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이덕일 사랑] 사형폐지론
  


우리 역사상 최초의 사형제 국가는 고조선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는 고조선에서 "사람을 죽인 자는 마땅히 즉시 죽여 배상했다〔相殺以當時償殺〕"고 전한다. "남을 상하게 한 자는 곡물로 배상하고,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집의 노비로 삼는데, 속죄하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는 조항처럼 다른 죄는 재산형이 있었지만 살인은 무조건 사형이었다. '후한서(後漢書)' 부여조는 "사형당한 사람은 집안 사람도 모두 노비로 삼는다"고 전하며, '삼국지' 고구려조도 '사형수의 처자는 노비로 삼는다'고 전해 가족까지 연좌시키고 있다.

이런 기조는 고려, 조선 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세종은 재위 3년(1421) 삼심제(三審制)를 채택해 오심(誤審)을 방지했는데, 이는 '경국대전' 형전(刑典)에도 실렸다. 초복(初覆), 재복(再覆), 삼복(三覆)까지 실시한 후 국왕에게 보고하는 것인데, 이때 국왕이 다시 심리하니 사실상 사심제(四審制)였다.



일제시대 어느 석학은 세조가 사형폐지를 주장했으나 의정부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는 '사형폐지론'을 쓴 적이 있다. 필자가 찾아보니 '세조실록' 7년(1461) 6월조의 "임금이 '경국대전'에 정해진 사형을 할 때 의정부에 먼저 보고하는 법을 폐하려고 하자〔上定大典除死刑先報議政府之法〕 의정부에서 반대했다"는 구절을 잘못 해석한 것이었다.


형조에서 의정부에 먼저 보고하라는 '경국대전' 조항을 폐지해 의정부의 권한을 약화시키려던 의도를 오해한 것이었다. 세조는 재위 4년(1458) 절도(?盜) 세 번도 교형(絞刑)에 처할 정도로 되레 사형죄를 늘렸다. 최근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형제 실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심의 우려와 범죄자를 생산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도 있지만, 사람의 생명을 뺏은 자는 그 자신의 생명으로 갚는 것이 오랜 형벌 원칙의 하나였다. 앞의 '한서'는 상해·절도범 등이 "비록 배상하더라도 나라 풍속이 이를 수치로 여겨 혼인할 곳을 찾을 수 없었고, 백성들은 서로 도둑질하지 않아서 문을 닫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 이처럼 사회 기풍의 쇄신이 문제 해결의 근본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