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출세기~ ^^
- [서경]미련곰탱이
- 1720
- 4
히틀러는 188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습죠~
어렷을때는 공부도 꽤 잘한다고 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실업계 중학교쯤 되는 학교에 진학,
불량배로 전락 학교를 그만두게 되죠~
그 후 화가가 되려다 실패~ 그 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고아 연금과 자신이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게 되져~
그후 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입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나중에 참호에 12명이 있었는데 그 안으로 폭탄이 떨어졌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둥~ 전설아닌 전설이 떠돌죠~ ㅜㅜ
하여간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는 혁명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고, 그떄 독일 노동자당이 창설되죠
그 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 NaZi(나찌))가 탄생하게 되져~
즉 히틀러는 나찌를 만든 사람은 아니다 이거져~
하여간 히틀러는 여기에 들어갑니다.
동시에 나찌 산하의 테러조직인 돌격대에 들어가 반대자들을 테러하고 다니기 시작하져~
한마디로 깡패 정치가라고나 할까요~ ㅜㅜ
하여간 독일 경제가 겁나 안좋았으므로, 히틀러는 야망도 실현하고, 돌격대의 군량미도 마련하고
머 여러가지 이유로 폭동을 일으킵니다만.. 실패로 돌아가고 체포되어 투옥됩니다.
그때 "나의 투쟁"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죠~
그후 다시 정치에 입문하였지만... 고작 지지율 2.6%의 듣보잡이었슴돠~
바로 그때 독일 언론 재벌인 후켄베르크와 만나게 되는 거죠~
극우 언론 재벌과 정치깡패 의 만남! 바로 환상의 조합이었져~
후켄베르크 입장에서야~ 듣보잡 하나 세워서 잘 키워서 잘 살아보세~ 적인 입장이었던 거죠~
히틀러가 등극하기 전 바이마르 공화국 극우파들은,
지역감정, 색깔론, 군부독재 (1차대전 당시 독일의 정치를 군부 독재로 규정하곤 합니다)에 대한 향수등
여러가지를 선거에 활용하였습죠~
게다가 그당시 땅 부자(보수적 지주)가 많은 독일 남부지방에서는
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 반공 이데올로기등이 굉장히 강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 당시 독일에서도 지역감정이 꽤 심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증오의 감정들이, 극우 언론 재벌 후겐베르크에 의하여
부풀려지고 확대 재생산 되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합니다.
하여간 후켄베르크는 듣보잡 히틀러를 드디어 선거에서 승리하게 만들죠~
그러나 그것을 일장 충몽~
히틀러는 관좌에 오른 후 후켄베르크를 제거하고 말죠~
히틀러에게 이용당한 처지가 되고말았지만, 사실 후겐베르크가 아니었다면,
히틀러는 걍 듣보잡에 머물렀을 겁니다.
그래서 집중된 언론의 파워가 무서운 겁니다.
신문/출판/영화를 모두 틀어쥔 후겐베르크 입장에서야 듣보잡 히틀러를 띄워주고,
선거에 이기도록 만드는거..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 겁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라 사투리도 엄청 심했다는데
아버지가 유태인 출신이란 설도 있고...
하지만 그 모든게 확인이 안되는 이유는 오스트리아의 자신의 고향을 걍
군대 훈련지로 만들어 버렸대요~
히틀러가 다녔던 학교는 모두 없어지고~ 자료도 모두 없어졌다더군요~
완벽하게 과거를 지워 버린거져~ ㅜㅜ
머 그 후의히틀러 행태야 잘 아시겠지만...
무엇보다도 라디오 매체를 잘 이용했고, 반공을 부르짖으며 세를 불리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유태인 학살까지...
그리고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됩니다만...
히틀러가 죽은 후에도~
그에 대한 책임은 수 많은 독일 국민들이 수십년동안 지고 있죠~ ㅜㅜ
언론을 이용하고 정권을 잡았으며,
지역감정과 색갈론 군부독재에 대한 향수 아닌 향수~등을 이용하는 행태~
자신의 의지와 반되대는 사람들은 사브작 사브작 제거하고 있는 행태~
자신의 불리한 과거는 다 지워버리고~
파쇼의 길로 들어가고 있는것만 같은 바로 이 느낌...
어느분과 참 닮지 않았습니까??
이게 제가 걱정하는 이유 입니다...
역사는 항상 바라보고 그것을 경험으로 새로운 발전을 이루어 가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우리는 그러지 못할까봐 나름 걱정이 되네요~
에혀~ ㅜㅜ
어렷을때는 공부도 꽤 잘한다고 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실업계 중학교쯤 되는 학교에 진학,
불량배로 전락 학교를 그만두게 되죠~
그 후 화가가 되려다 실패~ 그 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고아 연금과 자신이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게 되져~
그후 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입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나중에 참호에 12명이 있었는데 그 안으로 폭탄이 떨어졌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둥~ 전설아닌 전설이 떠돌죠~ ㅜㅜ
하여간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는 혁명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고, 그떄 독일 노동자당이 창설되죠
그 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 NaZi(나찌))가 탄생하게 되져~
즉 히틀러는 나찌를 만든 사람은 아니다 이거져~
하여간 히틀러는 여기에 들어갑니다.
동시에 나찌 산하의 테러조직인 돌격대에 들어가 반대자들을 테러하고 다니기 시작하져~
한마디로 깡패 정치가라고나 할까요~ ㅜㅜ
하여간 독일 경제가 겁나 안좋았으므로, 히틀러는 야망도 실현하고, 돌격대의 군량미도 마련하고
머 여러가지 이유로 폭동을 일으킵니다만.. 실패로 돌아가고 체포되어 투옥됩니다.
그때 "나의 투쟁"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죠~
그후 다시 정치에 입문하였지만... 고작 지지율 2.6%의 듣보잡이었슴돠~
바로 그때 독일 언론 재벌인 후켄베르크와 만나게 되는 거죠~
극우 언론 재벌과 정치깡패 의 만남! 바로 환상의 조합이었져~
후켄베르크 입장에서야~ 듣보잡 하나 세워서 잘 키워서 잘 살아보세~ 적인 입장이었던 거죠~
히틀러가 등극하기 전 바이마르 공화국 극우파들은,
지역감정, 색깔론, 군부독재 (1차대전 당시 독일의 정치를 군부 독재로 규정하곤 합니다)에 대한 향수등
여러가지를 선거에 활용하였습죠~
게다가 그당시 땅 부자(보수적 지주)가 많은 독일 남부지방에서는
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 반공 이데올로기등이 굉장히 강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 당시 독일에서도 지역감정이 꽤 심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증오의 감정들이, 극우 언론 재벌 후겐베르크에 의하여
부풀려지고 확대 재생산 되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합니다.
하여간 후켄베르크는 듣보잡 히틀러를 드디어 선거에서 승리하게 만들죠~
그러나 그것을 일장 충몽~
히틀러는 관좌에 오른 후 후켄베르크를 제거하고 말죠~
히틀러에게 이용당한 처지가 되고말았지만, 사실 후겐베르크가 아니었다면,
히틀러는 걍 듣보잡에 머물렀을 겁니다.
그래서 집중된 언론의 파워가 무서운 겁니다.
신문/출판/영화를 모두 틀어쥔 후겐베르크 입장에서야 듣보잡 히틀러를 띄워주고,
선거에 이기도록 만드는거..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 겁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라 사투리도 엄청 심했다는데
아버지가 유태인 출신이란 설도 있고...
하지만 그 모든게 확인이 안되는 이유는 오스트리아의 자신의 고향을 걍
군대 훈련지로 만들어 버렸대요~
히틀러가 다녔던 학교는 모두 없어지고~ 자료도 모두 없어졌다더군요~
완벽하게 과거를 지워 버린거져~ ㅜㅜ
머 그 후의히틀러 행태야 잘 아시겠지만...
무엇보다도 라디오 매체를 잘 이용했고, 반공을 부르짖으며 세를 불리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유태인 학살까지...
그리고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됩니다만...
히틀러가 죽은 후에도~
그에 대한 책임은 수 많은 독일 국민들이 수십년동안 지고 있죠~ ㅜㅜ
언론을 이용하고 정권을 잡았으며,
지역감정과 색갈론 군부독재에 대한 향수 아닌 향수~등을 이용하는 행태~
자신의 의지와 반되대는 사람들은 사브작 사브작 제거하고 있는 행태~
자신의 불리한 과거는 다 지워버리고~
파쇼의 길로 들어가고 있는것만 같은 바로 이 느낌...
어느분과 참 닮지 않았습니까??
이게 제가 걱정하는 이유 입니다...
역사는 항상 바라보고 그것을 경험으로 새로운 발전을 이루어 가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우리는 그러지 못할까봐 나름 걱정이 되네요~
에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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