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이 가장 매혹적인 사운드를 발휘하는 4,000~6,800rpm 구간, 착착 물리는 수동변속기를 3단으로 밀어 넣으며 코너로 뛰어든다. 제대로 맞아떨어진 회전수가 매끄럽게 솟아오를 때의 쾌감과 스티어링 휠에 전해지는 뿌듯한 앞바퀴의 그립, 액셀 페달을 왈칵 전개할 때 밀려드는 파워. RCZ 다이나미끄에서는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 글 변성용 사진최진호
컨셉트카 디자인 그대로 양산된 매끈한 스타일이 돋보인다
RCZ 다이나미끄는 본격 스포츠카로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수동 스포츠 모델을 내놓은 한불모터스의 용단에 자동차 매니아로서 찬사를 보낸다. 기본적으로 308과 같은 대시보드이지만 스포츠 쿠페에도 손색이 없고 D컷 스티어링 휠은 그립감이 뛰어나다
308과 구성이 동일한 계기판
접지력이 뛰어난 235/40 R19 사이즈의 콘티넨탈 타이어
단단하게 몸을 지탱하는 버킷시트
기본 모델의 154마력도 적은 출력이 아니지만 다이나미끄는 터빈과 배기 시스템을 튜닝해 200마력의 고출력을 뽑아낸다
뒤창 아래에 숨겨진 스포일러는 속도에 따라 두 가지 각도로 펼쳐지지만 버튼으로 직접 조절할 수도 있다
2007년 가을, 프랑크푸르트에 내놓은 푸조의 컨셉트카를 본 반응이 대부분 그랬다. 짧은 오버행과 둥근 지붕을 가진 2도어 쿠페는 이미 TT를 통해 익숙한 모습. 게다가 패키징까지 비슷했다. 쇼 당시에 붙여진 이름은 308 RC Z. 준중형 앞바퀴굴림(308) 플랫폼에 고성능 버전 파워트레인(RC)을 실은 스페셜티카(Z)라는 건 이름만 봐도 답이 나온다. 간만에 보는 스포티한 푸조였지만 원래 이 차는 푸조의 디자인 아이덴티티 펠린룩을 위한 디자인 스터디로 끝날 운명이었다. 매년 르망을 호령하며 최정상급의 스포츠 이미지를 구가하는 브랜드이지만, 제대로 된 본격 스포츠카는 단 한번도 만든 적이 없는 신기한 회사가 푸조다.
그러나 시장 있는 데 물건이 없는 적이 있던가. 한번 만들어본 과시용 샘플에 쏟아지는 찬사를 보고 시장을 간파한 푸조는 컨셉트카에서 거의 변형을 하지 않은 차를 2010년 덜컥 내놓는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스포츠 모델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은 대환영이다. 여세를 몰아 908 HDi 시판 버전이라도 내놓으면 전세계 자동차 매니아들이 좋아서 까무러치겠지만, 섣부른 기대는 안하련다. 아, 이야기 안했던가? 푸조는 의외로 보수적인 메이커라는 것을.
절제하지 않은 프랑스제 쿠페
그렇다고 푸조의 차가 보수적이라는 뜻으로 오해하지는 말자. 남다른 선과 면의 화법으로 동시대의 자동차 디자인을 선도해온 것이 프랑스의 자동차 메이커들이고 그 중 하나가 바로 푸조다. 볼륨 모델에 비하면 훨씬 많은 자유를 부여받은 스포츠 모델의 디자인은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짧디 짧은 보닛, 부드러운 호를 그리는 두 개의 은색 프레임이나 마치 미드십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리어가 주는 역동감은 이 차의 달리기가 어떨지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게 한다. 다른 차에서는 조금 우악스럽게 느껴지던 펠린룩도 RCZ에서만큼은 마냥 자연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참신한 익스테리어에 비해 인테리어는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죽으로 꼼꼼하게 감싸고 세심하게 바느질한 대시보드와 계기판의 정체는 308이다. 부품 일부를 호환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대로 퍼다 옮겨 놓았다. 찾고 찾아 발견한 다른 점은 3개의 송풍구 가운데 달린 시계 정도? 원래 대시보드 상단에 있던 조그마한 정보창을 오디오 하단으로 옮기고 내비게이션을 매립한 것은 모두 국내에서 작업한 것이다. 내비를 매립할 만한 장소가 여기밖에 없었던 만큼 터치스크린을 조작할 때마다 닿지 않는 손을 뻗으며 낑낑거리는 불편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마감재의 품질은 좀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이음매가 허술한 것은 적어도 이 값의 차에서 감수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비록 눈에 익은 대시보드가 아쉬울지언정 일단 자리에 앉은 뒤의 분위기는 스포츠카의 기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높은 벨트라인, 낮은 지붕으로 인한 빠듯한 공간과 좁은 시야, 버킷시트의 낮고 딱딱한 착좌감과 도저히 인간(성인)이 앉을 자리로는 보이지 않는 뒷좌석까지, 보통의 308로는 꿈도 꾸지 못할 불편한 ‘사치스러움’이 있다. 익스테리어의 디자인 요소로만 생각했던 더블 버블 루프는 비좁고 답답하기 마련인 스포츠쿠페의 머리공간을 실제로 확장시키는 데 꽤 효과적인 역할을 해낸다. 길쭉한 리어 속에 숨겨진 트렁크공간은 실제로도 꽤 큰 384L. 여기에 있으나 마나 한 뒷좌석을 접으면 화물공간만 760L까지 늘어난다. 스포츠쿠페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실용성이다.
그냥 예쁘기만 한 차가 아니다
앞바퀴굴림 플랫폼을 공유하는 ‘자칭’ 스포츠카는 실제 달려보면 멋부리기용 스페셜티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것은 디자인일 뿐, 속에 든 것은 양산 해치백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RCZ만큼은 남다른 기대를 안고 스티어링 휠을 잡는다. 별 볼일 없는 메커니즘을 가진 양산 해치백에도 비범한 핸들링을 불어넣는 데 일가견이 있는 회사가 푸조 아니던가.
이 차의 엔진은 1.6L 터보, BMW와 함께 개발해서 미니에 들어가는 바로 그 엔진이다. RCZ의 기본 모델의 154마력도 배기량으로는 적은 출력이 아니지만 시승차는 고성능 버전인 만큼 엔진을 새로 손보았다. 터빈과 배기 시스템을 튜닝해서 만들어낸 출력은 200마력. 최대토크는 28kg·m나 된다. 같은 엔진을 쓰는 미니 중에서도 이 정도 출력은 스테이지2 튜닝을 거친 JCW 정도나 되어야 가능하다. 스펙만 보면 있는 대로 출력을 쥐어짠 세팅처럼 보이는데, 이런 엔진일수록 보통 저회전에서는 맥없이 빌빌대다가 후반부에 왈칵 터지는 출력 때문에 엔진의 힘을 뽑아 쓰는 달리기가 무척 힘들어진다. 하지만 가속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토크밴드는 예상과는 정반대의 성향. 회전을 시작하면 최대토크가 1,700rpm에서 금방 나와서 4,500rpm까지 지속되는 두툼한 토크밴드를 가졌다. 이 배기량에 이런 출력이 나오는 것도 놀라운데, 연비는 15.1km/L나 되고 CO₂ 배출량은 고작 155g/km밖에 안 된다. 최근의 다운사이징 엔진 기술의 정수가 모여 있는 세계 최정상급 엔진으로 꼽기에 모자람이 없는 성능이다.
FF 최강 핸들링의 고성능 수동 모델
다이나미끄라는 이름을 붙인 이 고성능 RCZ에 허락된 유일한 변속기는 수동 6단이다. 자동변속기의 고성능 모델은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이 정도의 토크에 대응하는 자동변속기가 준비되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달리 말하자면 고성능 모델은 수동변속기가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유럽시장의 특성이 반영된 탓이기도 하다. 자동변속기가 아니면 판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국내의 수입차시장에서 수동 스포츠 모델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한불모터스의 용단은 자동차 매니아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고마운 일이다.
308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하체의 구성은 별로 다를 게 없다. 프론트 맥퍼슨 스트럿, 리어 토션 빔이라는 구성은 국산 소형차에도 두루 쓰이는 구조다. 하지만 이 단순한 하체가 만들어내는 거동은 경이롭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물론 강화 스프링과 댐퍼, 안티롤바를 적용한 탄탄한 하체로 인해 노멀 RCZ보다 한 차원 올라간 주행능력을 보이리라고는 진작에 예상했던 일. 그러나 낮은 속도에서 승차감을 조금 희생하긴 했지만 높아진 출력에 맞추어 세팅한 이 차의 코너링은 지금껏 경험한 앞바퀴굴림 중 단숨에 최강의 수준으로 뛰어오른다. 스티어링 휠을 감는 것과 동시에 차의 앞머리가 마치 평행 이동하듯 코너로 감겨드는 회두성은 뒷바퀴를 굴리는 퓨어 스포츠 모델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지나치게 크지 않나 싶었던 235/40 R19 사이즈의 타이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접지력으로 높은 코너링 스피드를 버텨낸다. 와인딩 이후 달려본 최고속 영역에서의 안정감도 불만을 가질 빌미조차 주지 않는다.
엔진만 보고 감히 스페셜티카로 분류하려 했던 기자의 편견은 이 차의 압도적인 운동성능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스포츠카와 스페셜티카의 경계영역에 애매모호하게 서 있던 차가 RCZ라면 다이나미끄는 확실히 스포츠카로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뛰어난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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