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소나타 가격 1999년 1만4600달러 2009년 1만8200달러…24.7% 만 올라
같은 기간 국내 판매가격 123.5% ↑…외국서 본 손실 국내 소비자가 메워
2010년 말 미국 시장에 상륙하는 에쿠스는 우리나라보다 4000만원 가까이 싸게 팔린다.
에쿠스 기본형인 '시그니처'는 5만8900달러(약 6640만원), 고급형인 '얼티미트'는 6만5400달러(약 7260만원)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에쿠스와 같은 배기량에 비슷한 편의장치가 달린 에쿠스 VS460 모델은 한국에서는 1억900만원에 팔리고 있다. 3600만원 정도 비싸다.
왜 현대·기아차(현대차)는 우리나라에서 더 비싸게 팔까? 현대차는 한국과 미국의 세금 제도가 달라 내수가격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배기량 2000cc 이상 모델의 경우 24.3% 세금(특소세·교육세·부가세)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북미 시장은 차량가격에 따라붙는 세금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전가격으로 따져보자.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에쿠스 VS460의 세전가는 8769만원이다. 북미의 경우 동급모델인 얼티미트가 7521만원 가량이다. 세전가격을 따져도 에쿠스는 우리나라에서 더 비싸게 팔린다.
에쿠스뿐만이 아니다. 현대차는 쏘나타, 엑센트, 산타페, 그랜저, 제네시스 등 대부분의 차를 우리나라에서 비싸게 팔고 있다. 현대차는 YF쏘나타를 선보이면서 가격을 기존 모델보다 약 200만원 올렸다. 쏘나타 기본형의 미국 판매가격은 1999년 1만4600달러에서 2009년 1만8200달러로 약 24.7%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런데 같은 기간 국내 판매가격은 99년 951만원에서 지난해 2125만원으로 123.5%나 늘어났다. 아반떼 역시 국내 판매가격이 74.4% 급등했지만 미국에서는 23% 오르는 데 그쳤다. 경쟁 자동차인 르노삼성자동차는 2010년 SM5를 새로 내놓으면서 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2009년에는 철강회사 포스코가 자동차회사에 파는 자동차용 원자재(강판) 가격이 15% 가까이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쏘나타 베르나 아반떼 등의 판매가격을 두 차례에 걸쳐 14%가량 올렸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2.3%)의 여섯 배에 이른다. 이 기간 GM대우 라세티는 39만원이 내렸고 SM5는 81만원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현대차의 국내 영업이익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현대차는 우리나라에서 차를 팔아 얼마를 남기는지를 공개하지 않는다. 현대차가 국내와 해외에서 차를 팔아 번 돈(매출액)은 따로따로 공개하면서, 국내와 해외에서 차를 팔아 생긴 영업이익은 따로따로 공개하지 않고 하나로 뭉쳐서 공개하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무디스가 내놓은 현대차에 관한 짧은 보고서를 한번 보자. 2010년 상반기 현대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73%다. 매출액 가운데 우리나라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30% 정도에 그친다. 나머지 70%는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여기까지는 뿌듯해 할 수 있다. 일본 미쓰비시의 엔진과 부품을 들여와 뚝딱거리며 만든 포니로 시작된 우리나라 차가 이젠 해외에서 더 많이 팔리고 있는 점에서다.
하지만, 보고서를 좀 더 보자. 보고서는 현대차 이익의 상당부분을 내수시장에 의존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 보고서는 국내에서 버는 이익이 얼마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현대차가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얼마인지는 유추해 볼 수 있다. 현대차의 사업보고서 등의 자료를 보면, 2009년 현대차는 국내에선 5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다. 북미 2000억원, 아시아 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유럽에서 8000억원의 영업 손실을 내 해외전체로는 1000억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현대차가 다른 나라에서 본 손실을 우리나라에서 고객이 메워주는 셈이다.
이런 비즈니스가 가능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현대차의 독점 때문이다. 해외시장에서의 적자를 독점 시장의 국내에서 메우려는 탓에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의 가격 오름폭은 현대차가 기아를 인수한 뒤부터 더욱 도드라진다.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1999년)한 뒤 기아차의 부실을 털고 나서부터 가격은 급커브를 그리며 올라가고 있다. 현대차에 인수되기 전의 기아차는 동급의 현대차보다 100만~200만원 가량 쌌다. 하지만, 이제 기아차와 현대차의 가격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이 2009년 국정감사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이에 현대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해외에서 파는 자신들의 자동차의 권장가격표(MSRP· Manufacturer′s Suggested Retail Price)를 보냈다. 권장가격표에는 미국에서 팔고 있는 베르나, 투싼, i30cw가 국내보다 50%나 더 비싸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실제 구매할 때 권장가격표 그대로 돈을 주고 차를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토요타, 아우디도 권장가격표보다 1000~2000달러 깎아준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수출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한다. 그리고 렉서스의 예를 든다. 토요타는 미국시장 진출 당시 렉서스라는 별도의 브랜드를 만들어 벤츠 E클래스의 77%, S클래스의 48% 수준의 낮은 가격으로 발매해 미국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해선 세계 곳곳에 진출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이유를 내놓는다. 한국에서도 렉서스 같은 명품차를 만드는 기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럼 렉서스를 만든 토요타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토요타가 글로벌 1위에 올라선 것은 원가절감과 생산 확대였다. 역설적이게도 토요타가 글로벌 1위의 자동차 기업에서 추락하게 된 것 역시 원가절감과 생산 확대 때문이었다.
1990년대 들어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에겐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인수와 합병으로 몸집을 키웠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서였다. 자동차 회사들은 국내 기업에서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경쟁을 벌여야 했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몸집을 키워 원가를 줄여야 했다. 같은 회사의 플랫폼을 공유하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인수와 합병 대신 원가절감으로 이런 변화에 대응해 나갔다.
2000년대 초반 토요타는 10년 뒤 1000만대 생산을 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토요타의 계획은 맞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2004년 포드를 제친 데 이어 2007년 판매대수에서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인 GM보다 많은 943만대를 생산해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영광은 채 3년을 넘기지 못했다. 토요타는 리콜사태로 이미지와 판매대수 모두 추락했다.
무엇이 토요타를 1위에서 고꾸라지게 만들었을까? 바로 고객보다 원가절감이라는 가치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토요타가 렉서스를 처음 만들 때와 같은 고객가치는 원가절감 앞에 힘을 잃었다. 토요타는 원가절감을 위해 납품업자와 공장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3년 동안 원가를 무려 30% 이상 줄였다. 부품 수를 줄이고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으로 직원을 뽑았다. 이런 과정에서 품질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생산 확대 역시 마찬가지다. 인건비가 싼 해외에서 공장을 짓고 생산량을 늘려가며 글로벌 생산체제를 만들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면서 결과적으로 품질과 고객이라는 가치는 소외됐다.
물론 토요타는 원가를 낮춰 고객에게 더 싼 가격으로 자동차를 판매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할 수 있다. 하지만, 토요타가 원가 절감과 함께 판매 가격을 낮추는 노력을 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국내서는 째째한것까지 원가절감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