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태진.이철재] 지난해 12월 24일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K씨는 인근 현대차 판매점에서 2693만원 하는 싼타페(선루프.오토 포함)를 계약했다. 당시 영업사원이 "지금 계약하면 특소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차량 구입을 권유했다. K씨는 31일까지 차량 출고를 기다렸지만 결국 인도받지 못했다. 판매점에서는 4일 K씨에게 "새해 1일부터 특소세가 환원(8→10%)돼 차량 가격이 78만원 인상됐다"고 통보했다.

이어 영업사원이 찾아와 계약서 특약사항란에 고무인으로 찍은 '세금이 오르면 오른 가격에 인수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을 보여주며 재계약을 재촉했다.

K씨는 "차량을 구입할 때는 특소세 혜택만 강조하고 특약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며 "차량 출고가 늦어져 생긴 특소세 환원분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자동차 판매점과 소비자 사이에 특소세 환원분을 놓고 갈등을 빚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소비자보호원과 YMCA 소비자상담실에는 이 같은 분쟁을 상담하는 전화가 하루 수십 통씩 걸려오고 있다. 자동차 특소세는 올해부터 ▶2000㏄ 미만은 4→5% ▶2000㏄ 이상은 8→10%로 환원됐다.

소비자보호원 측은 "자동차 특소세 환원 관련 분쟁은 2001, 2003년 등에도 출고 날짜를 맞추지 못해 100여 건의 분쟁이 있었는데 최근 이 같은 분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자동차 업체는 지난달 전국 판매점에 '12월 31일까지 구입하면 싼타페는 최대 78만원의 세금 혜택이 있다'는 전단을 돌렸다. 출고가 아닌 구입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해 소비자의 계약을 부추겼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12월 31일까지 계약을 하고 출고하지 못한 차량은 ▶싼타페 3700여 대 ▶스포티지 1800여 대 ▶프라이드 500여 대 ▶SM3 1100여 대 ▶SM5 1600여 대에 달한다. 본지가 조사한 결과 싼타페의 경우 10일까지 2300여 대가 출고됐고 4300대가 출고 대기분으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생산량(월 7000대)을 감안했을 때 15일 이후 계약한 차량은 특소세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소비자는 자동차 계약서나 보험약관의 깨알 같은 글씨는 보기도 힘들지만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특소세 혜택 기한이나 출고 날짜는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한다.

자동차10년타기운동본부 임기상 대표는 "자동차 업체는 계약서만 강조하지만 소비자는 영업사원의 말을 믿고 차를 산다"며 "소비자에게 불리한 계약 내용은 작게 써놓고 설명하지 않는 판매 관행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중요한 부분은 말로 충분히 설명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보호원 김현윤 차장은 "계약할 때 특소세 환원에 대해 충분히 고지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판매점에서 계약서에 '기한 내 출고가 안 되면 소비자가 부담한다'는 내용만 써놓고 고지하지 않았다면 상당 부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달 계약하고 말일까지 출고되지 않은 차량은 특소세 환원분 보조금으로 최대 30만원까지 보상해 주고 있다"며 "일부 판매점에서 실적 때문에 무리를 한 경우가 있다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우자판 측은 "2003년에도 특소세 분쟁이 많아 계약서에 '특소세 환원 설명을 들었고 이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음'이란 고무인을 찍고 소비자에게 자세히 설명할 것을 대리점에 교육했다"고 말했다.

수입차 업체는 지난달 계약한 차는 특소세 혜택을 주고 있다. 또 크라이슬러.혼다.포드 등은 이달에도 특소세 환원 전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내수를 살린다며 특소세 환원을 놓고 오락가락한 것이 기업과 소비자에게 혼란을 준 면도 있다"며 "대중의 발이 된 2000㏄ 이하 자가용에 대해서는 특소세를 없애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진.이철재 기자 tj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