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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가 명차인 이유

도깨비뉴스에서 퍼왔습니다. 포르쉐 타보고 싶네요.

‘포르쉐 바이러스??’

포르쉐를 숭배하는 자동차 마니아들은 포르쉐의 매력을 그렇게 불렀다. 과연 포르쉐를 한 번 맛본 사람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치명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기자는 3월 29일 밤 BMW M5에 몸을 싣고 태백으로 달렸다. 회사에는 하루 휴가까지 신청했다.

지금까지 기자가 경험했던 포르쉐는 964 카브리올레와 996 카레라, 카이엔 터보 등 3종류. 이들 모두 짧은 시간 일반도로에서 주행한 것이 전부여서 진정한 포르쉐의 맛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포르쉐 대부분의 차종을 일반도로가 아닌 서킷에서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포르쉐 월드로드쇼▼
‘트랙에서 포르쉐를 맘껏 몰아보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된다!’

포르쉐 한국 공식 수입사인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는 이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포르쉐 월드 로드쇼’를 3월 18일부터 31일까지 강원도 태백 준용 서킷에서 개최했다. 포르쉐 잠재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이 행사에는 △911 C4S △캐이먼S △카이엔 터보 △박스터S 등 10가지 차종 20대가 독일 본사에서 직접 공수됐다. 슈퍼카급인 카레라GT를 제외하고 현재 포르쉐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종이 출석했다.

참가자들은 차종별로 모두 시승이 가능한데 △오프로드 △핸들링 △브레이킹 △슬라럼 △로드 투어 등의 5가지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된다. 먼저 보조석에 앉아 독일에서 온 프로드라이버의 시범을 한 차례 본 다음 직접 운전을 하며 체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반인 참가비는 11만 원이며 강원랜드 골프텔 1박과 식사가 제공된다. 리포터는 3월 30일 행사에 참석했다.

▼험난한 여정▼
29일 오후 7시경 부산에서 신대구부산고속도로에 M5를 올렸다. 참고로 M5는 400마력으로 수동 6단 변속기 사양만 생산됐으며, 0→100km/h는 5.3초에 끊고 250km/h에 걸려 있는 속도제한 프로그램을 해제할 경우 최고속이 300km/h에 이르는 괴물 세단. 짧지 않은 여정인 만큼 여유를 갖고 차량 흐름에 맞춰 태백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고속도로에 오른 M5 에게는 다소 가혹할지 모르지만 2000rpm대를 넘기지 않고 차량의 흐름을 따랐다. 운전피로를 줄여 최고의 컨디션으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대구에서 다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 탄 뒤 경북 안동에서 고급휘발유를 가득 채웠다. 태백으로 가는 길에 있는 마지막 고급휘발유 판매 주유소였다. M5의 엔진은 압축비가 높아 고급휘발유를 넣지 않으면 노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출력하락도 심하다. 안동에서부터는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산악 국도로 124km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주유하는 동안 차 밖으로 나와 체조를 하며 몸을 추슬렀다. 교통사고의 절반이상이 집중력과 판단력 저하 때문이다.

재미있는 산길 운전을 기대하고 안동을 출발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봉화군에 접어들자 눈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태백산에 접어들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설로 바뀌었다. 이틀 뒤면 4월인데 폭설이라니. 라디오에서는 강원도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흘러나왔고 어느새 노면이 하얗게 변했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빨리 다뤄도 후륜이 슬슬 미끄러지고 시계는 10m에 불과했다. 이런 낭패가...

계기판에 나오는 외부온도계는 영하 2도까지 떨어졌다. 곧 노면이 얼어버릴 것이다. 20분을 달려도 마주 오는 차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행사참석은커녕 태백산 속에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에 정신없이 달렸다. 그래봐야 시속 10~20km/h. 다행히 눈은 잦아들고 악전고투 끝에 겨우 태백시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몸은 녹초가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시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눈이 쌓여 태백시내는 완전히 설국(雪國)이 됐다. 힘겹게 눈을 헤치고 나가던 M5는 결국 두문동터널로 올라가는 고갯길에서 서서히 속도가 떨어지며 후륜이 흔들렸다. 여름용 UHP타이어가 달린 후륜구동차로 10cm나 눈이 쌓인 고갯길을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목적지인 강원랜드골프텔까지 남은 거리는 불과 10km. 340km를 달려왔는데 겨우 10km를 남겨두고 멈추다니. 시간은 자정을 넘었다.

기자가 상식코너에 ‘후륜구동과 눈길은 악연’이라는 글을 올렸듯이 이미 눈길에서 후륜구동의 한계를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에 판단은 빨랐다. 곧바로 차를 돌려 내리막길을 스키타듯 미끄러져 내려왔다. 눈이 쌓이는 것이 보일 정도로 적설량은 늘어만 갔다. 평지 운행도 도저히 힘들어져 태백시 태서초등학교 옆에 차를 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강원도 택시 운전사의 힘▼
차 안에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차 속에서 밤을 새야 하나. 여관이라도 찾으러 나가볼까. 그런데 택시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런 폭설에도 택시가 운행을 하나? 얼른 뛰어나가 택시를 세우고 물었다. “강원랜드 갈 수 있습니까” 대답은 간단했다. “추우니까 빨리 타세요” 택시가 그렇게 고마운 적은 처음이었다. 강원도 택시 운전사의 눈길 운전실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과연 갈 수 있을까’ 라는 물음표는 남았다.

“강원도에서는 5월까지 스노우타이어를 끼고 다녀야 합니다. 체인도 물론이죠.” 운전사는 그렇게 말하곤 태백시내를 내달렸다. 스노우타이어의 덕택인지 EF쏘나타 택시는 힘차게 평지를 달려 아까 그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잘 가는가 싶더니 스노우타이어의 약발이 떨어졌는지 점점 속도가 떨어진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아 피곤한데”라며 운전사가 혼잣말을 내뱉고는 차를 멈춘다. 트렁크를 뒤적이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교대 파트너가 체인을 빼놓은 것 같네. 어떻하죠”라고 말한다.

나더러 어떻하란 말인가. 우울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바라볼 뿐 할 말이 없었다. 그는 “그냥 가봅시다”라며 다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차는 멈출 듯 말 듯 비틀거리며 고갯길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바퀴가 빠르게 헛돌기 때문에 요금도 함께 치솟았지만 불만은 없었다. 그 때 옆에 다른 택시가 다가왔다. 역시 그 택시도 비틀비틀. 두 운전사는 서로 창문을 내리고 나란히 달리며 신나서 얘기까지 한다. “야 체인이 없다” “이 정도에 뭘 체인까지 껴요” “그런가. 그냥 가보자고” 운전만 해도 정신이 없는 판에 나란히 달리며 이야기까지...

어느새 택시는 골프텔에 도착했다. 요금은 2만5000원. 10km에 2만5000원이라니. 심야할증에 엄청난 눈길 휠스핀 때문이었다. 오전 1시가 넘었다.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나처럼 차를 버려두고 택시를 타고 올라오는 참가자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강원도 택시 운전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30일 오전 강원랜드 골프텔에서 바라본 풍경. 온세상이 눈으로 덮였다.


▼행사 취소▼
30일 오전 6시 40분쯤 포르쉐 측에서 설정해둔 모닝콜이 울린다. 4시간 밖에 못 잤다. 집중력 향상을 위해 고속도로에서 천천히 온 것이 허탕이 됐다. 호텔에서 조식 뷔페를 먹고 오전 8시30분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해야한다. 밖을 보니 세상이 하얗다. 서킷에도 눈이 많이 쌓였을 텐데 과연 행사가 가능할까. 태백시내에 내버려둔 차는 어떻게 됐을지 걱정도 든다. 모닝콜을 울렸으니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어수선한 마음에 일단 아침을 먹고 로비 앞으로 나갔다. 뜻밖에 지인 여러 명을 만났다. 다들 기자와 비슷한 자동차 환자들인데 이 바닥도 참 좁게 느껴졌다. 출발시간 오전 7시45분이 됐지만 포르쉐 관계자들은 우왕좌왕하기만 하고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역시 행사취소인가. 여기저기서 참가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포르쉐에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휴가를 내면서까지 이곳을 찾은 참가자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킷이 눈으로 덮여버렸다는데야 할 말이 없었다.

결국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 사장인 마이클 베터 씨와 독일인 인스트럭터들이 찾아와 행사취소를 공식 통보하고 사과했다. 참석자들은 그래도 아쉬웠는지 서킷 구경이라도 시켜달라고 했고 운영진들은 다시 회의에 들어갔다. 기자는 일단 객실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행사는 어차피 글렀고 나중에 카지노라도 한 번 구경하고 갈 요량이었다. 일찍 마음을 접는 편이 스스로를 위한 최선책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잤을까. 휴대전화가 울렸다. 오후 1시였다. 지인들이 행사재개를 알려왔다. 믿기지 않았다. 잠이 덜 깨 퉁퉁부은 얼굴로 로비에 내려갔더니 50여명에 이르는 참석자가 모였다. 20대 후반에서 60대까지 참석자의 연령층도 다양했다. 포기하고 돌아간 참석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되려는 그들의 의지는 강했다. 그렇게 많던 눈이 벌써 다 녹았단말인가. 그냥 대충 차 구경이나 시켜줄려고 그러나.

우선 지인이 몰고 온 신형 골프GTI를 타고 M5를 찾으러 갔다. 지인도 GTI가 어젯밤 골프텔 오르막길에서 멈춰서는바람에 오전에 눈이 치워진 것을 보고 차를 찾아왔다고 한다. 태백시내 한 귀퉁이에 M5는 반쯤 녹은 눈에 뒤덮여 처참한 모습이었다. 버려두고 간 주인이 원망스러겠지만 눈길과 친하지 않은 태생적 한계인 것을 어떻하겠나. 억울하면 다음 생에는 4륜구동으로 태어나거라. 그곳에서부터 워밍업을 위해 신나게 달려 도착한 태백준용서킷 주차장에는 20대의 포르쉐가 도열해 참가자들을 맞았다.

▼포르쉐 바이러스(中)▼

3월 30일 오후 1시 반.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강원도 태백준용서킷 주차장에는 20대의 포르쉐가 도열해 ‘어디 한 번 날 길들여보라’고 뻐기는 듯한 자세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웬만큼 차를 타 본 기자도 가슴이 설레었다. 직접 소유하기도 쉽지 않고 운전대 한 번 빌리기도 힘든 포르쉐를, 그것도 종류별로, 서킷에서 엔진과 타이어가 터질 정도로 마음껏 몰아볼 수 있다니. 이런 순간을 맞닥뜨리고도 심장박동수가 빨라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하철과 택시 버스 이외의 교통수단은 필요 없을 것이다.

포르쉐를 만나기 위한 이틀간 힘들었던 여정의 피로가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서킷 위에 10cm도 넘게 쌓였다던 지난밤의 눈도 반나절 만에 모두 사라졌다. 이번 행사에 동원된 포르쉐는 모두 20대로 모두 독일에서 직접 공수돼 왔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번호판이 달린 차가 있는 것으로 봐선 추가로 몇 대는 국내 딜러에서 조달한 것 같았다. 카레라GT를 제외하고 현재 판매되는 모든 차종이 자동과 수동변속기, 2륜과 4륜구동, 하드탑과 오픈의 종류별로 제공됐다.

행사는 먼저 교관소개와 대략적인 프로그램의 진행방법 안내로 시작됐다. 곧이어 ‘포르쉐’라는 자동차메이커에 대한 세뇌작업(?)도 이어졌다. 물론 참석자들은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11만 원의 참가비까지 내가며 강원도 산골을 찾은 사람들이기는 하다. 참석자들의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50여명의 참석자들은 다섯 개 조로 나뉘어 △핸들링 △오프로드 △슬라럼 △브레이킹 △로드투어 △교관들의 시범주행 등 6개의 프로그램을 체험하게 된다. 폭설로 행사진행이 늦어 로드투어는 취소됐다.

▼운전의 시작은 역시 자세▼
스키 수영 골프 테니스 탁구 등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자세에서 시작한다. 바르지 못한 자세에서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다. 운전도 마찬가지. 꼭 스포츠 드라이브가 아니더라도 올바른 운전자세는 중요하다. 나쁜 운전자세는 상황대처 능력이 떨어져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또 장거리 운전에서 빨리 피곤해진다.

교관들은 먼저 운전자세를 바로 잡아줬다. 일반 운전자의 90%는 운전자세가 올바르지 못하고, 나쁜 운전자세가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사고가 전체 사고의 10%를 차지한다는 조사결과를 본 기억이 있다. 운전대와의 거리, 등받이 각도, 두 손의 위치 등 신경써야 할 곳이 많다. 올바른 자세에 일단 적응되면 잘못된 운전자세가 주는 불안함과 불편함이 얼마나 큰지 금방 알게 된다.


운전대 위에 팔목이 놓이는 것이 알맞은 시트의 위치. 등받이는 100도 전후가 적당하다.


운전대 좌우를 잡고 왼발은 무릎이 120도 정도 구부러지도록 발판에 놓는 것이 좋다.


▼핸들링▼
911카레라s와 카이맨s 자동변속기, 카이맨s 수동변속기가 테스트카로 나왔다. 트랙을 가장 빨리 달리는 법을 배우며 포르쉐의 핸들링을 느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태백 트랙의 절반 정도를 전력질주할 수 있었다. 브레이킹 포인트와 터닝포인트, 코너 탈출구가 모두 파일론으로 표시돼 있어 어렵진 않았다.

먼저 카이맨s(295마력) 자동변속기 모델을 타고 피트를 빠져나오자말자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약간 쉰 음색을 내는 특유의 배기음이 등을 때렸다. 하지만 가속감은 배기음에 비해서는 밋밋했다. 빠르기는 한데 등을 때리는 듯한 토크감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자동변속기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제원상 0->100km/h는 6.1초였다.

첫 번째 코너가 다가왔다. 옆에 탄 교관은 브레이크 포인트를 넘기지 말라고 조언했다. 브레이크 포인트 바로 앞에서 풀~~브레이킹. 범퍼가 앞으로 숙여지는 노즈다이브 느낌이 거의 없다. 다소 딱딱한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쿵’하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속도가 뚝 떨어진다. 일반 세단과는 감속의 진행과정이 확연히 달랐다. 브레이크를 밟은 뒤 전륜 타이어와 서스펜션이 수축되는 과정이 없는 것처럼 느낌이 직접적이었다.

이런 브레이크의 느낌은 수퍼카에서는 더욱 명확해진다. 예전에 프로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쾨닉섹CC를 동승했었는데 급브레이크를 거는 순간 차체가 어디에 충돌한 것처럼 ‘쾅’하는 소리와 함께 준비동작 없는 급격한 마이너스 가속력으로 안면의 혈액이 땀구멍을 통해 튀어나와버릴 듯한 느낌이었다. 카이맨S는 그까지는 아니지만 쾨닉섹CC의 기억을 떠올릴 수는 있었다.

어쨌든 브레이크를 밟은 뒤 시프트다운에 들어갔다. 운전대에 붙어있는 팁트로닉 버튼을 아래로 눌렀다. 그런데 기어가 안내려간다. 아니 내려가기는 하는데 너무 더디게 느껴졌다. 한 단이 내려가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겠지만 한계상황에서는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올 정도로 무지하게 지루한 시간이다.

전담 교관인 악셀 매스(Axel Mass)에게 “변속시간이 너무 길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익숙해지면 편할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목소리에 자신감은 없어보였다. 포르쉐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다니는 그에게 포르쉐의 단점을 말하라는 요구는 무리였다. 포르쉐와 자동변속기의 만남은 클린턴과 르윈스키처럼 부적절했다. 아마 다음세대 포르쉐에는 BMW의 SMG나 폴크스바겐의 DSG처럼 수동변속기 기반의 자동변속기가 올라갈 것이라고 조심스럼게 예측해본다.

어찌어찌 다운시프트 변속은 이뤄졌고 첫 번째 코너 클리핑포인트를 지나면서 가속페달을 밟아 직선주로를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오옷~~’하는 소리가 나왔다. 전혀 흐트러짐 없는 안정적인 코너탈출에 감동이 밀려왔다. 곧이어 S자 코너가 다가왔고 좌측과 우측으로 급코너링이 이어지면서 핸들링 머쉰인 카이맨의 장점은 더욱 두드러졌다.

좌우로 급격한 하중이동에도 언제까지나 버텨줄 것 같은 차체의 안정성과 빠른 몸놀림은 엔진이 차체의 중간에 있는 미드쉽(MR) 스포츠카의 장점을 극명하게 표현했다. 2번째 랩에서는 좀 더 과감하게 차체를 몰아부쳤지만 카이맨은 여전히 기자의 핸들링을 가뿐하게 받아냈다. 주행안정장치(PSM)는 운전자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해 개입시점이 일반 승용차에 비해 훨씬 늦었지만 살짝살짝 후륜이 미끄러지는 상황에서도 컨트롤이 어렵지 않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카이맨 자동에 이어 카이맨 수동, 911카레라s 자동을 차례로 2랩씩 운전했다. 포르쉐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짧았지만 포르쉐라는 메이커에 대한 존경심을 갖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브레이킹▼
브레이크 테스트에 이용된 차량은 911카레라4s 카브리올레(355마력). 직선주로를 달려 시속 100km/h까지 올린 직후 급브레이크를 작동해 장애물을 회피한 뒤 포인트 안에 정지하는 코스였다. 이 차에는 가속페달에서 갑자기 발을 뗄 때 미리 브레이크를 살짝 잡아줘 급브레이크의 작동시간을 줄여주고, 일정 수준 이상의 브레이킹이 시도되면 저절로 최대 압력을 브레이크로 보내는 브레이크 어시시트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포르쉐니까, 그것도 911에다 4륜구동인 4s니까, 게다가 첨단 브레이크 보조시스템까지 장착했으니 당연히 급브레이크 후 회피동작이 안정적일 것이라 예상했다. 결과도 예상대로여서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연속적으로 급브레이크가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브레이크의 기계적인 성능이 유지되는 점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열안정성이 뛰어난 세라믹 컴포지트 브레이크(PCCB)가 장착되지 않은 모델이었는데도 브레이크 과열에 의해 브레이크 페달이 약간 딱딱해져 있는 것을 제외하면 150차례 이상 반복되는 급제동 테스트를 꿋꿋하게 버텨냈다.

새 타이어를 끼운 처음 상태보다는 오후가 깊숙해질수록 정지포인트를 벗어나 제동거리가 약간씩 늘어나는 것이 목격됐는데 황당하게 제동거리가 길어지는 현상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과 비교할 때 150차례 이후의 제동거리는 2m정도도 늘어나지 않았다. 타이어는 철심이 튀어나오기 직전 상태로 닳아있었는데도 말이다.


일반 중형세단의 경우 그런 과격한 브레이킹을 5번 정도 반복하면 제동거리가 길어지는 것이 감지되기 시작해 10번을 넘어서면 몇 미터씩 밀려버린다. 200km/h 이상에서 급브레이킹으로 정지상태까지 속도를 줄여버리면 단번에 브레이크가 먹통이 되는 차종도 경험했었다. 교관들의 시범주행 때 포르쉐는 220km/에서 반복적으로 퀵-브레이크를 걸어도 지속적인 브레이크 컨트롤이 가능했다. 스포츠카의 모범생으로 통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슬라럼▼
가장 재밌는 프로그램이었다. 빨간색 박스터s(280마력)를 이용해 파일론 사이를 빠르게 주행해 랩타임을 재는 게임이었다. 박스터의 가벼운 차체와 뛰어난 핸들링을 만끽할 수 있었다. 박스터는 빠른 차는 아니지만 파일론 사이를 리드미컬하게 빠져나갈 때의 짜릿함은 911카레라보다 한 수 위였다.

파일론 사이를 돌아나가면서 좌우로 차체의 하중이 급격히 쏠렸지만 이상적인 전-후륜 무게배분을 통해 절정에 이른 안정성과 쫀득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서스펜션은 절묘하게 이를 소화해 감탄을 자아냈다. 박스터는 세상의 모든 길이 한계령 같은 꼬불꼬불한 산길이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몇 번 마주친 박스터 2.7(240마력)은 고출력 세단에게는 꼬리를 내려야 했다. 박스터s는 그나마 300마력을 넘는 고출력 세단에 뒤쳐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다.

▼오프로드▼
카이엔은 두 번째 만남이었다. 터보모델을 고속화도로에서 테스트를 했었지만 핵심기능인 오프로드 능력을 맛보지 못해 뭔가 부족했다. 포장도로에서 카이엔 터보는 잘나가는 SUV였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카이엔의 오프로드 능력이 항상 궁금했다. 나머지 반쪽의 성능은 어떨까. 카이엔은 오프로드 성능에서도 과연 포르쉐의 엠블럼을 붙일 자격이 있을까.

카이엔을 위해 준비된 오프로드 코스는 △측면경사로 주행 △구덩이 탈출 △경사로 등반 △경사로 하강 등 4가지로 구성됐다. 참석자들은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카이엔 표(標)’ 오프로드 주행을 한 뒤 모두들 신기해하는 표정이었다.

측면경사로에서 차체가 옆으로 넘어질 것만 같았지만 교관은 10도는 더 기울어져야 넘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일 터이다. 또 깊게 패인 구덩이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부드럽게 통과할 때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가속페달을 살포시 밟고 있으면 카이엔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포르쉐 구동력제어장치(PTM) 덕분인데 전-후차축의 구동력을 상황에 맞게 배분하고 좌우 바퀴의 회전도 제한시켜 험로를 쉽게 탈출하도록 지원해준다. 차체의 강성도 뛰어나 비틀림이 심한 상황에서도 내장재의 미세한 잡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카이엔을 포장도로 주행용으로 구입하는 사람은 단순히 포르쉐 엠블럼을 돈으로 사는 것일 뿐 진정한 가치는 모르는 모르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초고가의 SUV로 차체가 상할지도 모르는 오프로드를 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또 5km/L를 턱걸이 할까 말까하는 시내주행 연비 또한 카이엔의 존재가치를 흔들리게 하는 요인이다. 연료효율이 높은 디젤엔진임에도 불구하고 건설장비 수준의 나쁜 연비를 자랑했던 허머 H1은 곧 퇴출된다고 한다. 부유한 사람들만이 선택하는 카이엔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때문에 앞날은 그리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포르쉐 바이러스(下)▼

드리프트로 코너를 돌아나가는 빨간색 포르쉐 카레라 911

포르쉐는 자동차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벤츠가 모든 자동차 기준이라면 포르쉐는 스포츠카의 기준이다. 대부분의 스포츠카가 포르쉐의 성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포르쉐보다 더 비싸고 빠른 스포츠카도 있지만 포르쉐만큼 사용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자동차는 없다. 그래서 포르쉐는 자동차의 명품으로 통한다.

최근 미국 내 고소득자들을 대상으로 최고의 명품 자동차 브랜드를 가리기 위한 설문조사에서 포르쉐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1위를 차지했다.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유럽 50대 기업 순위에서 포르쉐가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으며, 세계 100대 브랜드선정에서 브랜드가치 38억 달러로 76위에 오르기도 했다. 연간 판매가 8만대 수준인 소규모 브랜드에서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경이롭다.

▼포르쉐이기에 가능한 일▼
이런 강력한 잠재력을 지닌 브랜드여서인지 태백준용서킷에서 열린 월드로드쇼 진행은 정말 탄탄했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뒤처리도 깔끔했다. 1년에 한국에서 130여대 정도밖에 팔리지 않는 메이커가 연간 매출액의 1/100이 넘는 홍보행사를 진행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면 마케팅에서는 빵점이지만 자동차업계에서 대당 판매수익률이 1위인 포르쉐가 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포르쉐 사람들은 상품에 대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포르쉐 바이러스’의 확산을 자신하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전파력 있는 한 사람에게 심어 놓으면 쉽게 퍼진다는 원리를 제대로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수 억 원을 쏟아부은 행사에서 차량 트러블이라도 발생한다면 망신을 떠나 매출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돈을 들여 일부러 손해를 보는 꼴이다.

포르쉐가 행사에 동원한 차량들은 하루 혹은 이틀에 한 번씩 타이어를 교체할 정도로 혹사를 당했지만 별다른 고장이 없이 2주일간의 강행군을 무사히 마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3월 초 태국에서 로드쇼를 거친 뒤 곧바로 한국으로 들어왔고 3월 18~31일 행사를 마치고 다시 중국 상하이에서 똑같은 행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성능에서는 잠시 포르쉐를 앞설 수 있을지 몰라도 안정적인 성능과 내구성에서는 그 어떤 퓨어(pure) 스포츠카도 포르쉐를 누르지 못할 것 같았다.


하루만에 철심이 드러날 정도로 닳아버린 미쉐린 PS2 타이어


▼에필로그▼
행사에 동원된 차량에 쌓이는 기계적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서킷에서 항상 풀스로틀로 운전을 하고 변속도 한계 rpm부근에서만 이뤄진다. 특히 교관들이 시범운전을 보여주는 차량들은 영화에서처럼 타이어를 일부러 미끄러트려 드리프트로 서킷을 누비는데 이런 상황에서 차체와 서스펜션에 주어지는 부담은 엄청나다.

일반 승용차로 드리프트를 몇 번 하고 나면 차체가 비틀어져 도어가 제대로 닫히지 않기도 하고 서스펜션을 이루고 있는 고무제품들이 쉽게 찢어져 주행성이 곧바로 나빠지는 경우도 많다. 보통의 승용차라면 며칠 못 버티고 정비공장으로 향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르쉐는 보름간의 강행군에도 너끈히 버텨냈다.

기자가 참여하기 며칠 전 행사에서 태백주변 국도를 로드투어를 하던 중 참가자의 실수로 911카레라 한 대가 대형 트럭과 충돌해 폐차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운전자와 동승자의 부상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사고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사고 케이스 하나를 놓고 안전성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시사하는 내용이 없지는 않다.

사고를 당한 참가자들은 부산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았는데 포르쉐 한국법인 사장이 직접 부산의 병원을 방문해 문병을 하는 성의까지 보였다고 한다. 행사에 참가하기 전에 사고로 발생하는 비용은 운전자가 부담한다는 각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사고 운전자에게 비용을 물리지는 않았다.

포르쉐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슈퍼카적인 카리스마는 없다. 최고속도도 그들에 비해 약간은 뒤쳐진다. 하지만 포르쉐만의 드라이빙 감성은 그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으며 내구성은 퓨어스포츠카 업계에서는 도요타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더구나 중량배분에서 불리한 RR방식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핸들링의 반열에 올려놓은 기술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포르쉐를 최고의 스포츠카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포르쉐가 없었다면 인류가 약간은 심심했을 것 같다. 다만 비싼 가격 때문에 인류의 0.1%정도만 그 맛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스포츠드라이빙 스쿨에 동원된 포르쉐들


육중한 덩치의 카이엔이 보여주는 드리프트 묘기


태백준용서킷 주변 도로에서 펼쳐진 로드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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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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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은랑당교주™ 2006.06.07. 10:39
아~~미친다.....................끓어오르는 피를 어찌하란 말인가.....이건 분명 염장글이야....ㅡ.ㅡ;;;;
[경]초짱~! 2006.06.07. 23:05
전 딱한번 앉아보기만 했는데두 어찌나 설레이던지
운전 해보고 싶네여....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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