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나무들

심언주


나무 한 그루를 땅속에 묻었다
눈을 감고 서 있는 동안
주저앉아 울고 있는 동안
'나무'라는 글자를 눈 위에 써 놓는다
흐릿해지는 눈 속 글자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ㅏㅜ획들이 땅속으로 뿌리를 밀어 넣는다
ㄴ획이 기지개 켜며 가지를 뻗는다
ㅁ잎이 매달린다

그의 가지에서 뻗어 나간 나무들이
고개 숙인 채 이젠 보이지 않는 땅속 나무에게
낮은 소리로 무어라 한 마디씩 했다

눈이 내린다
눈 위에 써 놓은 글자를 덮는다
한겨울에 피는 잎은
산속 추위를 감당할 수 없다
그의 울음을 놓아주고 싶다

ㅁ이 지워진다
오랫동안 흔들렸던 가지
휘어질 때마다 제자리 돌아가려다
더 굽어 버린 가지
ㄴ획도 지워진다
서성이지 말고 편안히 누우라고
ㅏㅜ획들이 지워진다

눈이 내린다
땅속에 묻힌 나무도
내가 써 놓은 나무도
사라져 갔다
남아 있는 나무들이
터덜터덜 산 아래로 흩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