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인생을 건 사람들 "우리가 진짜 마니아"

운전 즐기다 자동차 회사 입사… 레이싱·모터쇼 취재 평생 하고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좋을까, 나쁠까? 주변 의견을 들어보면 '취미 생활하면서 돈도 버니 얼마나 좋으냐'는 쪽과 '취미는 취미로 놓아두는 게 훨씬 행복하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선다.

자동차 회사에는 자동차가 좋아 만사 제치고 들어온 이들이 꽤 많다. 특히 수입차 회사에는 자동차 '환자'들이 적지 않다. 국내 완성차 회사의 경우 자기 회사가 전륜구동차를 만드는지 후륜구동차를 만드는지 조차 모르는 직원도 꽤 있지만, 역시 자동차에 인생을 걸고 뛰는 열혈 자동차 마니아들은 숨어 있어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먼저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차량성능개발1팀의 최장한(34) 연구원. 2003년 차량시험팀에 들어오자마자, 레이싱 세계에 본격 입문했다.



"차를 직접 타보고, 승차감·핸들링을 시험하고 조절하는 게 제 일입니다. 차량을 한계상황까지 몰아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운전 능력이 필요했어요."

최 연구원은 레이싱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 사내에서 개최한 '클릭 스피드 페스티벌'에서 종합 3위를 차지했다. 이후 운전능력을 연마, '2007 투스카니 엘리사 챌린지'에서는 종합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전 세상에서 2% 안에 드는 행복한 사람이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2%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운전이 너무 즐겁습니다. "

최 연구원은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자동차 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자동차가 좋아 현대·기아차에 들어왔다. 그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현대차가 개발한 레이싱카를 타고 출전해보는 게 생애 최대의 소원이라고 했다.
GM대우 홍보팀의 이종엽(29)씨는 작년 5월 입사한 새내기이지만, 탈 것에 관해서라면 자동차 전문기자 수준의 '내공'을 자랑한다. 이씨는 아버지가 대기업 해외지사에 근무했던 탓에 고 3때까지 한국과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자동차 문화에 일찍 눈 떴다.

남미에서 생활할 당시 머슬카(muscle car·대용량 엔진을 얹어 강력한 힘을 내는 미국차)인 1996년식 시보레 카마로 Z28로 운전을 배웠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2006년엔 1972년식 시보레 엘카미노의 엔진을 고쳐 대륙 횡단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의 진짜 취미는 오토바이 타기다. 최고속도나 엔진파워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지도 정해놓지 않는다. 그저 라이딩 자체를 즐길 뿐이다. 고2 때부터 오토바이를 탔는데, 당시 교내에서 유일하게 원동기 면허증이 있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도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 주변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크게 다친 곳 없이 오토바이 타는 사람은 저 밖에 없어요. 오토바이는 안전에 대한 준비가 정말 중요해요." 이씨는 대학시절이던 2003년 서울~부산, 2004년 도쿄~오사카를 오토바이로 일주했다. 언젠가는 오토바이로 세계일주를 하는게 그의 꿈이다.

르노삼성 소형상품기획팀의 김세원(34) 대리는 겉보기엔 말쑥한 차림의 샐러리맨이지만, 컨버터블(지붕이 여닫히는 차)인 노란색 엘란을 타고 5살 된 아들보다 자동차 장난감을 더 좋아한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국내외 자동차잡지를 섭렵하는 전형적인 '자동차 마니아 코스'를 밟아왔다. 대학졸업 당시 삼성자동차 한 곳만 지원해 합격했고, 희망부서도 자동차의 꽃이라는 상품기획팀을 지원, 9년째 같은 부서에서 자동차 분야를 파고 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밥도 먹여주네요. 사내에서 아내도 만났고, 모터쇼 취재로 해외구경도 합니다. " 김 대리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차가 전세계 소비자들을 감동시킬 날이 올 때까지 자동차에 모든 인생을 걸어보겠다고 했다.

쌍용자동차 디자인센터 모델선도팀의 양경식(40) 책임연구원은 '드림렉스턴 클럽'이라는 자동차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오프로더(험로주형차) 마니아다. 군 제대 후 지금까지 17년째 진흙을 깎아 실제 차의 형태를 미리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차량 30~40대가 함께 지방으로 그룹주행을 하기도 하고, 가족동반 모임도 즐깁니다. " 양 연구원은 자동차를 통해 정(情)을 쌓아가는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원석 기자 ws-cho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