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조커 사회선생 님~~^^ 질문점여.
- [서경]JOKER[E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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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녀영환군~! 안녕하세요^^ ㅎㅎ 반갑습니다!
----"십자군전쟁이 이슬람교랑 누구랑싸운거죠? 이슬람교아닌가여,,?" ---
위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럽세계가 서부유럽지역(당시 서유럽은 10세기 노르만족의 침입과 관련... 봉건사회가 성립되었던 시기였었지요)과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으로 분열되어 있을 당시..
셀주크투르크(오늘날 터키..)가 성지순례자들을 박해하고 급기야 성지(예루살렘)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게 십자군전쟁의 직접적인 시발점이지요.
이때 셀주크투르크의 압박에 위협을 느낀 비잔틴제국의 황제가 로마교황에게 구원요청을 하게 되고
당시 로마교황이었던 우르반(=우르바누스)2세가 끌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을 파병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11세기~13세기(1096~1270).. 약 200여년 간에 걸쳐 크리스트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간의 일종의 종교전쟁이 시작되게 되는데..
이를 십자군 전쟁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십잔군전쟁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셀주크투르크의 성지순례자 박해 및 성지점령이지만...
당시 유럽세계의 안정,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인한 서유럽인들의 대외진출 욕구, 교황권의 확대 욕구, 상인들의 지중해 무역 장악 욕구 등
부수적인 원인도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지요.
거두절미하고~
십자군전쟁은 크리스트교 세계와 이슬람교 세계 간의 대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305년 선출된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선출된 후 70년 동안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 프랑스 왕의 지시를 받았다.
이를 아비뇽의 유수라 한다.---
위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아비뇽유수는, 십자군 전쟁이후 왕권이 강화되고 교황의 지위가 몰락하던 때에....
성직자에 대한 과세(=세금부과) 문제로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필리프 4세가 대립했던
사건으로... 이 타툼에서 교황이 패하여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로마 교황청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지뇽... 아님...^^;)으로 강제로 옮겨져 프랑스 왕의
간섭을 받게 되었던 사건을 의미합니다.
참고적으로... 교과서 밖의 역사이야기지만, 위의 사건을 역사학자들이 아비뇽 유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원전 6세기에 유대인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던 사건에 비유하여 '교황의 바빌론유수'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 되었길^^
----"십자군전쟁이 이슬람교랑 누구랑싸운거죠? 이슬람교아닌가여,,?" ---
위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럽세계가 서부유럽지역(당시 서유럽은 10세기 노르만족의 침입과 관련... 봉건사회가 성립되었던 시기였었지요)과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으로 분열되어 있을 당시..
셀주크투르크(오늘날 터키..)가 성지순례자들을 박해하고 급기야 성지(예루살렘)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게 십자군전쟁의 직접적인 시발점이지요.
이때 셀주크투르크의 압박에 위협을 느낀 비잔틴제국의 황제가 로마교황에게 구원요청을 하게 되고
당시 로마교황이었던 우르반(=우르바누스)2세가 끌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을 파병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11세기~13세기(1096~1270).. 약 200여년 간에 걸쳐 크리스트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간의 일종의 종교전쟁이 시작되게 되는데..
이를 십자군 전쟁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십잔군전쟁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셀주크투르크의 성지순례자 박해 및 성지점령이지만...
당시 유럽세계의 안정,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인한 서유럽인들의 대외진출 욕구, 교황권의 확대 욕구, 상인들의 지중해 무역 장악 욕구 등
부수적인 원인도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지요.
거두절미하고~
십자군전쟁은 크리스트교 세계와 이슬람교 세계 간의 대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305년 선출된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선출된 후 70년 동안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 프랑스 왕의 지시를 받았다.
이를 아비뇽의 유수라 한다.---
위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아비뇽유수는, 십자군 전쟁이후 왕권이 강화되고 교황의 지위가 몰락하던 때에....
성직자에 대한 과세(=세금부과) 문제로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필리프 4세가 대립했던
사건으로... 이 타툼에서 교황이 패하여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로마 교황청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지뇽... 아님...^^;)으로 강제로 옮겨져 프랑스 왕의
간섭을 받게 되었던 사건을 의미합니다.
참고적으로... 교과서 밖의 역사이야기지만, 위의 사건을 역사학자들이 아비뇽 유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원전 6세기에 유대인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던 사건에 비유하여 '교황의 바빌론유수'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 되었길^^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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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죄송해요 저떔에 치느라힘드셧죠..
햐~~조커 선생님 ~~~대단해요~~^^
와우.~~ 역시 선생님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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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알겠네요 ㅋㅋ
역시 선생님~!! 스크랩하던가 적어놔야 겠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