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랑에게.. 03 선물 생각하는 여자..
- [서경]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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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생각하는 여자 -
만난 지 석 달 된 남자 친구,
어떤 선물이 좋을까..
며칠 째 생각을 해 봤는데, 쉽게 답이 안 나오네요.
오늘이 생일이거든요.
향수, 스킨로션 세트, 지갑, 양말? 이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럼, 그냥 맛있는 저녁? 영어 학원 수강증?
다 아닌 것 같아요.
그동안 거의 삼일에 한 번 꼴로 만났으니까,
지금까지 서른 번은 만난 것 같은데..
난 왜 그 애가 좋아할 만한 걸,
단 번에 생각해내지 못하는 걸까요,
단 한 가지도 자신 있게 말하질 못하겠어요.
창 밖에 보이는 저 연인들을 다 알까요,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연인이 뭘 제일 좋아하는지...
한 숨을 깊이 한 번 들이쉬고,
생각해 보고 있어요.
도대체..난, 그 애를 좋아하고 있기나..한 걸까,
진짜루..잊기는 잊은 걸까...그 사람을..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이미 지워진 사람이라고..
솔직히 지금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건,
백 가지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푸른 계열의 도톰한 넥타이,
연한 체크무늬 가방,
독일산 아이스 와인...
이런데도 나,
내 남자친구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도 되는 걸까요,
1년 전 헤어진 그 사람을 지워내려고,
지금 남자친구를 만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좋아서 만났어요.
그 사람에겐 없는 것들,
어린 애 같은 장난 끼,
선량한 눈웃음, 털털함,
그리고 꼭 손잡아 줄 때의 따뜻한 체온...
그래서 어느새 내 마음이 그 애에게 기울었다고 믿었는데,
그런데, 이 모양이네요.
생각해 봐야겠어요.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걸..
정말 단 한 가지도 생각해 내지 못 한다면,
이런 여자 친구, 차라리 없는 게 나은 거잖아요,
헤어져 주는 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손님이 왔어요.
남자 손님인데
요즘 안경만 쓰면 어지럽고 눈이 뻐근하다네요.
동갑내기 착한 내 남자친구도
처음 안경점에 들어서자마자 한 말이 이 말이었는데..
그래서 그 때도 내가 그랬어요.
“거기 발자국 위에 서세요..”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미안해하는 게 그 사람을 제일 아프게 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