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랑에게.. 06 팻말 선물한 남자..
- [서경]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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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팻말 선물한 남자 -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에요.
그녀가 예전과 다르다는 건 쭉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그냥 일이 피곤해서 그런 걸 거라고,
나 혼자 생각하고 결론지으며..
그렇게 반년을 넘게 지냈으니까..
궁금했지만 한 번도 묻지 않았어요.
내가 지겨워졌냐고,
스릴도 반전도 없는 놀이공원의 회전목마 같아졌냐고,
어떻게 하면 다시 니 마음을 돌릴 수 있겠느냐고,
속으론 백 번도, 천 번도 더 물었지만,
막상 그녀의 눈을 마주하면, 물을 수가 없더라구요.
고개를 끄덕여 버릴까봐,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려버릴까봐,
겁이 나서...
그래서 차라리 비겁하더라도 모르는 척 하기로
마음먹은 건데...
그런데 어제...드디어 그녀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빠..그거 알아? 말라비틀어진 화분은..
다시 살리기 되게 어렵다..”
꽃집 안을 가득 채운 화초에 물을 주며..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그녀는 소생 불가능해진 우리의 사랑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던 난
그냥 문단속 잘 하라는 엉뚱한 답만을 그녀에게 준 채,
꽃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몇 년 전, 그녀는 어머님이 하시던 꽃집을 물려받아
꽃집 주인이 됐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녀의 손가락은 반창고투성입니다.
장미 가시에 찔려 피가 나기도 하고,
선인장 가시에 찔려 핀셋으로 뽑아내는 일도 자주 있었어요.
빈틈 많고, 조심성 없는, 뭐든 꼼꼼하지 못한 그녀...
난 그런 그녀가 참 좋았습니다.
그녀가 꽃집을 오픈하고 나서 얼마 안 됐을때,
후배들한테 소식을 듣고 찾아갔었는데,
그 때 그녀는 없고,
대신 두꺼운 매직으로 <외출 중>이라고 쓴 A4용지만
유리문에 떡하니 붙어 있었죠.
난 그런 그녀가 참 사랑스럽고..귀여웠어요.
그래서 다음 날, 나무 판에 <외출 중>라는 글씨를 새겨
선물로 갖다 주었습니다.
더불어 <CLOSE>라는 팻말도 함께..
근데 그 팻말로 지금 그녀는 내게 이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닫혀버린 자기의 마음을 말하고 있어요.
오늘도 <CLOSE>라는 팻말만 걸어둔 채,
그녀의 꽃집은 텅 비어 있습니다.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별은 없다고,
빗나가길 바라기 때문에 믿지 않을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