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아! 대한민국 / 유종일 KDI 국제대학원교수 [시론]
- [서경]케리카
- 1126
- 2
고등학교 시절 엄혹한 유신체제 아래서 몰래 읽은 금서(禁書)들은 아직도 내 정신세계에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동엽 시인의 <금강>도 그중 하나다. 구한말 일본군에게 쫓겨 도망가는 관군을 바라보는 농민의 시각이 아픈 깨달음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를 억압하고 못살게 굴기는 일본군이나 관군이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 일본의 침략에 분연히 맞서 일어나는 농민의 모습보다는 이게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파고들었다. 아~, 그렇구나. 이 땅의 민중에게 권력이란 그런 것이었구나.
용산 참사 철거민, 테러범 취급
민주화를 이룩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누구를 위해 권력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철거민들에게 하소연 한 번 제대로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초강경 무력진압에 나서는 대한민국 공권력에 나는 분노한다. “앞으로 까부는 놈들은 다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려!”하는 식의 접근이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생계의 근거지를 빼앗기고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심 테러’ 운운하는 후안무치라니. 용산 재개발로 막대한 이익이 창출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세입자들은 최소한의 보상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인가? 가진 자들만 배를 불리고 없는 자들은 몰아내는 재개발을 언제까지 할 건가?
한국사회에 부동산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교육일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킨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1월 중순, 중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변했다. 회장까지 하면서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던 애가 갑자기 까닭없이 지각도 하고 결석도 하는 게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추궁하니 학교 가봤자 공부는 안 하고 비디오나 본다는 것이었다. 이미 기말고사를 치르고 성적과 출결까지 다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란다. 성적 처리가 끝났다고 수업을 안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게 모두 특목고를 지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조치였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소수의 상위층 학생들을 위하여 대다수의 학생들을 희생시키는 대한민국 공교육에 나는 분노했다. 사실 입시제도나 공교육에 대한 온갖 논란도 소위 일류대학에 가겠다는 학생들 위주일 뿐, 대다수 학생들과는 무관한 것이다. 성적이 다소 떨어지는 학생들이나 공부에 뜻이 없는 학생들에게 철저한 무관심으로 대하는 한국교육은 인권탄압과 자원낭비의 현장일 수밖에 없다. 서열화만 있고 참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힘센 소수 위한 교육·경제정책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가진 자를 위해서 다수의 서민을 희생시키고 있다. 최상위 부유층들을 위하여 종부세는 되돌려주고 극빈층들을 위한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깎았다. 금융권에 돈을 그렇게 뿌리건만 중소기업에는 돈이 돌지 않는다. 각종 토목공사로 건설사들엔 천문학적 금액을 지원하면서 최저임금 낮추자는 소리나 하고 비정규직 기간연장이나 하자고 한다. 금산분리 완화니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니, 재벌 도와주는 일은 발 벗고 나서고 일자리 나누기니 실업자 지원이니 서민 도와주는 일은 말만 앞선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분담과 국민통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때에 정부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꼴이다.
힘센 소수를 위해 힘 없는 다수가 희생되는 사회, 21세기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선거나 한다고 진짜 민주화가 된 건 아니다.
<경향신문펌>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희생하는 힘센 소수도 있습니다.
시사에 밝은, 비판하는 국민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용산 참사 철거민, 테러범 취급
민주화를 이룩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누구를 위해 권력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철거민들에게 하소연 한 번 제대로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초강경 무력진압에 나서는 대한민국 공권력에 나는 분노한다. “앞으로 까부는 놈들은 다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려!”하는 식의 접근이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생계의 근거지를 빼앗기고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심 테러’ 운운하는 후안무치라니. 용산 재개발로 막대한 이익이 창출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세입자들은 최소한의 보상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인가? 가진 자들만 배를 불리고 없는 자들은 몰아내는 재개발을 언제까지 할 건가?
한국사회에 부동산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교육일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킨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1월 중순, 중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변했다. 회장까지 하면서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던 애가 갑자기 까닭없이 지각도 하고 결석도 하는 게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추궁하니 학교 가봤자 공부는 안 하고 비디오나 본다는 것이었다. 이미 기말고사를 치르고 성적과 출결까지 다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란다. 성적 처리가 끝났다고 수업을 안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게 모두 특목고를 지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조치였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소수의 상위층 학생들을 위하여 대다수의 학생들을 희생시키는 대한민국 공교육에 나는 분노했다. 사실 입시제도나 공교육에 대한 온갖 논란도 소위 일류대학에 가겠다는 학생들 위주일 뿐, 대다수 학생들과는 무관한 것이다. 성적이 다소 떨어지는 학생들이나 공부에 뜻이 없는 학생들에게 철저한 무관심으로 대하는 한국교육은 인권탄압과 자원낭비의 현장일 수밖에 없다. 서열화만 있고 참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힘센 소수 위한 교육·경제정책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가진 자를 위해서 다수의 서민을 희생시키고 있다. 최상위 부유층들을 위하여 종부세는 되돌려주고 극빈층들을 위한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깎았다. 금융권에 돈을 그렇게 뿌리건만 중소기업에는 돈이 돌지 않는다. 각종 토목공사로 건설사들엔 천문학적 금액을 지원하면서 최저임금 낮추자는 소리나 하고 비정규직 기간연장이나 하자고 한다. 금산분리 완화니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니, 재벌 도와주는 일은 발 벗고 나서고 일자리 나누기니 실업자 지원이니 서민 도와주는 일은 말만 앞선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분담과 국민통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때에 정부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꼴이다.
힘센 소수를 위해 힘 없는 다수가 희생되는 사회, 21세기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선거나 한다고 진짜 민주화가 된 건 아니다.
<경향신문펌>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희생하는 힘센 소수도 있습니다.
시사에 밝은, 비판하는 국민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러므로 거의 다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