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태 의원, 노무현 정권과 17대 국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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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전 읽은 인터뷰인데..
거듭 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삽질과 민심역행 작태에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인터뷰 기사를 옮겨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중 아쉬었던 부분들. 결과적으론 정권교체 당해야 했고
민심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부분을 가까이서 제대로 짚어 낸 인터뷰가 아닌가 싶구요.
조선일보와 인터뷰라 무조건 부정할게 아니라면 읽을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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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태 의원, 노무현 정권과 17대 국회를 말한다.
지난 2월 18일 오후, 통합민주당 유인태 의원의 휴대폰이 끊임없이 울려댔다. 정부조직개편안 협상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상수·김형오 의원 등 한나라당 측 의원들로부터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초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 의원은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와 유머로 ‘엽기 수석’이라 불려왔다. 폭 넓은 인맥과 사안 해결 능력 때문에 당 내·외적으로 갈등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늘 ‘구원 투수’로 나서 대야(對野) 협상의 중심에 서 왔다. 최근에도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의 통합에 일등 공신으로 꼽히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정부 조직개편에 협조해달라”는 전화를 직접 받기도 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장실에서 있은 인터뷰는 3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가 말하는 지난 17대 국회, 열린우리당의 참패 원인과 노무현 대통령 스타일,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 등에 대해 들었다.
정권 교체와 열린우리당의 참패
갑작스런 변화에 질서 못 만들어… 우리의 정치실험은 실패
386 중엔 자기만 나서려는 싸가지 없는 의원도 많아
정권 교체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민주화된 나라에선 정권의 사이클이 있죠. 한 정권이 10년 정도하면 사람들은 싫증을 내게 됩니다. 지난 10년 진보 정권이 들어선 동안 세금을 많이 걷어서 복지가 확충된 반면 아무래도 성장은 조금 더뎌졌을 테고요. 북한이 핵 실험을 해도 외국 자본이 철수하거나 긴장감이 고조되지 않는 등 대외적으로 한국이 안정감을 심어준 것은 성과라고 봅니다.”
▲ 2003년 10월 유인태 정무 수석이 '이라크 파병' 반대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을 만났을 당시.백년 정당을 꿈꾼다던 열린우리당이 참패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정치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급격한 개혁 때문이 아닐까요. 과거 1인 보스 체제에서 완전 상향식 공천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과도기에 알맞은 질서를 갖추지 못한 겁니다.”
그 변화는 옳았다고 보십니까. “1인 보스체제에 대해 국민이 염증을 느낀 분위기 속에서 상향식 공천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시대 흐름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1년 동안 지도부가 10번씩 바뀌고 ‘초선 망둥이들’ ‘백팔번뇌(17대 열린우리당 초선의원 수가 108명이라서 붙여진 명칭)’들이 여기저기에서 중구난방으로 날뛰었어요. 중진들도 마음을 모아 당의 중심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어요. 그 부분은 중진들의 책임입니다.”
얼마 전 ‘중진들 물러가라’라는 당내 일부 의원의 비판이 나오자 ‘중진이 무얼 잘못했느냐’고 반박하셨습니다. “공동의 책임인데 꼭 그렇게 책임을 남에게만 돌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작태 때문에 우리 당이 외면을 당하게 된 거예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현재의 중진들은 과거와 달라요.
과거에 정치자금을 만들어 후배에게 용돈도 주고 했는데 요즘은 돈도 인기 있는 초선의원들이 더 잘 모으데요. 청탁도 청와대에 가까운 초선들에게 해야 한다고 하고요.”
유 의원은 열린우리당 상황을 ‘봉숭아 학당’에 비유했다.
“선생님이 있던 학급에서 선생님을 내보냈는데 학생 수는 수십 명에서 150명으로 대폭 늘어나니 ‘봉숭아 학당’이 된 거지요. 그때 시끄럽게 했던 학생이 대부분 초선이었지 중진이었나요?”
얼마 전 임종석 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386 의원들 중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공동체가 나아가려면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해요. 그런데 386 의원 중엔 무조건 나서려고 욕심만 앞세운 사람이 많아요.
지역에선 서너 달만 TV에 얼굴이 안 나오면 ‘왜 안 나오냐’고 하죠. 그러면 다들 지도부 옆에 얼굴 들이밀고 TV에 나오려 합니다. 문제는 자기가 한 번 나왔으면 남들에게도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
유 의원은 “초선이 중진에게, 중진이 초선에게 잘 보일 이유도 없다”며 “조직이 건사되려면 수직·수평 구조가 적절히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
지나친 솔직함이 국민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
옳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GO!… 정무수석 내내 가슴 철렁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노무현 대통령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그렇게 장기간 낮은 지지도를 기록한 분이 없으니까 그걸 부인할 길은 없겠지요.”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면 안 되는데 대통령은 ‘옳은 걸 왜 말 못하냐’는 스타일입니다. 그런 점이 국민들 눈에 독선적으로 비쳐진 것이지요.”
‘정치인 노무현’을 어떻게 보십니까. “3당 합당에 반대해 끌려 나오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앞에서 올곧은 소리로 몰아붙일 때 국민들은 환호했어요.
힘 있는 재벌을 상대로 청문회를 할 때, 노 대통령의 장기가 극대화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청문회 할 때의 자세로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면 국민은 이걸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일전에 정치인 노무현을 높게 평가하신 적이 있습니다. “3당 합당 당시, 편한 길을 택할 수도 있었는데 마다했어요. DJ당으로 부산에서 출마하는 건 사지(死地)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선거에 나가선 보기 좋게 떨어졌지요.
범인(凡人)의 상식에 반하는 행보가 그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데, 대통령이 되어선 그런 점을 좀더 순화하고 신중했어야 합니다.”
유 의원은 노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라고 한 발언이나 호남 지역에 대해 “이회창이 대통령 되는 게 싫어서 나를 찍은 거지, 내가 이뻐서 뽑아줬겠느냐”고 한 발언을 꺼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정무수석으로서 어땠습니까. “(가슴이) 철렁철렁했지요. 사실 그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었어요. 2002년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정몽준 후보가 호남에서 자신보다 앞섰으니, 당사자로선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압도적으로 대선에서 지지했던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절대로 해선 안 되는 말을 그냥 쏟아낸 것이죠. 그런 정제되지 않은 얘기를 주기적으로 하셨고, 그게 중첩된 겁니다.”
정무수석 시절에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거 참, 쓸쓸하게 물러나는 대통령에 대해 이런 얘기하는 게 죄송하기도 하고…. (유 의원은 이 대목부터 ‘카메라 그만 찍어도 되느냐’며 담배 한 개비를 물더니 줄담배를 피웠다) 당시에 문희상 실장이나 저는 대통령이 춘추관에 가신다고 하는 걸 말리는 게 일이었어요. 그런데 한번도 안 들으시데요. 몇 달이 흐른 뒤 대화가 잘 안 됐어요. 그야말로 코드가 조금 다르니까….”
유 의원은 대통령께 직언을 자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많이 노 대통령의 스타일을 바꿔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데요. 대통령은 옳다고 여기는 건 그대로 고(go) 하는 분이니까요.”
그래도 대통령이 유 의원님을 남들보다 편안하게 여겼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요. 한번은 수석 보좌관 몇 십 명 있는 앞에서 ‘유 수석은 경기고·서울대 나오고 포시럽게 살지 않았냐’고 하시대요.
‘아니 제가 뭘 포시럽게 살았어요?’ 하면서 말머리를 잘랐더니 ‘본인이 아니어도 하여간 포시럽게 살던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잖아요’하면서 면박을 주셨어요.”
청와대에서 나온 뒤 대통령을 자주 만나셨습니까. “사람들이 저보고 ‘당신이 면담 신청하면 들어줄 텐데’ 하면서 가서 얘기 좀 해보라고 합니다. 아니, 불러야 가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려고 일부러 면담 요청해서 얼굴 붉히고 나올 일 있나요.”
몇 번 정도 만나셨나요. “전직 수석들 모임이나 비상대책위 모임 때 단체로 만났어요. 따로 만나 뵌 것은 국회의원 당선된 뒤 인사 드리러 갔을 때가 전부입니다.”
그땐 무슨 대화를 나누셨나요. “내가 몇 가지를 주문했어요. 첫 번째로 ‘대통령 말씀은 운반 포장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예를 들어 대통령이 탄핵 와중에 정동영·김근태 의원을 불러 장관직을 제의한 얘기가 다 공개됐을 때를 봅시다.
실제 그렇더라도 다른 식으로 포장됐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치라는 게 때론 거짓말도 필요한 건데 대통령은 솔직한 게 좋다면서, 모든 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스타일입니다. 결국 모든 게 국민들 편하게 하자는 것 아닌가요.”
또 무슨 말씀을 나눴나요. “정무수석 자리는 두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저보고 의회를 담당하는 수석으로 일하지 말라고 했어요. 정치가 어떻게 나가야 할지 같은 비전을 다루는 일종의 연구소 역할을 기대하셨습니다.”
참여정부에서 정무수석이란 자리가 의원님을 마지막으로 폐지됐습니다. 그건 어떤 자리인가요. “정무수석은 ‘정서 관리’가 필요합니다. 청탁을 들어주지는 못해도 힘 없는 국민들에게 ‘아무개 국회의원이 신경 써줬다’고 말해 주고,
법안 처리를 반대하는 의원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며 ‘도와달라’고도 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 엇나간 사람들과 마음 열고 말하는 창구 역할입니다.”
당시 대통령은 그 말에 무엇이라고 하시던가요. “그 말씀에 동의하시는 것 같았어요. 국회의원보다는 대통령과 가깝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돼야 했는데, 당시 마땅한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우연히 대통령을 골프장에서 만나 언쟁이 오간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2006년 초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얘기가 나올 때였는데, 대통령을 골프장에서 앞뒤 팀으로 만났어요. 서로 아는 사람들이라 합석해서 식사를 했지요. 술 기운이 좀 올라서 ‘대연정 같은 문제는 조금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대통령께서 크게 화를 내시데요.”
대통령이 화를 크게 내신 적이 또 있었습니까.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기명 선생께 올리는 글’이란 걸 올렸을 때예요. 그때 ‘이런 건 의논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했더니 ‘누구하고요?’라고 하셨어요.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하고요’라고 답했더니 10분간 퍼부으시더군요.”(웃음)
노 대통령이 인터넷을 정말 즐기십니까. “대통령께선 이미 1990년대 초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을 정도로, 그 세상에 일찍 입문했어요.
사실 우리 같은 오프라인 세대와 너무 달라요. 대통령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쪽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편했던 것이고, 그러니 청와대에서 댓글을 달고 그러는 거 아닌가요.
지금 돌아보면 중진 의원들의 조언이, 아버지가 젊은 학생에게 하는 잔소리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연배로는 저보다 두 살 위이시지만 활동하는 세계는 15년 젊은 쪽이십니다.”
향후 정국
새 정부가 너무 밀어붙이는 느낌… 한나라 200석 넘을 듯
통합 후 우리도 자리잡아가… 쇄신 대상은 나이 순이 아니다
이번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지금으로선 굉장히 비관적이지요. 현재로선 한나라당이 200석 훨씬 넘게 갖고 갈 것 같은데요. 그래도 기대감이 있긴 해요. 인수위를 비롯해서 이명박 당선인이 뭔가 좀 밀어붙인다는 느낌이 들어요. 국민들도 ‘이 정부도 너무 독주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것 같고요. 영어 몰입교육, 통신비 인하, 대운하 정책 모두 국민에게 귀 기울이는 모습보다는 불안감을 준 것 같고요.
원래 우리 당이 시끄러운 곳인데 선거를 앞둬서 그런지 조용해요. 민주당과 통합도 했고, 이런 식으로 노력하면 국민들의 우리 당에 대한 미운털도 조금씩 가시지 않을까 싶네요.”
인수위의 향응 접대 등 문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권력을 생기면 잡음이 나오게 마련인데 조금 빠른 것 같네요.”
유 의원은 “인수위가 선거 때까지만 활동하면 우리가 이번 총선에서 좀 살아날 것 같다”며 “인수위가 끝나가는 게 너무 아쉽다”며 농을 했다.
손 대표 체제는 현재 어떻습니까. “ ‘전당대회를 해야 한다’면서 시끌시끌하더니 잘 자리잡아가고 있어요. 지난번에 정동영 계가 등산 간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돌아와서 다들 손 잡고 화합하고 있어요.”
공천 물갈이 얘기가 당 안팎에서 나옵니다. “행복이 성적 순이 아니라고 하듯이, 쇄신도 나이 순은 아닐 거예요. 누구 물러나라고 목소리만 높이다가 의총에 출석 않는 사람들부터 쇄신해야 합니다.”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지향하는 바가 달랐던 정권이 한 것 중에 지켜줄 건 지켜줬으면 해요. 남북관계 같은 사안은 잘 관리해서 긴장이 고조되는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대기업 위주로 흘러 경제력의 편중이 심화되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대목도 있고요. 어쨌든 이런 과정 속에서 국민이 살아보고 5년 후 또 다시 선택하겠지요.”
이명박 당선인과의 인연
“청계천 사업 도와달라” 부탁 받고 청와대에 다리 놓아줘
당선인 처남 김재정씨와는 20년 바둑친구
지난 1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유인태 의원에게 “정부조직 개편안에 협조 해 달라”며 전화를 걸었다.
이 당선인과는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됐습니까.
“정무수석으로 있을 당시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사업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이우재 마사회 회장이 다리를 놓아 같이 골프를 친 적이 있어요.
청계천 사업에 우리당 후보(김민석 의원)는 부정적이었을 때예요. 나는 개인적으로 청계천 사업에 긍정적이었고, ‘대통령도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씀 드렸지요.
이후에 노 대통령이 이 시장을 국무회의로 불러서 전 국무위원 앞에서 ‘청계천 사업을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때 이 시장이 국무회의를 끝내고 거의 춤을 추며 나오데요. 청계천 완공 후에 이 시장이 ‘대통령이 도와줘서 할 수 있었다’고 한 건 그 때문입니다. 청계천으로 제가 다리를 놓은 셈인데, 거기에 대해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셨어요.”
이번엔 이 당선인이 전화로 무엇을 말씀하셨나요. “당선인이 야당 국회의원 상대로 설득하려고 노력한다는 걸 보여주시려는 것이었지요.(웃음) 사실 청계천 건 이후에도 저는 경전철 지역 민원 때문에 이 시장을 찾아갔고, 행자위원장으로서 국정감사할 때 시청에 갔고, 이래저래 접촉이 있었습니다.”
이명박 당선인과 골프 친 건 언제였나요.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였으니 2003년 5월쯤이었나. 밥집에서 봐도 되는데 이우재 선배를 통해 골프 한번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데요.”
골프는 두 분 중 누가 더 잘 쳤습니까. “내가 뭐 무지하게 못 치니까.”
골프 내기에 강하시잖습니까. “내기를 좋아할 뿐이지 강하지는 않지. 그분도 테니스는 잘 치는데 골프는 잘 안 치는 모양인지, 그냥 그러시데요.”(웃음)
이명박 당선인의 처남 김재정씨와 바둑친구라고 들었습니다. “한 20년쯤 알고 지냈는데, 내 가까운 친구들이 김재정 사장이 운영하던 토건회사의 임원들이었어요.
김 사장이 워낙 사람들을 좋아해서 사무실에 가면 친구들이 많이 와 있었어요. 나야 바둑을 좋아하니까 같이 두고 나서 ‘세꼬시’ 먹으러 다녔고.”
자주 만나는 사이였습니까. “둘이 직접 연락하는 친구 사이는 아니었고 한 다리 건너서 그룹으로 어울렸던 사이지요. 이번에 말 많았던 강남의 빌딩에 여러 번 놀러 갔고, 그 양반이 ‘강희재’라는 중국집을 개업했을 때도 가봤지요. 그런데 몇 년 전 그 양반이 건강을 다친 뒤로 술도 못하고 해서 잘 못 만났습니다.”
국회의원 유인태승용차 요일제 준수, 본회의 출석 100%… 지킬 건 확실히 지켜야
사형 폐지는 민청학련 사형수 출신인 내게 아주 중요한 일
지난 2월 11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총회장에서 손학규 대표가 유인태 의원에게 “어서 일어나서 박수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민주당과의 합당에서 공을 세운 걸 두고 한 말이다. 이어서 손 대표는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 얘기를 꺼내면서 “유 의원님 여기에 이름이 또 계시네”라고 했다. 유 의원은 상대 당과의 갈등 상황이나 당내 잡음이 극에 달할 때 늘 ‘비선 라인의 해결사’로 나섰다.
양당 통합이 극적 타결된 데에 일등 공신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보고 내 자랑을 하라고요? 운이 좋았던 겁니다. 민주당 출신들이 ‘우리는 오히려 거북하니 유 의원이 나서보라’고 했고 박상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 걸어서 둘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지요.”
무슨 말씀을 나누셨나요. “이쪽 사람들 생각을 불쾌하게 여기지만 마시고, 상식을 믿으시라고 했지요. 안 그러면 민주당도 우리도 서로 공멸 아니냐고 했어요. 갑갑하기는 서로 마찬가지였고요.”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의 만남은 인근 커피숍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생맥주 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헤어질 때 박 대표는 “최고위원들과 일단 상의해 보겠다”며 돌아갔다. 이튿날 양당은 합당 발표를 했다.
지난 2월 20일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이 극적 타결에도 유 의원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협상을 벌일 때의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일단 상대방에게 자신을 알아주고 신뢰한다는 걸 알게 해야 합니다.”
협상이 마지막에 극적 타결됐습니다. “원래 협상이 흥정처럼 버스 떠날 때 이뤄지는 거예요. 100원에 두 개, 세 개 하다가 사람이 떠날 때 ‘100원에 5개’ 부르잖아요.”(웃음)
매주 월요일이면 승용차 자율요일제를 실천하기 위해서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신다고 들었습니다. “17대 초기에 라디오 방송에서 ‘자율요일제 지키겠다’고 말했거든요. 하긴 방송 듣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겠지만.”
댁에서 국회까지 전철로 얼마나 걸립니까. “집 앞의 방학역에서 전철을 타서 중간에 갈아타고 대방역에 올 때까지, 전철 타는 시간만 51분이고, 중간에 걸리는 시간까지 다 합치면 1시간 반쯤 걸려요.”
국회 본회의 100% 출석도 재선 이상 의원 중 유일하다고 들었습니다. “1년에 대정부 질문 등 다 합쳐서 본 회의가 40여번 정도밖에 안 열립니다.”
그래도 개근하기 쉽진 않을 텐데요. “놀러 가느라고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지역구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리면 ‘본회의에 가야 하나’ 고민할 경우가 있습니다. 저야 지역구가 서울이니까 잠깐 다녀올 수도 있고요. 아마 조퇴나 지각까지 철저히 따지면 저도 100% 출석률은 안 나올 겁니다.”(웃음)
3년여 전 유 의원은 여기자들의 간담회에서 사형제 폐지 얘기를 꺼내다 눈물을 쏟았다. 당시 그는 “젊은 시절, 인혁당 사형수들이 죽는 걸 직접 목격한 뒤 이 일이 나에게 인생의 덫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라며 사형제 폐지에 나선 이유를 말했다.
사형제 폐지는 의원님께 ‘정치하는 이유’일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지요? 어떤 상태입니까. “소위에서 토론도 하고 공청회도 열었는데 지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전원위원회라도 열면 표결에 부칠 수 있는데 계류 중이라 전원위 소집도 안됩니다.”
18대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이명박 당선인은 사형제 폐지에 반대 입장입니다.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우리나라를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사형 집행이 없었거든요. 이제 제도를 정비하는 쪽으로 가야겠지요.”
인간 유인태
자주 졸아 별명 ‘잠신(神)’… 사형선고 법정서 어머니도 졸았어
억울한 사람 없애는 게 정치… 여행가이드가 제일 부러워
유인태 의원은 국무회의 때는 물론이고 비상대책위나 상임위 때 눈 감고 졸기로 이름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졸기 때문에 ‘잠신(神)’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정무수석 시절엔 노 대통령이 유 의원에게 “세상엔 눈을 뜨고 살다가 가끔 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고 살다가 가끔 뜨는 사람도 있다”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요즘에도 많이 주무시나요. “깜빡깜빡 조는 거지 뭐. 대개 졸 때엔 내용을 알 때예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얘기도 많거든요. 그리고 아침 먹고 나면 그렇게 졸음이 쏟아지더라고요.”
▲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정부조직개편안 관련회동에 참석한 유인태 행자위원장(왼쪽)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 받을 때, 어머니가 법정에서 졸았다는 얘기는 실화인가요. “1974년 7월 오후 두시쯤 국방부 안의 군사법정 안이었어요. 어머니가 그때 꾸벅꾸벅 졸았던 모양입니다.
지하 형(김지하씨)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 팔을 꼬집으면서 ‘이놈의 여편네야, 아들이 죽고 있는데 어디서 조느냐’고 했답니다.”
눈물이 많은 편인가요. (유 의원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연방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적이 있다.)“그 영화 보면 다 눈물 나는 거지 뭐. 남들 글썽거릴 때 같이 그러는 정도이지 뭘….”
여행을 좋아하시지요. “어렸을 땐 에디슨 발명왕을 동경했는데 커서는 여행 가이드가 제일 부러워요. 고등학교 때에도 방학 시작하면 한 달씩 무전여행을 했어요. 이 나이 들어서도 집 나가서 돌아다니면 들어오고 싶지 않고 그렇게 좋아요.”
정치란 무엇이라고 봅니까. “국민들 편히 살게 하는 거지요.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지키고, 억울한 사람 없도록 하고, 갈등을 조정해서 통합하는 것이고요.” ▒
네티러브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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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당선된다면 "' 되는게 중요하지 말이 중요하나?' "<====이렇게 생각 된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죠.
어쨌든 임기 후 물러나고 좋은 모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딱히 잘한게 떠오르는게 없어도 크게 잘못한게 꼭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리!! 참 지겨운 단어죠
좀 더 지켜보면 알겠지요...
우리나라 대통령 자리......어려운 자리 맞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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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갖고
물건살 때 최저가 뒤지는 노력의 반의 반만이라도
누가 올곧은 정치인인지를 찾아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