의 방어율을 기록할 것이라 예상했다.

97년 첫 풀타임 메이저리거 시즌에 박찬호는 LA 다저스의 4~5선발 역할을 해내며 29번의 선발등판(32회 등판)을 하였다.
192이닝 동안 14승 8패 3.38의 방어율(리그 14위)과 166개 탈삼진(리그 13위)을 기록하였고 볼넷은 70개로서 BB/9를 3.28개로
현저히 줄였다. BB/9가 3개 이상이면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박찬호의 K/9는 7.78개(리그 8위)로서 많은 볼넷을 커버하고도 남았
다. 수준급 선발 투수 치고는 볼넷이 다소 많다고 평가되는 배리 지토(B zito)는 통산 3.43개의 BB/9를 기록하지만 K/9는 7.03개
이다. 주지하듯이 지토는 2002년 AL 사이영상 수상자이며 오클랜드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고 있다. 지토의 2002년 사이영상 시즌
에 BB/9는 3.06 K/9는 7.14였다. 박찬호의 97년 K/BB(볼넷 대비 삼진) 기록이 지토의 사이영상 시즌보다 더 좋다.

97년의 피안타율은 0.213이며 WHIP은 1.14로 박찬호 자신의 커리어 최고 기록이었다.
피안타율은 당시 사이영상 수상자인 페드로 마르티네즈(0.184)에 이어 리그 2위였으며 ML 전체에서는 AL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클레멘스에 뒤 이어 랜디 존슨과 공동 3위의 기록이었다.
WHIP은 리그 7위이며 ML 10위의 기록이었다. 다승과 탈삼진은 리그 공동 12위, 방어율은 리그 14위였다.
풀타임 선발 첫 해에 팀내 1~2선발급 성적을 올렸던 것이다.

서서히 그는 빅리그를 지배할 만한 선발투수라는 평가를 듣기 시작했다.
98시즌을 앞두고 ESPN에서는 박찬호를 사이영상 후보로 지목했고 그의 직구를 ML 10위권으로 평가했다. 국민들은 박찬호의 등
판을 기다렸고 그의 승리를 기뻐하고 그가 잡는 삼진을 보며 환호했다. 박찬호는 술 자리에서나 식사 시간에 주요 화제거리가 되
었고 죽어가는 스포츠 신문도 살려 놓았다는 말을 들었다. IMF라는 어려운 시기에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말이 나는 과
대포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박찬호의 투구 모습과 그 내용은 MLB팬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먼나라에서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기분 좋은 소식임에는 틀림 없었다.

컵스 1루수 마크 그레이스(그는 김병현과 더불어 2001년 애리조나의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이기도 했다)는 97년 시즌 중에 "그가
이제 스물 네 살이라는 것이 정말이냐? 얼마나 더 당해야 하나"라고 인터뷰하기도 했고 다저스 동료 노모는 "박찬호만큼 볼이 빨
랐으면 포크볼 던지려고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98년에 박찬호는 34번의 선발등판에서 220.2이닝을 소화 15승 9패 3.71방어율, 191개의 탈삼진을 기록한다. 다승은 리그 14위 탈
삼진은 리그 6위에 올랐다. 볼넷은 97개. 이제 팀내 1~2선발급 성적을 올린 그의 선발투수로서의 입지를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
도 없었다. 요즘처럼 소속 팀의 트레이드나 선수 영입에 의해 일희일비하거나 각종 변수를 걱정해야 하는 코리안 빅리거의 입지
는 당시에 비하면 참으로 낯선 광경일 뿐이다. 오프 시즌 후 그는 사이영 스터프를 지녔다는 평가도 듣게 되었다. 99년부터 그의
연봉 계약에는 사이영상 보너스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배리 본즈는 "루키 시절 직구만으로도 치기 어려웠는데, 요즘엔 변화구도
던진다"며 박찬호의 구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99년 박찬호는 잠시 위기가 온다. 그는 이미 메이저리그에 널리 알려졌고, 그의 투구 역시 연구 대상이 된 지 오래였다.
타티스에게 한 이닝 두 개의 만루홈런을 헌납하여 메이저리그 엽기 기록에 이름을 올린 것도 이 시기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엽
기적인 기록을 남긴 책임의 절반 이상은 다저스 감독에게 돌리고 싶다.) 투구 패턴을 읽힘과 동시에 고질적인 제구력 불안이 가
져 온 현상이었다. 좌타자에 대한 약점을 심하게 드러냈지만 커브를 정교하게 연마함으로써 좌타자 상대로 한 삼진도 많이 잡아
내기 시작하여 2000년~2001년에 빛을 발하였다. 전반기의 부진을 딛고 시즌 막판 분전으로 박찬호는 3년 연속 10승 달성에 성공
했다. 다승은 13승으로 리그 19위에 탈삼진은 10위에 올랐다.

▲ 2000년~2001년 전성기를 구가하다.

2000년에 박찬호 선수는 최고의 성적을 올린다.
34번의 선발등판에서 18승 10패 3.27방어율, 21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케빈 브라운에 이어 팀내 2선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커리어 최다인 18승은 탐 글래빈, 데릴 카일, 랜디 존슨, 그렉 매덕스에 이어 리그 5위의 기록이었고,
탈삼진은 랜디 존슨에 이어 리그 2위였다. 비록 괴물 존슨과의 격차가 제법 크기는 했지만.

한편 방어율은 리그 6위를 기록하고 K/9은 8.64개를 기록하며 규정이닝을 소화한 선발투수 중 리그 5위였다. 타석에서는 홈런을
2개나 때려 내어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홈런을 기록한 주인공이 되었다.

2000년 5월 풀타임 선발 투수가 된 지 3년 반도 안 되어 50승을 달성했다. 박찬호의 50승은 세인트루이스의 떠오르는 신인 릭 엔
킬(R Ankiel)과의 투수전에서 8이닝 3피안타 1실점 12탈삼진으로 일구어낸 멋진 승리였다. 2000년 6월과 8월에는 1실점 완투승
을 거두었고 9월 30일에 현재 소속팀 샌디에고를 상대로 데뷔 첫 완봉승(2피안타, 13탈삼진, 1볼넷)을 거두기도 했다. 2000시즌
의 박찬호의 맹활약으로 2001시즌 시작 전에는 케빈 브라운과 더불어 베스트 원투펀치 후보로도 지목되었다.

2001년에도 35번의 선발등판에서 15승 11패 3.50의 방어율을 기록하였다. 234이닝으로 NL 3위, ML 5위로서 이닝이터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15승은 리그 공동 11위, 탈삼진은 218개로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에 이어 리그 3위였다. 그는 전반기에만 8승을 기
록했고 방어율은 2점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덕분에 2001년에는 올스타에 선발되는 영광을 얻었다. 선발인 랜디 존슨에 뒤 이어
등판한 그는 비록 첫 타자로 맞이한 칼 립켑 Jr에게 홈런을 허용하여 패전 투수가 되기는 했지만 이후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삼진
과 이치로(Ichiro)의 내야 땅볼을 포함 3타자를 깔끔히 처리하였다.

2001년 7월에는 밀워키를 상대로 첫 무사사구 완봉승(2피안타 9탈삼진)을 거두기도 했다. 이 날 LA 타임즈는 박찬호가 투수 최초
의 2천만 달러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후 누구도 아닌 언론에 의해 박찬호 2천만 달러 연봉 가부 논쟁이 불거
졌다. 동년 8월에는 동부지구의 강팀 애틀랜타를 상대로 5피안타 1실점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 날 8, 9회에 들어 "억억" 소
리를 내며 직구를 던지는 그의 투혼은 실상 허리 부상을 점점 악화시켰던 것으로 보이기에 안타깝다. 당시 박찬호는 부상이 없다
고 극구 우겼다. 보라스의 마수와 박찬호의 무모한 욕심 그리고 제프쇼의 습관적인 '불쇼' 탓이었으리라.)

2000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200이닝-2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하여 특급 선발 투수로서의 면모를 과시 하였으며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요, 5년 간 평균 15승을 기록하였다.

한편 퀄리티 스타트는 박찬호를 위한 기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이닝 이상 3실점 이내"라는 선발투수로서의 역할을 측정
하는 잣대는 당시의 박찬호에게는 너무도 헐거운 기준이었다. 박찬호는 2000년 당시 QS(퀄리티 스타트)에 관한한 ML의 최고 투
수인 랜디 존슨, 커트 실링, 페드로 마르티네즈, 그렉 매덕스, 탐 글래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2001년에 그는 전반기 19차례 등판 중 17번의 퀄리티 피칭을 했고 15연속 포함 26번의 QS를 기록했으며 1위인 존슨과 실링은 불
과 1번 더 많았다. 시즌 막판에 허리 부상 징후와 더불어 서너 차례 망가지기 전까지는 선두를 고수한 것이다. 2000~2001년 두 시
즌 동안에 49번의 QS로써 1위인 랜디 존슨에 이어 매덕스와 함께 ML 공동 2위, 97~2001년의 다섯 시즌 동안에는 108번으로 로
저 클레멘스와 더불어 ML 공동 6위를 기록했다. 공격력이 강한 텍사스에서의 소위 대박 계약의 가장 큰 근거는 바로 박찬호의 퀄리티 피칭 능력이었던 것이다. 물론 주지하듯이 부상으로 인해 먹튀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지만.

2001년 당시 1억 달러 이상의 다년 계약으로 FA 대박을 터뜨린 콜로라도의 마이크 햄튼은 박찬호의 밥(안타깝게도 최근 박찬호
가 바톨로 콜론에게 당했듯이)이었고 탐 글래빈과의 맞대결에서도 투수전 끝에 1실점 승리하였으며 이전에 박찬호가 그랬듯 빅
리그를 평정할 신인으로 촉망받던 케리 우드에게 2-1로 패배(7 2/3이닝 2실점)를 당하기는 했지만 명승부를 펼쳤다. 중요한 것
은 케리 우드는 그 날 경기로 다음 등판을 걸러야 했고(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투수 혹사의 단면) 박찬호는 5일 등판을 유지하여
부상으로 빠진 케빈 브라운의 공백을 메우며 팀내 1선발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였다는 것. LA 다저스가 시즌 막판까지 포스트
시즌 진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던 것은 팀내 간판타자였던 개리 셰필드의 말 그대로 박찬호 덕분이었다.

26번의 퀄리티 피칭에도 불구하고 20승 근처에도 가지 못한 건 당시 다저스 마무리 투수였던 제프 쇼의 이른바 '불쇼'와 빈약한
팀타선 때문이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후반기 허리 부상 여파로 인해 막판 서너 차례 등판 동안 크게 무너졌고 시즌 내
내 유지한 2점대 방어율을 크게 올려 놓았다.

샌프란시스코와의 마지막 경기 등판은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것이었다. 최고의 FA계약을 위해서 또 박찬호 자신의 자존심 때문
이었는지 모르지만 부상을 짊어진 무리한 등판으로 인해 본즈의 71, 72번째 홈런의 희생양이 되었고 4이닝 8실점으로 방어율이
3.29에서 3.50으로 뛰었다. 팀은 승리했지만 잃은 것이 너무 많은 무리한 경기였다. 현지 해설자도 박찬호의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지적하였다. 2001년에 시즌 내내 그가 보여준 위력에 비해 기록이 다소 저조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른바 FA
대박에는 성공했지만 치료의 적기를 놓쳐 부상이 장기화되고 회복이 더디고 불충분한 것 같아서 아쉽다.

2000년 후반기와 2001년 전반기의 기록을 합한다면 박찬호는 충분히 사이영상을 수상할 만한 기록을 남겼다. 20승과 2점대 방어
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01년 중반까지 그의 쾌투가 거듭될 때마다 언론은 2천만 달러 연봉을 종종 언급하기 시작했고, 시즌
막판의 부진이 있기 전까지 FA 1순위는 배리 본즈도 제이슨 지암비도 아닌 박찬호였다.

박찬호가 2000-2001 시즌 동안 뽑은 삼진은 435개였으며 ML 전체에서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 그리고 페드로 마르티네즈만이 그
보다 많은 수를 기록했다.

탈삼진과 퀄리티 피칭 뿐만 아니라 피안타율에서도 박찬호는 특급 성적을 냈다. 2000년에 0.214, 2001년에는 0.216의 피안타율을
기록한다. 2000년에는 1리 차이로 케빈 브라운에 이어 2위를 기록했으며 랜디 존슨(0.224/4위)과 그랙 매덕스(0.238/7위)를 앞섰
다. 2001년에는 케리 우드와 랜디 존슨에 이어 3위의 피안타율을 기록했고 4위(존 버킷)의 기록은 0.230에 달했다.

다만 최고 수준의 피안타율에도 불구하고 볼넷 비율이  
꽤나 높아서 그의 WHIP은 2000년 16위(1.37), 2001년 7위(1.17)에 그친다. 2001년에 사이영 투표 2위(or 3위)를 기록한 커트 실링
은 피안타율이 무려 0.245(리그 13위)에 달하지만 그의 BB/9는 1.37(매덕스에 이어 리그2위)에 불과했다. 박찬호의 BB/9는 3.50
(리그 32위)이었으며 이것은 그의 다른 시즌에 비하면 그나마도 준수한 기록이었다. 이런 차이로 실링의 WHIP은 1.08로 리그 3위
였지만, 박찬호의 WHIP은 1.17로 공동 7위에 해당한다. 같은 해에 수준급의 성적을 올린 두 선수이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게 다르다.

2001년판 스카우팅 리포트는 박찬호에 대해 "전성기 시절 놀란 라이언이나 드와이트 구든을 연상시킨다"고 했는데 실제 당시의
박찬호가 보여주는 놀라운 피안타율 및 탈삼진율과 그에 반해 높은 볼넷 비율은 놀란 라이언의 기록과 흡사한 양상을 보였다. 놀
란 라이언의 피안타율(0.204)과 통산 탈삼진(5714개)은 ML 역대 1위이고 통산 볼넷 허용은 2795개로 역시나 ML 역대 1위이다.
라이언이 5000 이닝 이상을 소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BB/9가 4개를 넘어 확실히 볼넷을 잘 내어주는 투수에 속했다.

박찬호는 2000년에 밀워키를 상대로 자신의 커리어 최다인 한 경기 14K를 기록하였고 밀워키 감독은 "밀워키 감독을 맡아 131 게
임을 하면서 만나 본 투수 중 가장 치기 어려운 투수"라고 찬사를 보냈다. 폭스 스포츠는 2000년 후반기에 박찬호가 승승장구하
는 것을 보고 "랜디 존슨이나 케빈 브라운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지금 현재 NL 최고 투수는 박찬호"라고 말하기도 했다. 베
이스볼 위클리는 케빈 브라운과 랜디 존슨과 더불어 NL 빅3가 될만한 투수라고 평가한 바 있으며, 당시에 ML 전체 투수 랭킹은
꾸준히 4~10위를 유지했다. 사이영상 수상자인 존 스몰츠는 "리그에서 그의 커브 볼을 제대로 처낼수 있는 타자는 거의 없다. 게
다가 빠른 볼도 무척 강력하다."라고 말했다.

▲ LA다저스에서 박찬호가 남긴 기록들

투수의 왕국이라 불리는 LA다저스는 명투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ML 역대 유일한 "3차례 만장일치 사이영상 수상자"이자 MVP
수상자인 '샌디 쿠팩스'를 비롯, 꾸준함의 대명사 '돈 서튼', 쿠팩스와 최고의 원투펀치를 이루었던 '돈 드라이스데일', 88년 월드
시리즈를 우승으로 이끌고 59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포스트 시즌을 더하면 67이닝 연속 무실점이 된다)을 세운 '오렐 허샤이저',
사이영상 수상자인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와 '마이크 마샬'이 이름을 날렸고, 오클랜드 A's에서 사이영상을 수상한 '밥 웰치', 페
드로의 형 '라몬 마르티네즈', 일본의 첫 빅리거이자 95년 신인상 수상자인 '히데오 노모', 우승 청부사로 불렸던 최초의 1억달러
계약의 사나이 '케빈 브라운' 등이 거쳐갔다.

박찬호도 LA에서 풀타임 선발 5년, 풀타임 출장 6년 동안 적지 않은 기록을 남긴 선수 중 하나다. 그는 LA다저스에서 1183.2이닝
(LA다저스 투수 중 역대 35위)을 소화했고 80승(28위) 54패 3.80 의 방어율(1000이닝 이상 투수 중 32위)과 1098개(14위)의 탈삼
진을 잡아냈다.

박찬호의 전매 특허라 할 K/9는 500이닝 이상을 던진 LA다저스 선발 투수 중에서 샌디 쿠팩스(9.28개)와 히데오 노모(8.87개)에
뒤이어 3위(8.35개)를 기록하였다. 통산 8.35개 수준이면 1000이닝 이상을 던진 선발투수 중에서 현역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현재 박찬호의 K/9는 7.89개로 떨어졌지만 현역 선발투수 중 스몰츠와 더불어 공동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향후 2000이닝을 소화
하게 되면 ML 역대 15위권 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박찬호가 LA다저스에서 남긴 기록이 노모의 81승과 3.74의 방어율 1217이닝, 1200개의 탈삼진 등에 아주 조
금씩 못 미친다는 점. 동양인 최고 기록을 약간의 차이로 노모에게 넘겨주었다는 사실이다. (내년에 LA로 돌아온다면 혹시 모르
겠다.^^)

▲ 정리하며

부상과 리그 부적응, 구속 저하로 인해 박찬호는 더 이상 LA 다저스에서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불안한 제구
력이 거의 좋아지지 않았고 때로는 소극적인 피칭으로 감독은 물론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2005년 허샤이저 투수
코치로부터 투심 패스트볼을 전수 받아서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는듯 했지만 부활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그러나 2005년 시즌 초반 최강팀 LA엔젤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즈를 상대로 승리를 해내기도 했고 휴스턴전에서도 꿈틀
거리는 포심과 날카로운 커브를 보여주며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4월 14일(한국시간)에 텍사스에 있는 동안 자신을 철
저히 짓밟았던 LA 엔젤스 타선을 상대로 첫 8타자 상대 6탈삼진 포함 퍼펙트 피칭은 옛날의 감격 그대로를 재현한 것이었다. 그
는 여느 투수들과 다른 특별한 감격을 제공했던 투수였음을 상기하게 된 계기였다.

기복이 심한 피칭, 높은 방어율, 구속 저하로 인한 결정구 상실 등 악재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아직 선수생활을 포기하기는 이르
다. 부상도 완쾌되었고 노련미는 한층 더해졌으며 생활의 안정적인 기반도 닦은 박찬호다. 2006년만큼은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
까? 2006년에도 텍사스에서의 부진한 모습 그대로라면 나 역시 더 이상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한 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건아로 촉망받았고 그 만큼의 즐거움과 통쾌함을 선사했던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의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국내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국내 야구팬들의 수준을
높였다. 개인적으로 선동렬 선수가 박찬호 선수보다 못 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박찬호 선수 역시 대한민국의 국보급 투수라 할
만하다. 그의 메이저리거로서의 성공은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실력과 노력 이상의 무엇이 있다. 새로운 문화에의 적응이 그것이
다.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도 메이저리그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언어 소통도 중요하고 생활면에서도 의지로 이뤄낸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그는 자기의 힘으로 그것을 일구어냈다.

최근 들어 팬들의 비난을 보면 그의 전성기적 시절에 대한 추억이 아쉬움으로 되어 돌아온다. 우발적으로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도 그 때문이다. 물론 그를 진정 좋아하기에 안타까움을 담아 내뱉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박찬호는 여전히 노력하는 선수이고 나에게 많은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던 프로 선수 중 하나다. 앞으로 박찬호만큼 국민에게 기
쁨을 주고 그 만한 커리어를 남길 선수가 나올 지 의문이다. 그는 동양인 투수로는 두번째이자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100승
이라는 금자탑을 달성하였다. 부상과 부진으로 우리에게 실망도 많이 안겨 주었지만 그것은 그 만큼 기대가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부침이 심했던 노모는 일본의 영웅이지만 박찬호는 그저 먹튀라고 비난 받는 일이 대세라니 단순한 연봉 차이를 넘어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비난이 아닌 격려를, 그리고 애정어린 비판을 해 주길 바란다. 박찬호 선수 뿐아니라 앞으로 쌓아갈 커리어가 더 많은 서재응, 김
병현, 김선우 선수에게도.


작성자 : daffo_dil
출처 : http://news.naver.com/nboard/read.php?board_id=sports_dis04&page=2&nid=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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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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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영석아빠앤 2006.01.21. 10:01
그래도.. 한때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었었죠. ^^
[서경]외인구단주 2006.01.21. 20:15
좋은 글이네요,,,,어느분이 정확히 분석하셨네요,,,,올해가 아주 중요한 한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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