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질문좀..^^+
- [서경]주녀영환
- 999
- 16
질문점여..
십자군전쟁이 이슬람교랑 누구랑싸운거죠? 이슬람교아닌가여,,?
1305년 선출된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선출된 후 70년 동안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 프랑스 왕의 지시를 받았다. 이를 아비뇽의 유수라 한다.
이거맞져?
십자군전쟁이 이슬람교랑 누구랑싸운거죠? 이슬람교아닌가여,,?
1305년 선출된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선출된 후 70년 동안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 프랑스 왕의 지시를 받았다. 이를 아비뇽의 유수라 한다.
이거맞져?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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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장문의 글을...!
확실치가안음..
누구셈?
...
....
...
....
누구셈?
....
....
누구신지 진짜 감이안오슈??
....
....
누구신지 진짜 감이안오슈??
오신김에 저기 문제가 맞나좀~~알려주세요 ㅋㅋ
에궁 난 몰러요~~
우선, 카노사의 굴욕은 그레고리우스 7세(황제)와 하인리히 4세(교황)간의
다툼중 벌어진 일로서, 주교 선임문제를 가지고 싸우던 황제와 주교가 각각 파문과 폐위선언으로 대립하였으나, 제후들이 교황편에 붙음으로서 황제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이탈리아의 카노사성에 체재 중인 교황을 방문하고선, 카노사성 밖의 눈 속에서 3일간 서서 굴욕적인 사면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비뇽 유수는 1309년 까지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남 프랑스에 있는 작은 도시, 아비뇽으로 이전한 사건을 말합니다. 흔히 교황의 바빌론 유수라고 도 하는데요, 프랑스의 왕이였던 필리프 4세와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가 대립하던 때에 왕이 먼저 아나니 사건으로 우위를 차지했지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1305년(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기 전의 이야기랍니다^^;;) 프랑스의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왕의 간섭을 받았고, 결국 로마에 들어가지 못한태로 프랑스에 남게 되었지요. 교황은 당시 아비뇽 북동쪽에 있는 카르팡트라스에 정청을 설치, 그곳에서 살았으나, 클레멘스 6세때 시칠리아 여왕으로부터 아비뇽을 사들여 파리왕궁을 본딴 호화스러운 교황청을 구성했습니다. 그 때문에 교황청의 주요 기능은 아비뇽에 잔류하게 되었고, 그레고리우스 11세에 의해서 본격적인 로마로의 복귀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프랑스인 교황이 독자적으로 교황청 행정을 담당하였습다.
단 한마디로 말하자면, 차이점은 카노사의 굴욕 - 황제의 굴욕
아비뇽 유수 - 교황의 굴욕
이것이 되겠구요, 공통점은.. 음.. 굳이 찾는다면..
둘 다 패권을 장악할수 있는 계기(카노사의 굴욕은 황제가, 아비뇽 유수는 교황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 한 사건이지요. 굴욕을 당한 주인공이 그것을 계기로 정상으로 올라섰다는것이..(황제는 당한 황제가 아니고 그 후대의 황제요, 교황은 당한 교황이 아니라 그 후대의 교황입니다.)
퍼온거야요!~
맞나 몰러...
너무 오래전 배운 내용이라...
다툼중 벌어진 일로서, 주교 선임문제를 가지고 싸우던 황제와 주교가 각각 파문과 폐위선언으로 대립하였으나, 제후들이 교황편에 붙음으로서 황제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이탈리아의 카노사성에 체재 중인 교황을 방문하고선, 카노사성 밖의 눈 속에서 3일간 서서 굴욕적인 사면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비뇽 유수는 1309년 까지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남 프랑스에 있는 작은 도시, 아비뇽으로 이전한 사건을 말합니다. 흔히 교황의 바빌론 유수라고 도 하는데요, 프랑스의 왕이였던 필리프 4세와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가 대립하던 때에 왕이 먼저 아나니 사건으로 우위를 차지했지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1305년(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기 전의 이야기랍니다^^;;) 프랑스의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왕의 간섭을 받았고, 결국 로마에 들어가지 못한태로 프랑스에 남게 되었지요. 교황은 당시 아비뇽 북동쪽에 있는 카르팡트라스에 정청을 설치, 그곳에서 살았으나, 클레멘스 6세때 시칠리아 여왕으로부터 아비뇽을 사들여 파리왕궁을 본딴 호화스러운 교황청을 구성했습니다. 그 때문에 교황청의 주요 기능은 아비뇽에 잔류하게 되었고, 그레고리우스 11세에 의해서 본격적인 로마로의 복귀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프랑스인 교황이 독자적으로 교황청 행정을 담당하였습다.
단 한마디로 말하자면, 차이점은 카노사의 굴욕 - 황제의 굴욕
아비뇽 유수 - 교황의 굴욕
이것이 되겠구요, 공통점은.. 음.. 굳이 찾는다면..
둘 다 패권을 장악할수 있는 계기(카노사의 굴욕은 황제가, 아비뇽 유수는 교황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 한 사건이지요. 굴욕을 당한 주인공이 그것을 계기로 정상으로 올라섰다는것이..(황제는 당한 황제가 아니고 그 후대의 황제요, 교황은 당한 교황이 아니라 그 후대의 교황입니다.)
퍼온거야요!~
맞나 몰러...
너무 오래전 배운 내용이라...
앗~~ㄳㄳ합니다~~!
정확한게 맞는듯..ㄳㄳ합니다~!
정확한게 맞는듯..ㄳㄳ합니다~!
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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