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부끄러워 쉬쉬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 성인 남녀 절반 정도가 한 번쯤 앓고 지나가는 '국민 질병'이 바로 치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받은 수술은 치질질환 중 하나인 치핵 수술이었다. 무려 26만9000명이 이 수술을 받아 2001년 15만2000명에서 77%나 늘었다.

현대인에게 치질이 많이 생기는 이유로는 식생활 변화와 운동 부족이 거론된다. 이두한 대항병원 원장은 "육류 중심의 서양식은 일반적으로 섬유질이 적기 때문에 변비를 유발할 수 있다. 변비는 배변시 많은 힘을 주게 되고 대변 시간이 길어질 뿐 아니라 불규칙해지기 때문에 치핵(치질)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치질 치료에 대한 인식 변화도 환자가 증가한 주 요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치질은 부끄러운 질병의 대명사로 여겨져 혼자 참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대장항문외과 등을 찾아 대부분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다.

◆ 초기, 좌욕ㆍ내복약으로 치료

= 치질은 항문질환을 총칭하는 것으로 증상에 따라 크게 치핵, 치루, 치열로 나뉜다. 이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치핵은 항문벽을 둘러싼 혈관조직망과 점막이 부풀거나 늘어진 것이다. 치핵은 다시 항문과 직장 경계부위에 해당하는 치상선 위쪽에서 발생하는 내치핵(암치질)과 아래쪽의 외치핵(수치질)으로 나뉜다.

치핵은 또 △출혈만 보이는 1기 △돌출 부위가 배변시 항문 밖으로 밀려 나왔다가 배변 후에는 원래대로 돌아가는 2기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가는 3기 △손으로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는 4기로 구분된다. 1ㆍ2기는 좌욕이나 연고, 내복약 등 치료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3기 이상일 때는 절제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

◆ 고름 생긴 치루 꼭 수술해야

= 치루는 항문 주위에 고름이 생긴 것이다. 항문 안쪽에 생긴 구멍을 통해 항문 바깥쪽 옆으로 샛길이 뚫려 있는 상태로, 이 샛길로 진물이나 고름이 계속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가스나 변이 새기도 한다.

치루는 남성이 여성보다 걸릴 가능성이 높다. 한솔병원이 내원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한솔병원을 찾은 치루 환자 786명 중 남성은 82.6%(649명)로 여성 17.4%(137명)에 비해 4배 이상 많았다. 이동근 한솔병원 대표원장은 "남자는 여자보다 괄약근 압력이 높기 때문에 항문샘 입구가 좁아져 오물이 많이 쌓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잦은 음주와 과음은 신체 면역력을 저하시켜 항문샘 염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치루는 그냥 낫는 법이 없다. 치루관을 제거하지 않으면 또다시 염증이 재발하므로 무조건 수술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치료가 힘든 복잡치루로 진행되는 사례가 많다. 수술은 고름이 나오는 치루관을 절개하며 항문을 조이는 괄약근을 부분적으로 자르는 방법이 사용된다.

◆ 항문 찢어지는 치열, 여성 많아

= 치열은 항문이 찢어지는 질환으로 변을 본 후 몇 시간씩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2배 정도 많이 걸리는데 여성 항문이 남성보다 좁고 변비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여성이 변비가 많이 생기는 데는 임신과 다이어트가 주 원인으로 작용한다.

1~2개월 미만 급성 치열은 충분한 식이섬유소 섭취와 좌욕으로 개선이 가능하지만 항문이 이미 좁아진 만성 치열이라면 근본적 해결이 필요하다. 좁아진 내괄약근을 부분적으로 절개해 항문을 넓히는 수술이 이용되는데 치핵ㆍ치루 수술에 비해 간단하다.

◆ 술 줄이고 섬유질 많이 섭취

= 치질은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비롯되는 질병이므로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생활습관 개선이 필수적이다.

우선 배변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항문에 높은 압력이 전해져 치핵이 생기거나 악화될 수 있다. 한 번에 10분 이상 머물지 않도록 하고 배변이 어려우면 잔뇨감이 있더라도 그냥 나오는 편이 낫다. 신문, 잡지 등 읽을거리를 들고 가는 습관은 좋지 않다.

치질 환자는 음주를 가급적 삼가야 한다. 술은 혈관을 확장시키는데 치핵 혈관도 확장돼 출혈이 일어난다. 심한 음주는 항문을 붓게 하고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밖에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통해 배변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원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