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글 써도 되나 모르겠어요. (요청시 삭제) - 저는 전경을 나왔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로 썼습니다.
- [충]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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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에 전의경 취업차별? 이라는 글을 보고나서 씁니다.
지금 나라 모양이 이모양인판에 취업까지 해야하는 저로선 참으로 난감한 말로 들리네요.
육군훈련소에서 의무병 보직받고 자운대에서 의무병 교육 6주 받고나서 전경으로 착출이 되었습니다.
아니 내가 왜!!??
의무병 교육받는 곳(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네요 6년밖에 안지났는데)의 중대장이 불쌍하다고 쉴때 푹 쉬라고 하던말에 '아.. 진짜 끝났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집에서는 분명 의무병이 된줄알았는데 전경 착출됐다고 집에 전화하니까 어머니께선 이리저리 방방뛰시며 절에 기도하려 다니셨다네요. 서울로 가지 않게 해달라고. 헌데 서울에 기동대로 바로 배치가 됐습니다.
처음 시위나간곳은 강남구청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하늘위로 돌이 막 날아댕겼어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내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부대로 들어오면서 고참이 물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요. "무섭냐?" , "네, 그렇습니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방패로 확 그냥 찍으면 돼" 라더군요.....
전경기동대에 배치 되어서 가장 처음 느낀것은, 정신병동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투적인겁니다. 제대하고 나서 시위하러 온다는 군요.
이런 표현은 너무 원색적이긴 하지만, 쓰레기들 집합소 같았습니다.
시위대가 치면 무조건 반격하는 걸로만 알고 지냈습니다.
위에 지휘관이 그렇게 은연중 그렇게 가르치고, 고참들이 세뇌시킵니다. 그 고참들은 그 윗 고참들에게 배우고 지휘관들에게 배웠겠죠.
2003년에 군입대 했는데 정말 많이 맞았습니다만 저는 쪼금 맞은 편에 속했습니다. 왜 때리는지, 왜 맞아야하는지, 후임이라 참았습니다. 고참은 고참으로써 존중과 배울점이 있으니까요. 나쁜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사람도 있겠죠. 한쪽으로 치우쳐 져있으면 악의 무리가 됬겠죠.
그 좋은 사람도, 현실에 안주에 있더군요. 결국엔 시위나가면 비슷해 집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탄핵때 촛불문화제 할때도 막으러 갔습니다. 대부분 전의경들중 생각을 밖으로 낼수 있는 이는 고참들 뿐입니다. 하급 기수는 생각이란것을 잘 못합니다. 못하게 교육을 시켜왔었습니다. 시키면 하게끔 만들어 왔습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빨리 끝나서 조금이나마 쉬었으면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척해야했습니다.
그래서 욕먹습니다. 그런대 맨몸인 사람을 방패로 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욕먹었습니다. 그래서 맞았습니다. 그래서 정신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못 칩니다.
저는 분노의 대상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이들은 그 대상을 못찾고 있었어요. 그 대상을 눈에 보이는 시위대로 착각하며 살고있었습니다. 저는 몸이 튼튼합니다. 잘 안다칩니다.
그래서 내가 몇대 맞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치면 욕좀 먹고 경찰 병원을 이용하면 됐습니다. 나만 욕먹으면 되니까요.
제가 최고참이 되었어요. 무전기를 들었지요. 시위현장에 가는 버스안에서 애들한테 얘기했습니다.
"거기있는 사람들은 옆집 아저씨 아줌마, 누나, 형, 동생이다. 니들은 옆집 사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들 떄리면 우리 부모님이 고생하고 다시 그사람들 볼 면목이 없다" 라는 식으로 했습니다.
다른 이를 못 움직이게 할 수 없다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내가 조금만 손해보면 다른사람은 조금 더 행복 할 수 있을꺼라 아직도 생각하며 살고 앞으로도 그럴꺼라 생각하며 살 것입니다.
저는 좋은게 좋은거에요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위대와 충돌하면 서로 안다치는게 중요한 겁니다. 시위하시는 분들은 옆집 이웃이지만 우리는 가족이었으니까요. 가족이 제일 우선이니까요.
" 우리는 튼튼하잖어, 매일 운동하잖어." 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남자입니다. 우리는 튼튼합니다.
까짓거 몇대 맞는다고 티도 안난다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시위하시는 분과 대화도 합니다. 대화는 중요한 수단이니까요. 예전에는 대화하면 큰일날놈이었습니다. 위협적으로 보여야 했으니까요.
대화하면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합니다. 싸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이웃이 싸우려하는지...
그런데 지금은 경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에 생각이 아래생각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시키는데로 말 잘듣고 있습니다. 전경, 의경은 시위대를 패기 위해서 가지 않습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잘못한 것은 질책받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개인 희생하는 것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쯤 그런 시대가 올려나 짐작이나마 해봅니다.
무슨말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취업준비생으로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잠이 안와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밤을 세며 생각했습니다.
긴글.. 죄송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썼습니다. 한시간동안.. 쓰다보니 뭘 쓴건지 모르겠어요.
끝까지 읽으신분은 감사합니다.
지금 나라 모양이 이모양인판에 취업까지 해야하는 저로선 참으로 난감한 말로 들리네요.
육군훈련소에서 의무병 보직받고 자운대에서 의무병 교육 6주 받고나서 전경으로 착출이 되었습니다.
아니 내가 왜!!??
의무병 교육받는 곳(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네요 6년밖에 안지났는데)의 중대장이 불쌍하다고 쉴때 푹 쉬라고 하던말에 '아.. 진짜 끝났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집에서는 분명 의무병이 된줄알았는데 전경 착출됐다고 집에 전화하니까 어머니께선 이리저리 방방뛰시며 절에 기도하려 다니셨다네요. 서울로 가지 않게 해달라고. 헌데 서울에 기동대로 바로 배치가 됐습니다.
처음 시위나간곳은 강남구청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하늘위로 돌이 막 날아댕겼어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내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부대로 들어오면서 고참이 물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요. "무섭냐?" , "네, 그렇습니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방패로 확 그냥 찍으면 돼" 라더군요.....
전경기동대에 배치 되어서 가장 처음 느낀것은, 정신병동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투적인겁니다. 제대하고 나서 시위하러 온다는 군요.
이런 표현은 너무 원색적이긴 하지만, 쓰레기들 집합소 같았습니다.
시위대가 치면 무조건 반격하는 걸로만 알고 지냈습니다.
위에 지휘관이 그렇게 은연중 그렇게 가르치고, 고참들이 세뇌시킵니다. 그 고참들은 그 윗 고참들에게 배우고 지휘관들에게 배웠겠죠.
2003년에 군입대 했는데 정말 많이 맞았습니다만 저는 쪼금 맞은 편에 속했습니다. 왜 때리는지, 왜 맞아야하는지, 후임이라 참았습니다. 고참은 고참으로써 존중과 배울점이 있으니까요. 나쁜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사람도 있겠죠. 한쪽으로 치우쳐 져있으면 악의 무리가 됬겠죠.
그 좋은 사람도, 현실에 안주에 있더군요. 결국엔 시위나가면 비슷해 집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탄핵때 촛불문화제 할때도 막으러 갔습니다. 대부분 전의경들중 생각을 밖으로 낼수 있는 이는 고참들 뿐입니다. 하급 기수는 생각이란것을 잘 못합니다. 못하게 교육을 시켜왔었습니다. 시키면 하게끔 만들어 왔습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빨리 끝나서 조금이나마 쉬었으면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척해야했습니다.
그래서 욕먹습니다. 그런대 맨몸인 사람을 방패로 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욕먹었습니다. 그래서 맞았습니다. 그래서 정신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못 칩니다.
저는 분노의 대상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이들은 그 대상을 못찾고 있었어요. 그 대상을 눈에 보이는 시위대로 착각하며 살고있었습니다. 저는 몸이 튼튼합니다. 잘 안다칩니다.
그래서 내가 몇대 맞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치면 욕좀 먹고 경찰 병원을 이용하면 됐습니다. 나만 욕먹으면 되니까요.
제가 최고참이 되었어요. 무전기를 들었지요. 시위현장에 가는 버스안에서 애들한테 얘기했습니다.
"거기있는 사람들은 옆집 아저씨 아줌마, 누나, 형, 동생이다. 니들은 옆집 사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들 떄리면 우리 부모님이 고생하고 다시 그사람들 볼 면목이 없다" 라는 식으로 했습니다.
다른 이를 못 움직이게 할 수 없다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내가 조금만 손해보면 다른사람은 조금 더 행복 할 수 있을꺼라 아직도 생각하며 살고 앞으로도 그럴꺼라 생각하며 살 것입니다.
저는 좋은게 좋은거에요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위대와 충돌하면 서로 안다치는게 중요한 겁니다. 시위하시는 분들은 옆집 이웃이지만 우리는 가족이었으니까요. 가족이 제일 우선이니까요.
" 우리는 튼튼하잖어, 매일 운동하잖어." 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남자입니다. 우리는 튼튼합니다.
까짓거 몇대 맞는다고 티도 안난다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시위하시는 분과 대화도 합니다. 대화는 중요한 수단이니까요. 예전에는 대화하면 큰일날놈이었습니다. 위협적으로 보여야 했으니까요.
대화하면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합니다. 싸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이웃이 싸우려하는지...
그런데 지금은 경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에 생각이 아래생각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시키는데로 말 잘듣고 있습니다. 전경, 의경은 시위대를 패기 위해서 가지 않습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잘못한 것은 질책받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개인 희생하는 것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쯤 그런 시대가 올려나 짐작이나마 해봅니다.
무슨말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취업준비생으로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잠이 안와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밤을 세며 생각했습니다.
긴글.. 죄송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썼습니다. 한시간동안.. 쓰다보니 뭘 쓴건지 모르겠어요.
끝까지 읽으신분은 감사합니다.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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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전경출신입니다 ~ 2사단으로 갔다가 다시 착출되어 전경으로 갔습니다~ 첨에는 멋도 모르고 강원도구석에서 밖으로 나오는구나 했는데...그게 아니더군요 ㅜㅜ 차라리 산속이 낫았을껄...첨에는 시위대랑 붙었을때 많은 고민과 딜레마가 왔습니다..첨으로 시위대가 분말소화기로 저한테 쏘았을때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않고 숨을 쉴수없었고 이래서 죽는구나 했습니다...점점 시위대와 대치상황이 자주되고 점점 고참이 되고~ 특히 부안핵페기장 사건으로 휴가갔다온뒤 소대에 몇몇이 병원에 실려가 47명 소대원중 30명으로 줄었을때......그때는 한동안......솔직히 시워대를 적군이라는 생각으로...ㅠㅠ 옆에자고 먹는 후임 고참들이 없어지니 .....한동안..시위대를 적군으로 생각을 조금 했었죠 ㅜㅜ 죽창과 쇠파이프가 나오면 살아야한다는 생존욕구가 더심해지니까요.....
하루 빨리 이런일이 한나라 안에서 안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좋은 평화시위문화 정착과 전의경은 시위대를 막는게 아니라 지켜주는 전의경이 되도록....^^
전의경출신이 아니지만 공감가는 이야기네요.. 힘내시고 앞으로 좋은일만 있으시길
저는 1993년에 입대 전경 1318고, 인제 12사단에서 훈련받고 착출, 서울 4기동대 713중대(지금은 해체 - 그때 당시 마루타중대... 어디든지 다간다...ㅋㅋㅋ)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취업차별은 잘 모르겠습지다(전의경도 이력서에 보통 육군 만기제대라고 쓰지 않나요...)
우리때는 무조건 최루탄(흔히 말하죠 가스차...다연발탄) 쏘고 사과탄 던지고(기억도 가물가물)...
그때는 '우르과이라운드'로 농민시위를 했었고 그 다음해인가 5월인가 남총련이 열차 탈취해서 홍대점거 농성을 했
었죠, 그리고 8월에 범민족대회가 서울대에서 열렸는데 그때 우리 부대 고립되어서 절반이 병신 되었습니다.(저는 다행히 일병 휴가기간...)
이래저래 직업경찰이 해야하는 일을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아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젊은이들에게 시킨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의경제도 폐지가 얼마전에 논의 되었는데 저는 적극 찬성합니다.
이제는 시위현장 진압현장도 가물가물 하네요,,, 나쁜기억 빨리 잊어버리시고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취업차별은 잘 모르겠습지다(전의경도 이력서에 보통 육군 만기제대라고 쓰지 않나요...)
우리때는 무조건 최루탄(흔히 말하죠 가스차...다연발탄) 쏘고 사과탄 던지고(기억도 가물가물)...
그때는 '우르과이라운드'로 농민시위를 했었고 그 다음해인가 5월인가 남총련이 열차 탈취해서 홍대점거 농성을 했
었죠, 그리고 8월에 범민족대회가 서울대에서 열렸는데 그때 우리 부대 고립되어서 절반이 병신 되었습니다.(저는 다행히 일병 휴가기간...)
이래저래 직업경찰이 해야하는 일을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아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젊은이들에게 시킨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의경제도 폐지가 얼마전에 논의 되었는데 저는 적극 찬성합니다.
이제는 시위현장 진압현장도 가물가물 하네요,,, 나쁜기억 빨리 잊어버리시고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정정 일병 휴가가 아니라 '일경 휴가'입니다. 전의경 진급은 이경, 일경, 상경, 수경입니다.
동은님이..대선배시군요..ㅋㅋ저두12사갔다가...ㅡㅡ4대806....ㅡㅡ;;젠장전육군갔는데.....;;아부지가가라구신청해줘서당당히입대했는데.....ㅋ훈련소퇴소하자마자...아부지지충주교육왔슈....면회오셔유..;;집은청주입니다.ㅋ까마득한.......2692기...ㅎㅎ일부사람들은보구...갓잔은데나와서꼴깝한다는사람들도있죠....ㅡㅡ슬퍼요....
국국 군의 학교에서 6주 교육까지 받았는데.. 전경으로 착출되다니.. 특기병은 안건드리던데.. 놀랍네요..
위생 기수 로바뀌어배치받죠.......제동기가그랬죠.....입대일은같은데좌대오자마자..일경..ㅡㅡ;;그때까지먼교육받았다구하드라구요
충분히 이해가는 글이고, 공감되는 글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전의경이야 말로.. "시키니까 할 수 밖에 없다"라는 변명아닌 변명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해서 근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군복무로서 어쩔수 없이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부당하다고 느끼는 명령에 대해서도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위치니까요.
요즘 세태를 보면,
전의경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수뇌부와
전의경을 핑계삼아, 마치 자신들도 엄청난
피해자인것 처럼 이야기 하는 시위진압관련 직업경찰들 보면..
제 개인적으로는 기가막힐 따름이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전의경이야 말로.. "시키니까 할 수 밖에 없다"라는 변명아닌 변명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해서 근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군복무로서 어쩔수 없이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부당하다고 느끼는 명령에 대해서도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위치니까요.
요즘 세태를 보면,
전의경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수뇌부와
전의경을 핑계삼아, 마치 자신들도 엄청난
피해자인것 처럼 이야기 하는 시위진압관련 직업경찰들 보면..
제 개인적으로는 기가막힐 따름이죠.
의지와 상관없이 명령에 복종해야하는 단체이다보니 소수의 행동 때문에 도매급으로 넘어가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우리 나라 특성상 해야만 하는 의무지만 이간질 시키는 것 이외에 하는게 없는 수뇌부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네요. 끝까지 남의 책임으로 돌리는 허접한 잡놈들....
아..한가지 더 보태자면..
하루빨리 전의경제도 폐지되어서,
다시 우리 주변의 이웃으로 돌아올 젊디 젊은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정신적 혼란과 육체적 고통이 사라졌으면 좋겠고요,
이 뭣같은 현재의 사회적 갈등도 하루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_-
하루빨리 전의경제도 폐지되어서,
다시 우리 주변의 이웃으로 돌아올 젊디 젊은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정신적 혼란과 육체적 고통이 사라졌으면 좋겠고요,
이 뭣같은 현재의 사회적 갈등도 하루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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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직접 작성하신 본 글을 읽으니 한편으론 마음이 따듯해 짐을 느낍니다!!!! 참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전경 출신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그위치에 그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럴땐 어떻게 했을것이다~ 또 어떻게 했을 것이다 .....라고는 차마 선뜻 말할수가 없네요!!! 각자 위치에서 틀려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중요한건 수야님이 말씀하신것처럼 그런 시대가 빨리 오면 좋을것 같아요!
취업준비 잘하셔서 좋은 직장 입사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