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님의 " 화해와 용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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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 이후 많은 관심과 재평가 작업이 시작 되고 있습니다만,
쉽게 끓고 쉽게 식는 냄비 또는 잠자리 기억력이 아니길 빌며..
정치인 김대중을 이야기하면서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몇가지 이야기를 적으며 마지막으로 강조하셨던 " 화해와 용서 " 에 대해 제 생각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60~70년대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은
박정희가 아닌 국민들의 눈물과 땀의 결과라는 장문의 글도 올라왔었지요?
" 과연 박정희식의 개발독재나 재벌독점 구조기반의 앨리트 통치외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 라는 물음에는 막상 쉽사리 대답치 못하는 분들을 위해
저는 자신 있게 이야기 합니다.
" 이미 청년 김대중이 있었노라고 .. 역사는 그를 빗겨 나갔지만, 국민들은 김대중을 잊어선 안된다고... "
김대중 대통령의 수십년전 글
몇개를 통해 여러분께 그 판단을 맡기고자 합니다. 다시 읽어보지만, 남겨진 정치인들과 국민들에게
거의 바이블 수준인 글들이 넘쳐납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 정확히 '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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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
전략..
여기서 장황하게 정치론을 늘어놀 여유는 없지마는 여하간 자본주의의 제도하에서는
노동자의 복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가 없는 것은 이미 세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한국 경제의 후진성을 지양하고 근대적 생산을 급속히 확충 발전시켜야 함을
서두른 나머지, 우선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놓고 그 후 서서히 노동자의 후생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논자가
많은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은 마치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에 고인 물속에서 구원을 호소하는 고기더러
동해 물을 끌어들일 때까지 기다리라는 개철지어의 장자고어와 마찬가지 모순으로서 그간에 있어서의 노동자와
전 근로계급의 고초와 희생을 무엇으로 감당해낼 것이며, 기술한 바 공산당과 대항해서 노동자가 어떻게
굳센 민주 진영의 선봉으로서 싸우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필자는 우리 나라 노동운동이 당장에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실시하도록 투쟁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아직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초보조차 제대로 못 갖춘 우리 나라 경제 형편으로 사회주의를 꿈꾼다는것은,
그것이 노동자에 의한 생산수단만의 관장을 주장하는 소극적 사회주의건 생산, 소비 양면의 장악을
목적하는 적극적 사회주의건 도저히 현실을 무시한 공상에 불과한 것인 동시에 사회주의 그 자체 역시
각국에서의 실험의 결과 상당한 결함이 있다는 것도 이미 주지되어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 노동운동이 지향할 길은 죄악적인 착취와 지배를 자행하는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일방,
우리의 실정이 용납지 않고 겸하여 전체주의적인 통제와 생산 능률의 후퇴를 면치 못하는 사회주의 자체도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며, 결국 사유재산과 개인의 창의는 이를 어디까지나 존중하되 종래와 같은 자본만의
우위지배를 단연 배격하고 노동, 자본, 기술의 3자가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동함으로써 생산의 급속한
향상을 기하고 그 이윤의 분배에 있어서도 노동자와 기술자 역시 응분의 참여가 허용될 것을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종래 사회주의가 생산 수단의 사회화에만 중점하던 것을, 이제 생산수단보다도 기업운영과
이윤분배에 있어서의 사회화라 할까, 즉 노동자와 기술자를 자본가와 동등한 입장에서 처우함으로써,
생산능률화의 감퇴를 가져옴이 없이 사회주의 본래의 목적인 근로계급의 복리의 증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새로이 각성된 세계적 사조의 지향이며, 이러한 경향은 북구제국을 위시한 구주 여러 나라와 심지어 자본주의의
본가인 미국에서까지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것이며 , 지금 미국에서는 각 기업체의 주권을 노동자에게
적극적으로 분배하는 노력이 의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후략..
------------------------------------------- 정말 에너지 넘치는 글이지 않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망명 시절인 80년대 중반에 작성한 글일까요? 노동자의 삶의 질이 이야기 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의 글이 아닙니다.
정계 입문전인 1955년에 사상계에 기고한 <한국노동운동의 진로>의 글의 일부분입니다.
저는 이 글을 처음 읽었을때의 손이 부들 부들 떨림을 잊지 못합니다. 10년동안 전혀 진화 하지도
진보 하지도 못한 노동계가 현실에 안주하고 패배주의에 찌들린 것에 대해 반성과 타개할 방법을
31세 청년 김대중은 이미 54년전에 언급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관료 자본주의와 수직형 지배체제를 극복하여
정말 합리적인 경제시스템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며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이는 현재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경제 성장과 분배의 논리와 일치하며
위 글은 진보세력의 대안으로 인정 받는 노희찬 대표의 글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탄탄한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31세 청년 김대중은 54년전에 이런 글을 품어 낼 수 있었다는건
얼마나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펌하 되었고 왜곡된 평가가 거듭 되었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흔히들 알려진 정치인 김대중이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되면서
박정희 정권의 견제를 받음과 동시에 '반독재 투쟁, 민주화, 민족화해를 통한 평화노선'을
지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67년 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재선에 도전하며 남긴 명연설의 일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과 비교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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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
"나는 정치인으로서 소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나의 비원이 있습니다.
내 소원은 돈이 아닙니다. 2억도 싫고 20억도 싫고 200억도 싫습니다.
내 소원은 이런 것입니다. 나는 신라 삼국통일 이래 1500년 동안 처음으로 이렇게 국토가 갈라져 있는 사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해방후 국토가 20여 년이나 분단된 이 사실이, 나는 통일이 없으면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가 없고, 절대로 영원한 평화가 없고, 절대로 영원한 건설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또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박정권 아래에서 건설입네, 수출입네, 증산입네, 하면서 몇 사람만 잘살게,
몇 사람만 부자되게, 몇 사람만 배떼기 부르게 만들고 부익부... 재벌은 더욱 더 대재벌을 만들고
모든 국민은 헐벗은 가난뱅이요, 모든 국민은 더욱 빈익빈하게 만드는 이 특권경제를 타파하고,
내가 주장하고 우리 당책으로까지 채택된 중산층과 근로대중을 중심으로 한 대중경제체제를 실현해서
나라의 혜택이 국가의 혜택이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 모든 사람의 피부와 뼈끝까지 골고루 돌아갈
그러한 올바른 경제정책이 이 나라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나의 절대적인 소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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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재선에 도전하는 국회의원 김대중의 선거 연설내용의 일부분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의 모순을 지적하며 특권경제를 타파하고
서민과 중산층을 중심으로한 대중경제체제를 주장합니다.
이미 지역구 국회의원의 그릇이 아니였고
현재의 민주당 당론인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을 지향함의 뿌리는 바로 재선에 도전하는
67년 국회의원 김대중이였습니다.
과연 67년 김대중을 뛰어넘을 국회의원이 현재 있다고 보는지요?
이것은 무려 42년 전에 다져진 한 정지친의 소원과 비원이자, 간절하게 추구하던 정치 목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71년 야당의 대선후보로 떠오르기전
다시 한번 더 진화된 정치인 김대중의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 하고자 합니다.
앞서 정치입문전인 1955년의 글 (글1)
정치 입문후 1967년의 글(글2), 그리고 정치인 김대중의 이러한 생각이 다듬어지고
구체화된 <1970년대의 비전> 이라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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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3.
오늘날 우리 나라 국민들은 적어도 헌법이념상으로는 ‘교양과 재산’을 가진 시민계급에게만 참정권을
부여하는 19세기의 근세 초기 민주주의의 제한된 시대에 살지 않고, 만 20세 이상의 성년이면
누구나 선거권을 가질 수 있는 20세기의 보편화된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이 나라의 기본법과 법률제도는 외관상으로 다른 어느 선진 민주제국과 비교해도 과히 손색이 없는 이념과
가치를 선언하고 있고, 또 이들 제도는 어느 것을 막론하고 1인 1표제의 원칙에 입각해서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대중의 권익을 보호, 신장하는 데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현 우리 나라의 정치체제는 겉으로 드러난
상징과 제도만을 가지고 규정한다면, 데이비드 이스튼 교수가 그의 명저 『정치체계론』에서 정의한 바 ‘정치체계
속에 투입되는 모든 요구를 설정시키고 모든 결정을 유효케 하는 방법의 규제조치로서의 체제가 민주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서와 이론상에 비친 그림 속의 떡 같은 정치체제일 뿐 우리 국민대중이
지금 이 역사속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실감하는 실제의 정치체제와는 거리가 멀다.
...중략...
철인정치를 구가한 고대 희랍의 플라톤으로부터 오늘의 개발독재 옹호론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엘리트에
의한 통치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대중이 지배하는 정치를 혐오하고 비판했다.
#1 대중은 무식하고 학식이 없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2 대중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3 대중은 허망한 것을 약속하는 선동정객에 표를 매수당한다.
#4 대중은 언제나 권위지향적이며 자조력도 발전의욕도 없다.
#5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가 똑같이 1표씩 갖는 것은 불공평하다.
개발독재 옹호자들은 대중의 자치역량을 지나치게 회의하고,
지식수준의 열악함을 개탄하여 대중에 의한 지배를 회피한다.
...중략...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에 대한 피상적 관찰의 산물이다.
국민대중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개발독재 지지자들이나 엘리트 통치예찬자들이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우매하지도 않았고 무능하지도 않았다.
봉건정치의 이론적 대종인 공자조차 대중을 가리켜 ‘지극히 어리석되 가히 속일 수 없는 존재’라고 갈파하지 않았는가.
그러기에 대중은 언제나 자기의 올바른 지도 세력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독재정권의 타도에 앞장섰다.
대중은 언제나 역사의 편이었으며 또한 최후의 승리자였다. 나폴레옹도 진시황도 대중 앞에서는 무참한 패자가
되고 만 것이다.
...중략...
첫째. 박정권의 경제건설이 외국의 반완제품을 도입 가공하는 매판적 건설이며 이것이 국부를 한없이
해외로 유출시키고 있으며 농업을 희생으로한 건설이 도시, 농촌 간의 이중구조를 극대화하고 경제기반의
파탄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그 청산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적 분업관련의 심화에 의한 내포적 공업화와 농공업간의 긴밀한 관련발전 위에
국민경제 전반의 통일성 있는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 이것은 자율적인 재생산권의 형성을 촉진하여
우리 경제의 상대적인 자급자족 체계의 실현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둘째, 공업화의 과정에 있어서는 국가는 전력 수송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집중투자하는 동시에
민족자본인 중소기업의 보호육성과 이의 경제적 단위에로의 발전을 위하여 관련기업간의 수평적 계열화를
적극 지원하도록 유의할 것이다.
...중략...
셋째, 농업은 식량의 자급자족과 경제발전의 기본 여건으로서 가장 중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농업의 구조는 한국농업이 지니고 있는 제조건에 비추어 자발적인 농민참여에 의한 협업농의 창설과
자주농업의 안정에 그 중점이 두어질 것이다. 이를 토대로 공업과 농업간의 분업 관련의 심화를 위해
상업적 농업의 전개가 권장될 것이다. 특히 어떠한 정책방향도 경제적 유인없이는 성공할 수 없으므로
이를 유도하는 조치가 꾸준히 취해져야 할 것이며 농업취업자와 공업취업자간의 소득 균형을 위한
적정한 농산물 가격과 이중가격제도, 가격예시 및 유지정책이 취해져야 한다.
넷째, 계층간 분배구조는 산업민주주의의 실현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에
의한 자본에 대한 약간의 간섭과 근로자의 경영참여가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근로자의 경영참여는 단순히 권익확보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향상을
위한 협력에도 큰 의의를 둔다.
근로자의 정당한 배분참여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기업체에 있어서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종업원 특수제도를 법제화할 것이다.
다섯째, 국민경제의 운용에 있어서는 혼합경제의 한국적 형인 대중경제는 경제의 계획적 운용을 추진하다.
그리고 경제의 계획적 운용을 위하여는 약간의 기간산업을 국가가 소유할 것이다.
그러나 그 범위는 한정적이고 과도적이다.
여기서 특히 강조할 것은 대중경제는 어디까지나 시장경제의 기능을 존중하는 대중경제의 바탕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발전과 운용은 크게 격려될 것이며
그것이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에 공헌하는 한 결코 침해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여섯째, 대중경제는 재정금융세제의 운용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소수 특권층 위주를 단호히 배격하고
이미 지적한 바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 중소기업의 육성, 농업경제의 급속한 발전 위주의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 폭넓은 중산안정계층이 형성됨으로써 우리의 경제가 무한한 발전을 지향함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안정의 물질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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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떤 느낌입니까? 이 글을 보고도 당시 기득세력들이 40대 정치인 김대중을 살려둘 인간이라고 봤을까요?
40대 기수론과 함께 영구 독재를 꿈꾸던 박정희 대통령의
턱밑까지 위협하는 무서운 정치인 김대중인 것입니다.
긴 글이지만, 흡사 故노무현 대통령의 힘 있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40대에 국회의원으로 입문해서 몸이 편한 주류가 아닌 험난한 비주류의 정치인의 삶을 살던
당당한 정치인 노무현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면 과장일까요?
이미 39년전에 또 하나의 노무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적어진 다음해에 정치인 김대중은 71년 대선에서 박정희 정권의 부정선거로 인해
대선에 패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대통령 병' 이라 조롱 하는데요.
비겁하게 맨손싸움에 동네 깡패와 흉기를 들고 덤비는 상대에게 극열한 항거후
결과적으로 쓰러진게 지탄 받아야 할 대선 결과는 아니라고 봅니다.
5공 말기에 등장한 3당 합당으로 인한 두번의 대선도 부끄러운 역사지만,
71년 대선은 대표적인 금권.관권선거로 부끄러운 역사이며
이때 박정희 정권은 당시 국가예산의 10%인 600억을 대선자금으로 쏟아 붓게 됩니다.
만약.. 떳떳한 선거로 박정희 후보가 아닌 김대중 후보가 당선 되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아직도. 60~7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은 오로지 박정희 였으니
가능 했다는 생각을 가지시는지요?
결국 그런 그릇되고 유아적인 정치에 대한 인식이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 보내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하게 된 오류의 시작이지 않을까요?
몇몇 재벌과 관료주의에 찌들린 수직적인 앨리트들의 지시를 받는
경제의 노예가 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십니까??
아닙니다. 가장 큰 구성원 집단인 우리가 자주적인 경제 주체가 될 수 있고
이미 50여년 전부터 김대중 前대통령이 주장한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우리가 가야할 방향인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71년 이후의 정치인 김대중 보다는
70년 이전의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 촛점을 맞춰 봤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변함 없는 공식이 있지요.
"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후 보수 신문에서 등장한게
" 화해와 용서 " 입니다. 청와대나 한나라당은 보수 신문의 입을 빌려
과거를 잊고 과오를 더이상 문제 삼지 말자는 쪽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남발합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헷갈리고 있구요.
과연.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 화해와 용서 " 가
反민주와 독재에 대해 당신이 목숨 걸고 치열하게 싸우며 50년 이상 지켜온 민주주의를
현실과 적당히 타협 보라는 메세지는 아닐꺼라 단언합니다.
"화해와 용서"는 수구 보수세력에 전하는 용서의 메세지가 아닌
反민주세력에 맞서 당신이 평생을 걸쳐 사랑 했던 " 국민과 민주주의 " 를 지키기 위한
범 민주세력에 대해 더이상 ' 분열 ' 하지 말고 " 화해와 용서 " 를 통해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김대중(金大中)이 평생 동안 치열 하게 싸워온 대한민국 국민과 민주주의 라는
소중한 가치를 계승 해달라는 마지막 당부라고 봅니다.
해석은 모두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뼈속까지 전라도인인 저는
김대중 선생님의 가르침을 그렇게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답니다.
네티러브
댓글 9
언제나 이 두 가지 대 명제 앞에서의 '화해와 용서'를 말씀 하신거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심지어 당신을 죽이려고 들었던 박정희, 전두환까지도 용서하고
세상의 모든 거짓과 비리로 썩어 문드러진 조중동, 딴나라당과도 화해를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죠.
[전 소인배라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 - 최소한 사실 - 을 알게되는 것에 만족하고 넘어가야 할까요...?
제발 우리 국민들 - 위대한 한 표를 갖고 있는 -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활한 정치꾼들은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가장 원하고 있죠...
그래야 맘대로 해쳐먹을 수 있으니까요.
결과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답답하게도 국민들은 그걸 또 남 탓으로 돌리죠]
정당정치를 주장하는 저로써는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민주정당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소시민인 내 뜻을 대신해줄 수 있는 그런 정당 말이죠...
.
다 읽었습니다..-_-;;
논외지만,
바람소리님 처럼 저도 소인배라..조중동과 딴나라당 같은 인간들에게 화해니 용서니..
이런 고상한 단어는 필요없다고 생각되는군요..
정리될건 정리해야겠지유~-_-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 김대중 전대통령 일기 中 -
[마지막 일기 보기]
target=_blank>http://211.233.13.92/board/board_down.asp?boardkind=briefing&file=%B8%B6%C1%F6%B8%B7%C0%CF%B1%E2%2Epdf
.
성인과 같으신 분...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꼭 없어져야하고 정리되어야 합니다.
아래동내에서는 이분을 선생님 이라구 하지요
정말 알면 알수록 큰분입니다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아~드디어 피바람이 불겠구나~ 일그러진 역사를 이제서야 바로 잡을 수 있겠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짧은 식견으로 김대중이란 사람은 진보중에 진보라고 생각했죠.
불의를 보면 못참고 이를 악물고 달려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랬기 때문에 내심 큰 기대를 걸었던 저로서는 적지 않은 실망을 했었습니다.
왜! 왜! 용서하는가!
아직 저도 젊고 소인배라 그런지~
전 용서 못합니다. 아니 안합니다. 하면 안됩니다.
지금 보십시오. 이 반민족 세력이 득실거리는 대한민국을요.ㅠㅠ
정말 좋은글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