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새시대의 지식인, 빛나는 자존감
- 씨페이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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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hanamana.de/hana/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288:2010-09-21-07-24-41&catid=8&Itemid=15
내게는 같은 책을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읽는 습관이 있다. 어떤 책의 어떤 문장을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갑작스런 충동이 사랑병처럼 강렬하게 차오를 때도 종종 있다.
때문에 한번 좋아진 책은 몇십 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하고 다 끌고 다녔다. 그런데 나는 요즘 남에게 책을 주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한다. 좋아하고 유익한 책이라도 한번 읽었으면 아낌없이 주려고 한다. 책이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널리 읽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권은 예외다. 법륜 스님의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학"은 남에게 빌려줬다가도 다 읽었다고 하면 쏜살같이 달려가 받아온다. 이 책은 책장에 꽂혀있는 법이 없고 항상 화장실이나 침대 밑에 널려 있다. 며칠 전 읽은 한 대목을 소개한다.
"현재를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 혹은 세계는 늘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사회 혹은 세계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가 우리들을 옭아맬 수도 있다. ... 주로 지식인 또는 엘리트 집단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들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사회 전체가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국가라면 이웃 나라에 짓밟히는 요인이 될 수 있고, 개인이라면 경쟁 대열에서 처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문명이라면 한 문명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이런 예를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선조 말엽, 당시 엘리트 계층이었던 선비들이 미래를 읽고 예측하는 안목을 가졌더라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거나 외세 때문에 분단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는 그야말로 격변기 중의 격변기였다. 서구 열강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을 침략하고, 거대한 중국은 붕괴되고 있었으며, 신분제사회는 무너지고, 전통사회의 기틀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도 더듬이가 잘린 곤충들처럼 무디게 움직였기 때문에 어떤 대처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민족 전체가 100년이 넘도록 고통을 겪었다......
지금 우리들은 100년 전 선조들이 겪었던 그 격변의 시대보다도 변화의 진폭이 더 큰 세계화의 시대,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막연한 혼돈과 불안에 휩싸여 있을 뿐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 우리들의 삶을 얼마만큼 변화시킬지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법륜 스님의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학" 96쪽, 정토출판, 2002년
마침 이 문장을 읽은 날, 나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사대강 토론회에서 "내년 6월께 공사가 끝난 뒤 물이 썩고 악화한다는 실증적 자료가 나오면 정권을 내놓겠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주1)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우리나라가 정말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환경피해는 공사가 끝나는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치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이 나라 자손이 살아갈 터전을 지킬 정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 이치는 대단한 첨단 지식이 아니다. 외국의 사례만 읽어도 알 수 있고 웬만한 네티즌이면 아는 사실이다. 정부가 사대강공사의 모델로 삼는다는 독일 라인강과 이자르강 준설의 후유증으로 지하수가 땅속으로 꺼져 숲이 죽고 경작지가 말라가는 현상은 공사가 끝난 10-20년 후 나타나기 시작했다.(주2) 자연은 그렇게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악착같이 견디다가 한도를 넘는 어느 순간 사정없이 무너져내린다.
라인강에 보를 설치하면서 홍수피해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지금 독일의 중학교에서도 가르친다.(주3) 그러나 그런 환경피해가 금방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라인강에 보가 계속 건설되었다. 자연의 섭리를 파악한 1980년에야 라인강에 계획되었던 보 건설은 모두 취소되고 법으로 보 건설이 금지되었다. 백년에 한번 일어나던 규모의 대홍수가 라인강에 보를 설치한 후 해마다 일어난 사실을 보여주는 비교 그래프는 독일 정부의 극비문서가 아니라 독일 연방자연보호청의 대국민 홍보자료에 나온다.(주4)
원희룡 의원이 환경피해가 뒤늦게 나타난다는 이치를 몰라서 저런 소리를 했어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했다면 더 한심한 노릇이다. 알면서 그랬다면 국민을 속였다는 말인데, 속임수도 격이 있지, 국민의 수준을 뭘로 보고 저런 얕은 속임수를 쓰는지 기가 막힌다.
둘째, 정권은 일개 국회의원이 자기 맘대로 가져갔다가 내놓는 물건이 아니다. 정부든 야당이든 여당이든, 국민이 그만하라고 하면 언제든지 물러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요즘들어 도를 넘어서는 경거망동을 하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사대강공사에 대해 "지금 착수하는 단계라면 선택 폭이 많고 얼굴 붉힐 일이 없을 텐데, 지금 30~60% 공정율을 보이는 상황에서..."라며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했다. 사대강공사 착수 단계에서 정부가 국민의 반대를 묵살하고 공사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얼굴 붉혔던 일을 벌써 잊었는가? 몇십 년 전도 아니고 불과 몇달 전에 일어난 일을 저렇게 왜곡하다니. 거의 생떼 수준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2008년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경부운하는 반드시 한다는 전제 하에 환경 경제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하겠다"(주5)고 말함으로써 '할지 안 할지 결정하기 위한 검토가 반드시 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식의 초보적 논리 모순을 드러냈음에도, 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런 모순된 말에 대항해 논리를 펼치자니, 국민의 지성이 모욕당하는 느낌이다.
법륜 스님이 썼듯이 "100년 전 선조들이 겪었던 그 격변의 시대보다도 변화의 진폭이 더 큰 세계화의 시대, 새로운 문명의 시대"에,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커녕 당장 자기가 말하는 문장의 앞뒤도 맞추지 못한 채 찰나적인 눈속임을 일삼는 인사들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지식인 또는 엘리트 집단'이라니, 국가적 위기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세상이 변해서 그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지식인이 될 수 없다. 권력층이 정보를 독점하여 국민의 더듬이를 잘라버리고 마음대로 끌고다닐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30년 전 광주학살 현장을 찍은 필름이 독일 기자의 과자상자에 감춰져 김포공항을 빠져나가 독일 제1공영TV의 저녁뉴스를 타고 유럽 전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국내에선 옆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한국 신부님들이 '나는 처자식이 없으니 죽어도 괜찮다'는 각오로 몸에 숨겨 다시 한국으로 반입한 비디오 테잎이 은밀히 상영됨으로써 광주학살의 진실이 장장 6년만에 국내에 알려졌다.(주6) 그런 시대가 있었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지만 이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시대 얘기로 느껴지는 이유는 세상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덕분에 이제 권력이나 학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올바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선진 외국도 이렇게 한다"는 말로 모든 거짓을 덮고 모든 불의를 합리화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정보를 독점하고 한 수 앞섰던 소수의 권력자 대신 수많은 지식인, 지성인들이 대중 속에서 탄생하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세상이 열렸다. 인터넷은 학력과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도 명확한 근거를 토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얼마든지 많은 사람을 깨우치고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어느 저명한 권력지향형 교수가 한국과 지형이 비슷한 스위스에도 운하가 있다고 주장하면, 유럽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위키백과에서 유럽 수로지도를 찾아 인터넷에 올려 반박할 수 있고,(주7) 이를 본 또다른 네티즌은 구글맵과 비교하여 산맥이 있는 곳에는 수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알릴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이 하천 재자연화공사의 성공작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독일 이자르 강의 물도 보가 있어서 풍부하고 깨끗한 것이라 말해도, 이자르 강 근처에 사는 평범한 교포가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보라는 것이 독일의 공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문화재일 뿐 강물이 깨끗하게 하는 원인은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 알릴 수 있다.(주8)
어느 신문사 기자가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가 강을 완전히 자연으로 되돌리지 않고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린 것이라는 뮌헨 수자원국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 인공과 자연이 적절히 섞인 상태가 최선인 것처럼 호도해도,(주9) 뮌헨에서 자식을 키우는 교포는 독일정부가 독일 학생 교육용으로 만든 유럽연합 물관리 기본지침을 번역해서 소개함으로써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다.(주3, 주10) 평범한 이들이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전함으로써 국민을 향한 진실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넉넉한 월급 받으면서 사대강공사를 홍보하는 관료들에 대항하여 어디서 돈을 받기는 커녕 생업을 하는 틈틈이 잠을 줄여가며 번역을 하고 글을 쓰는 자원봉사자들이 절대로 먼저 지쳐 떨어지지 않을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부패한 권력 대신 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지순한 염원이다. 이 염원은 사회를 이끌겠다는 우쭐한 공명심이 아니라, 세계가 용틀임하는 이 격동의 시대에 한국이 자기 살을 파먹으며 연명하는 토건국가로 남아 있다가는 다시 한번 망할 수밖에 없다는 절대절명의 위기의식에서 나온다. 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종족을 번식하려는 본능의 몸부림이다. 봄에 새싹이 터오르듯이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그 빛나는 자존감을 그 어떤 권력이나 재력이 막을 수 있으리.
주 해설 및 증빙 자료 링크
주1: 한겨레 2010.9.16
주2: 라인강 상류에 위치한 노이엔부르그(프라이부르그 행정권)의 강변숲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툴라의 공사(1817-1876)가 끝난지 십년 만에 지하수면이 표토에서 2m 아래로, 1900년 무렵에는 나무 뿌리가 닿지 못하는 깊이로 내려갔다. (빨간치마네집, 라인강 인공개량의 후유증에서 독일 전문지를 인용한 글. 원문 출처는 '데어 라인' 알베르트 라이프/ 폴커 슈페트 교수 공저, Der Rhein, Albert Reif/Volker Späth) ;독일 이자르 강의 준설과 직강화 공사는 1888년에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강바닥과 지하수가 하강하는 현상을 막기 위한 하상보호 공사는 1910-1920 사이에 진행되었다. (빨간치마네집, 독일 이자르 강, 시련의 역사)
주3: 강, 물 이상의 존재 [학생용 학습교재] (독일 연방환경부 2009), 번역연대
주4: 라인 강 보 설치와 100년 빈도 홍수의 상관관계. 세로축은 홍수 수위, 가로축은 보 설치 년도. 1928년 최초의 보 설치 이후 1950년대부터 보를 줄줄이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라인강의 홍수 간격은 짧아져 100년 빈도 홍수가 최근에는 몇 년 간격으로 일어난다. 아울러 라인 강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던 식물성장기 홍수마저 일어나는 이변이 생겼다(검은 막대). (출처: 독일연방 자연보호ㆍ생태계 연구소, 휘긴/헨리히프라이제 공저) 도표 크게 보기
주5: 서울신문 2008.2.29
주6: 광주학살의 진실과 당시의 언론통제 상황을 보여주는 KBS 다큐 '푸른눈의 목격자', 유튜브, May the blue eye witnesses 80 years. 01.avi , 총 여섯 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었으니 제목 끝에 붙은 번호 순서대로 계속 보세요. 어찌된 일인지 3번은 없네요. ㅠㅠ 1번부터 보기
주7: 위키페디아 유럽 수로망 지도 Europäische Wasserstraßen
주8: 빨간치마네 집,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 총감독과의 인터뷰
주9: 뉴데일리 2010.9.9.
주10: 강, 물 이상의 존재 [교사용 학습교재] (독일 연방환경부 2009), 번역연대
내게는 같은 책을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읽는 습관이 있다. 어떤 책의 어떤 문장을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갑작스런 충동이 사랑병처럼 강렬하게 차오를 때도 종종 있다.
때문에 한번 좋아진 책은 몇십 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하고 다 끌고 다녔다. 그런데 나는 요즘 남에게 책을 주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한다. 좋아하고 유익한 책이라도 한번 읽었으면 아낌없이 주려고 한다. 책이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널리 읽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권은 예외다. 법륜 스님의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학"은 남에게 빌려줬다가도 다 읽었다고 하면 쏜살같이 달려가 받아온다. 이 책은 책장에 꽂혀있는 법이 없고 항상 화장실이나 침대 밑에 널려 있다. 며칠 전 읽은 한 대목을 소개한다.
"현재를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 혹은 세계는 늘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사회 혹은 세계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가 우리들을 옭아맬 수도 있다. ... 주로 지식인 또는 엘리트 집단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들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사회 전체가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국가라면 이웃 나라에 짓밟히는 요인이 될 수 있고, 개인이라면 경쟁 대열에서 처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문명이라면 한 문명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이런 예를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선조 말엽, 당시 엘리트 계층이었던 선비들이 미래를 읽고 예측하는 안목을 가졌더라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거나 외세 때문에 분단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는 그야말로 격변기 중의 격변기였다. 서구 열강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을 침략하고, 거대한 중국은 붕괴되고 있었으며, 신분제사회는 무너지고, 전통사회의 기틀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도 더듬이가 잘린 곤충들처럼 무디게 움직였기 때문에 어떤 대처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민족 전체가 100년이 넘도록 고통을 겪었다......
지금 우리들은 100년 전 선조들이 겪었던 그 격변의 시대보다도 변화의 진폭이 더 큰 세계화의 시대,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막연한 혼돈과 불안에 휩싸여 있을 뿐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 우리들의 삶을 얼마만큼 변화시킬지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법륜 스님의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학" 96쪽, 정토출판, 2002년
마침 이 문장을 읽은 날, 나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사대강 토론회에서 "내년 6월께 공사가 끝난 뒤 물이 썩고 악화한다는 실증적 자료가 나오면 정권을 내놓겠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주1)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우리나라가 정말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환경피해는 공사가 끝나는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치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이 나라 자손이 살아갈 터전을 지킬 정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 이치는 대단한 첨단 지식이 아니다. 외국의 사례만 읽어도 알 수 있고 웬만한 네티즌이면 아는 사실이다. 정부가 사대강공사의 모델로 삼는다는 독일 라인강과 이자르강 준설의 후유증으로 지하수가 땅속으로 꺼져 숲이 죽고 경작지가 말라가는 현상은 공사가 끝난 10-20년 후 나타나기 시작했다.(주2) 자연은 그렇게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악착같이 견디다가 한도를 넘는 어느 순간 사정없이 무너져내린다.
라인강에 보를 설치하면서 홍수피해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지금 독일의 중학교에서도 가르친다.(주3) 그러나 그런 환경피해가 금방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라인강에 보가 계속 건설되었다. 자연의 섭리를 파악한 1980년에야 라인강에 계획되었던 보 건설은 모두 취소되고 법으로 보 건설이 금지되었다. 백년에 한번 일어나던 규모의 대홍수가 라인강에 보를 설치한 후 해마다 일어난 사실을 보여주는 비교 그래프는 독일 정부의 극비문서가 아니라 독일 연방자연보호청의 대국민 홍보자료에 나온다.(주4)
원희룡 의원이 환경피해가 뒤늦게 나타난다는 이치를 몰라서 저런 소리를 했어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했다면 더 한심한 노릇이다. 알면서 그랬다면 국민을 속였다는 말인데, 속임수도 격이 있지, 국민의 수준을 뭘로 보고 저런 얕은 속임수를 쓰는지 기가 막힌다.
둘째, 정권은 일개 국회의원이 자기 맘대로 가져갔다가 내놓는 물건이 아니다. 정부든 야당이든 여당이든, 국민이 그만하라고 하면 언제든지 물러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요즘들어 도를 넘어서는 경거망동을 하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사대강공사에 대해 "지금 착수하는 단계라면 선택 폭이 많고 얼굴 붉힐 일이 없을 텐데, 지금 30~60% 공정율을 보이는 상황에서..."라며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했다. 사대강공사 착수 단계에서 정부가 국민의 반대를 묵살하고 공사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얼굴 붉혔던 일을 벌써 잊었는가? 몇십 년 전도 아니고 불과 몇달 전에 일어난 일을 저렇게 왜곡하다니. 거의 생떼 수준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2008년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경부운하는 반드시 한다는 전제 하에 환경 경제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하겠다"(주5)고 말함으로써 '할지 안 할지 결정하기 위한 검토가 반드시 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식의 초보적 논리 모순을 드러냈음에도, 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런 모순된 말에 대항해 논리를 펼치자니, 국민의 지성이 모욕당하는 느낌이다.
법륜 스님이 썼듯이 "100년 전 선조들이 겪었던 그 격변의 시대보다도 변화의 진폭이 더 큰 세계화의 시대, 새로운 문명의 시대"에,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커녕 당장 자기가 말하는 문장의 앞뒤도 맞추지 못한 채 찰나적인 눈속임을 일삼는 인사들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지식인 또는 엘리트 집단'이라니, 국가적 위기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세상이 변해서 그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지식인이 될 수 없다. 권력층이 정보를 독점하여 국민의 더듬이를 잘라버리고 마음대로 끌고다닐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30년 전 광주학살 현장을 찍은 필름이 독일 기자의 과자상자에 감춰져 김포공항을 빠져나가 독일 제1공영TV의 저녁뉴스를 타고 유럽 전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국내에선 옆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한국 신부님들이 '나는 처자식이 없으니 죽어도 괜찮다'는 각오로 몸에 숨겨 다시 한국으로 반입한 비디오 테잎이 은밀히 상영됨으로써 광주학살의 진실이 장장 6년만에 국내에 알려졌다.(주6) 그런 시대가 있었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지만 이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시대 얘기로 느껴지는 이유는 세상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덕분에 이제 권력이나 학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올바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선진 외국도 이렇게 한다"는 말로 모든 거짓을 덮고 모든 불의를 합리화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정보를 독점하고 한 수 앞섰던 소수의 권력자 대신 수많은 지식인, 지성인들이 대중 속에서 탄생하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세상이 열렸다. 인터넷은 학력과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도 명확한 근거를 토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얼마든지 많은 사람을 깨우치고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어느 저명한 권력지향형 교수가 한국과 지형이 비슷한 스위스에도 운하가 있다고 주장하면, 유럽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위키백과에서 유럽 수로지도를 찾아 인터넷에 올려 반박할 수 있고,(주7) 이를 본 또다른 네티즌은 구글맵과 비교하여 산맥이 있는 곳에는 수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알릴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이 하천 재자연화공사의 성공작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독일 이자르 강의 물도 보가 있어서 풍부하고 깨끗한 것이라 말해도, 이자르 강 근처에 사는 평범한 교포가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보라는 것이 독일의 공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문화재일 뿐 강물이 깨끗하게 하는 원인은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 알릴 수 있다.(주8)
어느 신문사 기자가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가 강을 완전히 자연으로 되돌리지 않고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린 것이라는 뮌헨 수자원국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 인공과 자연이 적절히 섞인 상태가 최선인 것처럼 호도해도,(주9) 뮌헨에서 자식을 키우는 교포는 독일정부가 독일 학생 교육용으로 만든 유럽연합 물관리 기본지침을 번역해서 소개함으로써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다.(주3, 주10) 평범한 이들이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전함으로써 국민을 향한 진실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넉넉한 월급 받으면서 사대강공사를 홍보하는 관료들에 대항하여 어디서 돈을 받기는 커녕 생업을 하는 틈틈이 잠을 줄여가며 번역을 하고 글을 쓰는 자원봉사자들이 절대로 먼저 지쳐 떨어지지 않을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부패한 권력 대신 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지순한 염원이다. 이 염원은 사회를 이끌겠다는 우쭐한 공명심이 아니라, 세계가 용틀임하는 이 격동의 시대에 한국이 자기 살을 파먹으며 연명하는 토건국가로 남아 있다가는 다시 한번 망할 수밖에 없다는 절대절명의 위기의식에서 나온다. 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종족을 번식하려는 본능의 몸부림이다. 봄에 새싹이 터오르듯이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그 빛나는 자존감을 그 어떤 권력이나 재력이 막을 수 있으리.
주 해설 및 증빙 자료 링크
주1: 한겨레 2010.9.16
주2: 라인강 상류에 위치한 노이엔부르그(프라이부르그 행정권)의 강변숲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툴라의 공사(1817-1876)가 끝난지 십년 만에 지하수면이 표토에서 2m 아래로, 1900년 무렵에는 나무 뿌리가 닿지 못하는 깊이로 내려갔다. (빨간치마네집, 라인강 인공개량의 후유증에서 독일 전문지를 인용한 글. 원문 출처는 '데어 라인' 알베르트 라이프/ 폴커 슈페트 교수 공저, Der Rhein, Albert Reif/Volker Späth) ;독일 이자르 강의 준설과 직강화 공사는 1888년에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강바닥과 지하수가 하강하는 현상을 막기 위한 하상보호 공사는 1910-1920 사이에 진행되었다. (빨간치마네집, 독일 이자르 강, 시련의 역사)
주3: 강, 물 이상의 존재 [학생용 학습교재] (독일 연방환경부 2009), 번역연대
주4: 라인 강 보 설치와 100년 빈도 홍수의 상관관계. 세로축은 홍수 수위, 가로축은 보 설치 년도. 1928년 최초의 보 설치 이후 1950년대부터 보를 줄줄이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라인강의 홍수 간격은 짧아져 100년 빈도 홍수가 최근에는 몇 년 간격으로 일어난다. 아울러 라인 강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던 식물성장기 홍수마저 일어나는 이변이 생겼다(검은 막대). (출처: 독일연방 자연보호ㆍ생태계 연구소, 휘긴/헨리히프라이제 공저) 도표 크게 보기
주5: 서울신문 2008.2.29
주6: 광주학살의 진실과 당시의 언론통제 상황을 보여주는 KBS 다큐 '푸른눈의 목격자', 유튜브, May the blue eye witnesses 80 years. 01.avi , 총 여섯 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었으니 제목 끝에 붙은 번호 순서대로 계속 보세요. 어찌된 일인지 3번은 없네요. ㅠㅠ 1번부터 보기
주7: 위키페디아 유럽 수로망 지도 Europäische Wasserstraßen
주8: 빨간치마네 집,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 총감독과의 인터뷰
주9: 뉴데일리 2010.9.9.
주10: 강, 물 이상의 존재 [교사용 학습교재] (독일 연방환경부 2009), 번역연대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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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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