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차(Death car)'를 몰고 가는 사람들
- [서|일산]나이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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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만의 휴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려가던 당신의 차 앞으로 까만색 폰티악이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달려나간다.
그리고 언뜻 당신이 평소에 그렇게도 흠모하던 유명인이 그 차에 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흥분되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후 까만색 폰티악이 걷잡을 수 없는 불길과 함께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당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된다면 당신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차를 멈추고 불길에 휩싸인 폰티악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도 흠모하던 유명인은 이미 죽음의 문을 넘어섰고 그를 태우고 세상을 달리던 차도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엉망으로 부서져 있다.
지금 당신이 사랑하던 유명인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죽음의 차(Death car)'로 인도한다.
▲보니&클라이드의 1934년형 V-8 포드전설적인 2인조 은행 강도 였던 보니&크라이드는 베이컨과 토마토 샌드위치를 볼이 미어질 정도로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으며 루이지애나 주 북부의 기브즈랜드의 마을을 찾아 1934년형 V-8 포드를 몰고 있었다.
이 차는 원래 루스와 제시 워랜 부부의 차였지만 보니&크라이드가 이들 부부에게서 훔쳐탄 것으로 새로운 범죄를 위한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포드가 소나무 숲 아래 언덕을 천천히 지나고 있을 때 텍사스주의 기마 경관이던 프랭크 하머가 비엔빌 군의 경찰대와 함께 보니&크라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니가 제 기분에 들떠 알 수없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프랭크 하머의 산탄총과 비엔빌 군 경찰대의 라이플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보니&크라이드는 외마디의 비명도 질러보지 못한 채 즉사했다. 1934년형 V-8 포드는 무려 108개의 바람 구멍이 뚫렸지만 성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포드사가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보니&크라이드는 죽음의 차, 데스카(Death Car)에서 죽은 최초의 유명인이었다.
보니&크라이드가 처참하게 죽었음에도 사람들은 현장으로 몰려들어 조금이라도 색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닥치는대로 집어가기 시작했다.
경찰들의 신경질적인 제지에도 불구하고 부서진 차창의 유리 조각이나 피묻은 시트, 보니의 파카에 묻은 머리 카락을 떼어가는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크라이드의 귀를 떼다가 검시관에게 제지를 당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 차는 결국 본래의 소유주였던 워랜 부인이 손수 운전을 해서 고향인 토피카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들이 이 차에 아직도 죽음의 그림자가 생생하게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자동차 안에는 보니&크라이드의 뇌수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108개의 총알 구멍 사이로는 음산한 바람 소리가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두려움에 떨던 워랜 부인은 이 차를 클리블랜드의 범죄 관련품 수집광인 차알드 스탠레에게 빌려주었다.
그는 클리블랜드의 이 차를 신시내티 유원지에서 상설 전시하다가 1952년 흥행사인 테드 토니에게 14,500달러를 받고 팔았고 테드 토니는 그의 갱 영화 '칼라즈 올'을 선전하기 위해 이 차를 각지의 영화관에 전시 하였다.
테드 토니는 1967년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대 히트를 하자 다시 전국 각지에 이 차를 전시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차를 찾아온 관람객들은 차 앞에서 십자가를 긋거나 무릎을 꿇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눈물을 펑펑 흘리다가 돌아가는 여자들도 있었다.
최근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보니&크라이드의 포드는 광적인 카 매니아이며 헐리우드의 스턴트맨인 제이 오버그에게 팔려 갔다고 한다.
▲제임스 딘과 죽음의 포르셰 '550 스파이더'또 다른 죽음의 차는 '에덴의 동쪽'과 '이유 없는 반항' 등의 영화로 젊은이들의 영원한 연인이 된 제임스 딘의 포르셰 550 스파이더.
영화속에서 우수어린 눈동자로 담배를 피워물던 반항적인 이미지에 걸맞게 제임스 딘은 목숨을 걸고 질주를 하던 스피드 광이었으며 포르셰는 둘도 없는 그의 단짝이었다.
1955년 9월 30일 제임스 딘은 자동차 경주가 열릴 예정인 살라나스 공항 인근의 대회장으로 가기 위해 제한속도 90km의 거리를 150km의 속도로 달리다가 속도 위반으로 단속되었다.
제임스 딘은 살라나스 공항에서 150km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시 2백km 정도의 속력으로 달리며 경주에 참가할 자동차의 엔진 상태를 점검하고자 했다.
제임스 딘을 뒤쫓아 오던 운전자의 증언에 의하면 2백km 정도의 속력으로 달리던 포르셰가 왼쪽으로 커브를 돌려고 할 때 갑자기 반대 차선으로 달려오던 도널드 타내시드의 1950년형 포드 튜더와 정면으로 충돌을 했으며 이 사고로 제임스 딘은 목뼈가 부러져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제임스 딘의 아버지인 윈튼 딘은 허리우드의 자동차 주문 제조업자인 조지 바리스에게 포르셰를 팔아 넘겼다. 조지 바리스는 다시 그 잔해에서 사용이 가능한 부품을 모아 트로이 마크 헨리 박사에게 팔았다.
그러나 마크 헨리 박사도 다음해인 1956년 10월 자동차를 타고 가다 충돌 사고로 숨졌는데 그의 차에는 제임스 딘의 포르셰 부품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차에 대한 의구심을 다시 한 번 불러 일으켰다.
조지 바리스는 딘의 자동차에서 알루미늄 조각을 추려내 용접을 한 후 커다란 금속 덩어리로 만들어 1956년에 허리우드에서 있었던 국제 모터 스포츠 쇼에 '제임스 딘의 Death car'라는 제목으로 출품하였다.
그러나 쇼를 찾아온 손님들이 이것을 벗기거나 깍아내어 작은 조각을 만들어 가져갔으며 이 Death car의 조각은 현재까지도 제임스딘의 유품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건으로 손꼽힌다.
▲가장 잔혹한 죽음의 차휴포드 파사 보안관은 테네시주의 전설적인 보안관이었다. 파사는 190센티의 키와 113,5kg의 몸무게로 악당들과 대항하여 싸웠으며 그 댓가로 32살까지 칼에 7번을 찔리고 8번을 집단으로 구타당했으며 자동차가 전복사고를 당한 적도 있었다.
1967년에는 그를 숨어서 기다리던 악당들에게 턱이 부서지도록 얻어 맞으면서도 싸웠으나 결국 그의 아내를 잃기도 하였다.
정의의 파수꾼 파사를 죽음으로 이끈 차는 1974년형 콜베드였다. 파사는 1974년 8월 21일 맥네리아 카운티 '페어의 밤'에 참석한 후 콜베즈를 타고 고속도로를 160km 정도의 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파사는 샌드위치 조각을 입에 넣으며 그의 딸인 듀우너의 시보레 세단을 일시적으로 추월하다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도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콜베드는 갓길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뒤쪽으로 선회한 후 인도로 올라갔다.
그리고 작은 잡화점 앞의 일시정지 표지판을 부수며 빨간 점토 흙이 쌓여 있는 곳에 부딪치면서 멈춰섰다. 파사의 딸인 듀우너는 자동차 루프를 통해 차디찬 고속도로 위로 튕겨져 나간 아버지를 부둥켜 안고 비통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파사가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파사가 그렇게도 애지 중지하던 콜베드는 이미 불길마저 사라져서 시커멓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파사는 목에 심한 골절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이다.
파사의 콜베드는 현재 '세계최대 휴포드 파사 유품전'이라는 전시회에 생전에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360mm의 구두 그리고 '워킹토르'라는 영화의 소품들과 함께 전시되어 죽음의 차가 얼마나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또 다른 죽음의 차 '뷰익 엘렉트라 225'미국 프로리다 주 센트 오거스틴에 위치한 '비극 박물관' 에는 유명 여배우 제인 맨스필드의 은색 1966년형 뷰익 엘렉트라 225가 전시되어 있다.
제인 맨스필드는 1967년 6월 29일 안개가 유난히 짙었던 아침에 이 죽음의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트럭의 뒤쪽을 들이받게 된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엘렉트라의 지붕이 모두 부셔져 버린걸 보게된다면 제인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박물관에는 오스왈드가 케네디 대통령의 범행에 사용한 자동차를 비롯하여 현장으로 출동했던 구급차, 케네디 대통령이 업무에 즐겨 애용하던 리무진 등이 소중하게 전시되어 광적인 수집가의 취미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보니&크라이드를 소재로해서 만든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사용된 녹슨 포드가 구멍 투성이의 총자욱을 내보이며 말없이 전시되고 있다.
이밖에도 오스왈드의 침실가구, 옛날 스페인 형무소에서 나온 2구의 뼈, 엘비스의 유언장 복사본, 그리고 구식 고문 기구 등도 비극 박물관이 자랑하는 소장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당신의 차도 죽음의 차가 될 수 있다!반드시 운전자를 죽음의 길로 이끈 차만이 죽음의 차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1950년 중서부의 카운티 페어에서 전시된 암홍색의 1949년형 포드가 그렇다. 이 차의 원래 주인은 위스콘신 주 플레인 필드의 인육을 먹는 남자 에드 케인이었다. 영화 '사이코'는 그의 무서운 범행을 소재로 한 영화다.
에드 케인은 이 차를 타고 묘지에서 파낸 시체들을 자신의 집으로 옮긴 후 수렵육업자 배니슨이라는 이름으로 깨끗하게 포장하여 이웃 주민들에게 정중하게 배달까지 해줬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사람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전시장에 전시된 이 차는 ‘시체를 운반한 차’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최근 들어 가장 관심을 끌었던 죽음의 차는 컨트리 싱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바발 맨드레르의 은색 재규어였다. 맨드레르는 1984년 11일 테네시 주 헨다슨 빌 교외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19살의 청년이었던 화이트의 차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화이트는 그 자리에서 절명하였으며 그녀의 은색 재규어는 엿가락처럼 늘어져 테네시주 가트린 버그의 컨트리 뮤지움에 전시되어 새로운 죽음의 차로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맨드레르는 길고 긴 투병 생활을 마친 후 자신의 은색 재규어와 함께 안전 벨트 착용을 권하는 공익 광고에 출연한 후 그녀가 아끼던 또 한대의 차인 1982년형 빨간색 페라리와 함께 컨트리 뮤지움 전시장에 기증한 후 다시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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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지는 행운의 차가 되기를...
쩝.. 다 좋은 차들같은디...^^
사용자가 잘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안전모드로 항상 운전합시당~~~쿄쿄쿄 =3=3=333
우아..눈아퍼...
과속금지, 방심운전 금지
아... 눈아퍼서 못읽겠어요
안전운전, 방어운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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