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법정 "故人 스님" 冊 절판 인생다이어리(법정스님, 그리고 백석 김영한)
- [서경]테리우스
- 조회 수 263
- 2010.03.23. 09:23
||0||0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와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지난 3월 11일 법정 스님의 입적을 보면서 이 질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법정, 김영한, 백석, 이생진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하신 법정스님.
길상사를 기부하신 분이 바로 김영한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아무런 조건 없이 서울 3대 요정 중의 하나인 대원각을 기부한 그녀는 지금 현재 김영한은 현재 길상사 한쪽에 영원한 그의 법명처럼 영원한 길상화(吉祥華)로 잠들어 있다.
그녀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백석 시인의 여인이었다.
백석의 시 중 가장 사랑받는 시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가 바로 그녀라고 한다.
그녀는 22살의 나이에 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였던 백석을 만나게 되었다.
백석은 자야(子夜)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둘은 불꽃같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동거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생으로 살아가던 그녀를 떼어놓기 위해 백석의 어머니는 백석을 다른 여자에게 강제로 결혼까지 시켰다.
하지만 백석은 도망을 와 그녀와 함께 만주로 도피하자고 요구했으나 그녀는 앞길이 창창한 그의 인생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으로 그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 후 백석은 북한에 그녀는 이 땅에 남아 서로를 그리워했다.
그녀는 사업으로 성공했고 반공법 때문에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하다가
1989년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창작과비평사)>의 글을 발표하며 백석과의 사랑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녀는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백석과의 3년간의 사랑을 평생 동안 기억하며 1997년 11월 사재 2억을 출연, 백석문학상(창작과비평사 주관)을 제정하고, 1000억 상당의 대원각 땅을 기부해 지금의 길상사가 세워진 것이다.
그 사연을 이생진 시인은 애절한 시로 이렇게 표현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ㅡ 1000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ㅡ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법정스님의 입적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이 애절한 대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1000억이라는 돈을 낸 것에 대해 후회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1000억이 백석의 시 한 줄보다도 못하다고 말했던 그녀의 삶의 자세, 사랑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그리고…. 과연 나는 세상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 지 다시 한 번 점검해본다.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와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지난 3월 11일 법정 스님의 입적을 보면서 이 질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법정, 김영한, 백석, 이생진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하신 법정스님.
길상사를 기부하신 분이 바로 김영한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아무런 조건 없이 서울 3대 요정 중의 하나인 대원각을 기부한 그녀는 지금 현재 김영한은 현재 길상사 한쪽에 영원한 그의 법명처럼 영원한 길상화(吉祥華)로 잠들어 있다.
그녀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백석 시인의 여인이었다.
백석의 시 중 가장 사랑받는 시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가 바로 그녀라고 한다.
그녀는 22살의 나이에 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였던 백석을 만나게 되었다.
백석은 자야(子夜)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둘은 불꽃같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동거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생으로 살아가던 그녀를 떼어놓기 위해 백석의 어머니는 백석을 다른 여자에게 강제로 결혼까지 시켰다.
하지만 백석은 도망을 와 그녀와 함께 만주로 도피하자고 요구했으나 그녀는 앞길이 창창한 그의 인생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으로 그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 후 백석은 북한에 그녀는 이 땅에 남아 서로를 그리워했다.
그녀는 사업으로 성공했고 반공법 때문에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하다가
1989년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창작과비평사)>의 글을 발표하며 백석과의 사랑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녀는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백석과의 3년간의 사랑을 평생 동안 기억하며 1997년 11월 사재 2억을 출연, 백석문학상(창작과비평사 주관)을 제정하고, 1000억 상당의 대원각 땅을 기부해 지금의 길상사가 세워진 것이다.
그 사연을 이생진 시인은 애절한 시로 이렇게 표현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ㅡ 1000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ㅡ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법정스님의 입적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이 애절한 대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1000억이라는 돈을 낸 것에 대해 후회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1000억이 백석의 시 한 줄보다도 못하다고 말했던 그녀의 삶의 자세, 사랑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그리고…. 과연 나는 세상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 지 다시 한 번 점검해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