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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in╂∑rNⓔⓔDs

자유 천주교 수원교구 성지들입니다.

부모님이 부산에서 올라오셔서..
내일 아침 일찍부터 성지순례 다닐까 하고.. 천주교 수원교구 성지들을 찾아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여기에도 한번 올려봅니다.
내일은 좀 빡씨게 다녀야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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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배마실 은이 성지
경기도 용인군 일대에는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된 성지가 많다.
미리내 성지를 비롯하여 한덕골, 은이공소, 골배마실까지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가 이곳 용인군에 집중되어 있다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골배마실이라는 지명은 이곳이 옛날부터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서 뱀마을, 즉'배마실'이라고 부르던 동네에서 시작되는 산골짜기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골배마실 성지는 김대건의 소년시절의 향취가 남아있는 곳이요, 성소의 꿈을 키우던 장소이다. 옛날부터 신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김대건 신부의 집터가 있던 장소로 알려져 왔던 이곳은 1961년 양지 본당 5대 정원진 루가 신부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돌절구와 갖가지 생활도구, 즉 맷돌, 우물터, 구들장 등을 발견하면서 성지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2. 구산 성지
현재 급격한 도시화의 이농현상에도 불구하고, 이 곳 구산 마을은 전통적인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200여 년을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교회의 얼이 살아있는 평화의 은혜가 가득한 성지입니다. 이곳 구산 성지가 평화의 은혜가 충만한 이유는 성인과 순교를 모신 곳이지만 피 흘림의 순교지는 아니었다는데 있습니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서울에서, 8인의 순교자들은 남한산성에서 순교하신 후에 이곳 구산에 모셔졌습니다. 천상의 얼을 받으신 성인과 순교자들을 모신 곳이기에 그분들의 전구로 평화로움이 가득한 성지가 되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우리 성현들의 진리탐구 정신과 천주공경 신앙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내일의 후손들에게 계승발전 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우리 성현들의 업적이 지닌 경신예절의 종교적인 측면과 진리탐구의 학문적인 면을 발전시키기위하여 이곳 구산 성지에 순교 기념 성전과 기념관이 건립될 계획으로 있습니다.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마리아
이곳 구산성지에 세워진 성모상은 구산성지와 구산성당 초대신부(1979-1984)이며 성모님에게 특별한 신심을 갖고 계시던 故 길 홍균(이냐시오 1931-1988)신부님이 꿈속에서 알현한 성모님의 모습을 당시 서울대학교 미대학장이신 김세중(프란치스꼬)화백에게 작품을 의뢰, 김세중 화백이 마지막 작품으로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작품입니다.
왕관을 쓰시고 오른손에 지시봉을 들고 계시는 특별한 모습의 성모님은 가정과 온 인류의 평화를 기리시는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마리아"로서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하고 귀중한 성모상입니다.

3. 남양성모 성지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이름 없이 치명하신 많은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순교성지이며, 1991년 10월 7일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성모성지로 공식 선포된 곳이다. 남양 성지는 우리 나라 유일의 성모 성지이다. 원래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무명의 신앙 선조들이 순교한 순교 성지인 남양 성지는 91년 10월 7일 정식으로 성모님께 봉헌됨으로써 한국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 성지로 선포됐다.
남양 성지는 성모 성지로 선포된 후 지속적인 기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묵주의 기도 고리 운동은 현재 수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매일 자신이 약속한 시간에 15분간 5단을 바침으로써 24시간 내내 묵주의 기도가 이어지게 하고 있다. 또 1년에 두 차례씩 실시되는 피크로스(PICROS) 운동은 며칠 동안 도보 성지 순례를 하면서 끊임없이 묵주의 기도를 함으로써 희생과 고통을 봉헌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낙태죄를 속죄하기 위한 기도 모임을 매주 토요일마다 마련하고 있다.

4. 남한산성 성지
- 야외 미사터
현재 야외미사터는 성지 소성당이나 기념관터로는 부적당하지만 주변의 토지와 건물들을 매입하면 가능하다. 성지 개발 기금 마련이 시급하다.

- 소성당
성체가 현시되어 있으며 두 분의 성인 유해가(김성우-안토니오, 최경환-프란치스코) 모셔져 있고 성 지순례 미사 전례시 양형 영성체를 하고 있다.

- 포도청과 군뢰청의 순교터
현 중부파출소 부근에 옛 포도청이 있었고, 그 뒤로 군사들이 신자들을 고문하던 군뢰청(軍牢廳)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 남한산성 안의 가옥수가 1,700여 세대나 되었고, 광주 유수가 아주 넓은 지역을 다스렸던 만큼 포졸과 군사들의 수도 많았을 것이다. 신자들은 옥에서 끌려나와 이곳에서 갖가지 형벌과 문초를 받거나 장형, 백지사 등으로 순교하였다.

- 연무관
남한산성은 군사적 요충지로 병자호란 때는 인조 임금이 피신했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 연무관 앞에서는 언제나 군사들이 훈련을 하였고, 그 때마다 그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무술 연마 대상으로 삼아 목검으로 찌르고, 매로 때리곤 하였다. 그러다가 실신하면 옥으로 데려가고 죽으면 그대로 동문 옆의 수구문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 옥터
로터리 주차장 옆 천일식당 앞이 옛 옥터이다. 그 당시 옥은 네모진 가장자리에 허리춤 정도로 고랑 을 판 다음에 짚이나 숫대 등으로 대충 지붕을 해얹고, 소나무 기둥과 거적으로 벽을 만들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겨울이면 찬바람이 그대로 몰아치는 이러한 옥안에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모진 고 문과 매질로 찢기거나 피멍이든 몸으로 마지막 기도를 드리면서 순교할 그날을 기다리곤 하였다.

- 수구문과 골짜기(동문 오른쪽)
남한산성의 물이 나가던 수구문은 성안에서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의 시신이 이곳 골짜기에 버려지면서 시구문(屍軀門)이 되어 버렸다. 이제 그 흔적은 골짜기의 물과 함께 흘러가 버렸지만, 박해 시대 때는 순교자들의 시신이 수십일씩 방치되면서 사람들이 꺼려했던 곳이다. 당시 군교자들의 시신은 짐승들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때로는 그 시신이 잠자는 듯 평화스러운 모습이었다고 한다.

- 동문 밖 (현 주차장)
남한산성의 형장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한덕운(토마스)이 참수 당한 순교터이다. 이후 박해가 거 듭되면서 체포되어 오는 신자 수가 많아지게 되자, 동문(좌익문) 밖 형장 대신에 주로 성내에서 신자들을 처형하였다.

- 수어장대
남한산성의 유수가 군사를 다스리던 수어영의 높은 장대로,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서도 지도층으로 이 름이 있거나 양반인 경우에는 이곳에서 문초를 당한 후 순교자하거나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서문
서문은 한양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수어장대에서 순교한 신자들의 시신은 주로 이곳에 버려졌다.

- 저자거리
남한산성의 옛 장터가 있던 곳, 포졸들은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끌고 다니며 시위하거나 사람들을 모아놓고 처형함으로써 누구도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았다.

- 북문(전승문)과 남문(지화문)
죄인 아닌 죄인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온 문이요, 한 번 들어오면 죽어 나가야하는 문이였다.
순교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모습으로 포졸들에게 포박되어 이 문을 통과하면서 기쁨에 겨워했고, 죽어 나가면서도 하늘의 문으로 들어가는 영광에 또 기뻐했을 것이다.


5. 단내 성가정 성지
단내성지는 바로 앞에 단천(丹川)이 가로질러 흐르고, 뒤에는 숲이 울창한 와룡산이 감싸고 있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 자리하고 있는 성지이다. 또한 단내성지에는 숲이 울창하면서도 인적이 없 는 와룡산의 계곡과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총연장 5.2km의 순례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이 순례코스 는 전망이 좋은 와룡산 정상에 위치해서 이문우성인의 고향과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활동경로를 조망 할 수 있는 예수성심상과 병인박해를 전후해서 박해받는 신자들의 은신처였던 검은바위와 굴바위 그 리고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활동로를 따라 조성되었다. 산새소리와 풀벌레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리는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는 단내성지의 순례코스는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피정하는 마음으로 순례하기 에는 더없이 좋은 순례코스이다.
성가정 광장
단내성지를 감싸고 있는 와룡산 계곡 하단부에 두개의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아래의 큰 광장이 성가정
광장이다. 성가정광장 중앙에는 성가정성지인 단내성지를 상징하는 성가정상이 건립되어있다.
성 가정상에서는 가정을 위한 기도, 부부의 기도, 부모를 위한 기도, 자녀를 위한기도 등을 바치며 가정
성화의 은총을 구하게 된다.

- 순교자광장
성가정광장 위에는 이곳에서 사목활동을 하셨던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이 굽어보고 있는 순교자광장이
있다. 순교자광장에는 치옥석으로 제작된 돌제대를 중심으로 단아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야외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약 1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순교자광장에서는 규모가 큰 행사때 미사가 봉헌된다.

- 순교자 정바오로와 정베드로의 묘
단내성지의 야외광장 우측면을 감싸고 있는 오방이산 끝자락에는 이곳에서 탄생하여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정은바오로와 정베드로 순교자의 묘소가 있다.
두 순교자의 묘소는 이곳을 순례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바쳐 하느님을 사랑했던 두 분의 거룩한 삶을 숙연한 마음으로 회상하게 해 준다.

- 십자가의 길
단내성지의 야외제대 와 두 분 순교자의 묘소 뒤 쪽으로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산허리를 끼고 조성되어
있어서, 순례자들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다.
- 예수성심상
단내성지주변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와룡산 정상에 대형 예수성심상이 건립되어 있다.
야외광장에 서 15분을 걸으면 이 산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여기서는 예수성심께 가정을 봉헌하며 성가정의 은총 을 구하는 기도를 바친다. 또한 이곳에서는 탁 트인 전망 때문에 이 문우 성인의 고향인 동산리와 김 대건 신부님의 사목활동로등을 조망할 수 있다.

- 검은바위
예수성심상에서 와룡산 계곡을 따라 20분을 걸으면 정바오로 순교자와 그 가족들이 박해를 피해 숨 어 생활하며 기도했던 검은바위에 도착한다. 검은바위에는 성모동굴을 건립해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며
박해의 괴로움을 이겨냈던 정바오로 순교자와 그 가족들의 성모신심을 본받을 수 있게 했다.
따라서 검은 바위를 순례할 때에는 묵주의 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께 가정성화의 은총을 구하도록 한다.

- 굴바위
검은 바위에서 와룡산 능선을 타고 30분을 걸으면 정바오로 순교자의 가족들이 가산을 몰수당한채 추방되어 피난생활을 하던 굴바위에 도착한다. 검은바위에서 굴바위에 이르는 길은 굶주림과 추위와 두려움에 시달리며,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충실히 지켰던 선조 신앙인들을 묵상하며 순례하도록한다.

- 김대건 성인의 길
검은바위에서 굴바위를 순례하지 않고 바로 단내성지로 돌아오게 되면, 김대건 신부님께서 이곳으로 신자들을 사목하기위해 오셨다가 돌아가실 때마다 걸으셨던 “김대건 성인의길”을 걸어서 단내성지로 돌아오게된다. 그리고 이 “김대건 성인의 길”은 밤을 꼬박 새워 걸으며 몸을 아끼지 않고 신자들 을 보살피던 김대건 신부님의 목자적 사랑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순례코스 별 거리 및 소요 시간
1) 성가정상⇒십자가의 길⇒순교자묘소 : 300m/40분
2) 성지⇒예수성심상⇒성지 : 900m/40분
3) 성지⇒예수성심상⇒검은바위⇒김대건성인로⇒성지 : 2km/1시간
4) 성지⇒예수성심상⇒검은 바위⇒굴바위⇒성지 : 4.2km/2시간


6. 미리내 성지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에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종교탄압 속에서도 신앙심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 들어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주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며 살았던 곳이다.
이 성지에 미리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이 피운 불빛이 깊은 밤중에 보면 은하수처럼 보인다는 것 때문이었다.
미리내는 1883년 공소가 설치됐다가 3년 뒤인 1886년 본당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은 지난 1972년부터 시작됐다. 성모 성심 수도회와 천주 성삼 성직 수도회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을 비롯해 주차장 시설, 김대건 신부 동상, 피정의 집등이 완공됐다.
1980년 들어서는 경당 옆에 3만 평 규모로 광장을 확장하고 미리내 성당에서 경당까지 길 옆에 14처 조각을 세웠고 1987년부터 1989년까지 2년에 걸친 공사 끝에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경당에는 현재 모두 여섯 분의 묘소와 함께 김 신부의 하악골(아래턱뼈)을 모셨다. 다른 유해는 가톨릭 대학교 신학 대학(성신 교정) 성당 안에 안치돼 있다. 김 신부의 묘 역에는 한국 천주교의 3대 주교인 페레올 주교님과 미리내의 첫 주임신부인 강도구 신부, 3대 박말구 신부 등의 유해가 석관 속에 안치되어 있다.
연중 순례객이 끊임없이 줄을 잇고 있으며 천주교 신자 는 물론 비신자들도 많이 참배하여 기도를 올려서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위안을 받고 돌아가는 곳이다. 103위 시성기념성당이 1991년에 완공되었는데, 제대에는 김대건신부님의 비골(종아리뼈)이 모셔져 있고, 2층에는 박해당시의 성구형틀이 전시되어 있다.


7. 손골 성지
수원시 북쪽에 솟아 있는 광교산 동쪽 깊은 골짜기 안에 위치한 손골 성지는 옛부터 향기로운 풀이 많고 난초가 무성했던 곳으로 '향기로운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손곡(蓀谷)의 형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이룩한 교우촌으로 병인박해(1866) 때에는 10여호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손골은 주민들 사이에서 신자들의 부락 '성교촌'이라 불리어 오는데 특히 이요한, 그의 아들 베드로, 손자 프란치스코 삼대가 손골에서 살던 중 병인박해시 피신하여 신미년(1871년 3월 16일)에 순교하였다 한다(치명일기).
손골은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전교 유적지로서 특별히 성 도리 헨리꼬 신부님께서 조선에 입국하여(1865) 선교하시다가 포졸들에게 직접 체포되신(1866) 곳이다. 이곳은 1857년 페롱 신부,1861년 조안노 칼레 신부, 1863년 오 오매트로 신부 등이 입국하여 활동하던 곳이고, 조선 제4대 교구장인 장 베르뇌 시므온 주교도 방문(1861, 1863)했던 곳으로 신앙의 전통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성지이다.
손골 성지는 파티마의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관리하고 있다. 이 수녀회는 1969년 3월21일(예수 수난 주일) 이우철 시몬 신부가 창설한 방인 수녀회이다.


8. 수리산 성지
서울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안양 수리산은 예로부터 담배를 재배해 왔다 해서 ‘담배 골’ 또는 골짜기의 생김새가 병목처럼 잘록하게 좁다고 해서 ‘병목골’이라고도 불리었던 곳으로 깊은 골짜기가 많아 박해 시대 때 외계와 단절된 천혜의 피난처 구실을 해왔다. 수리산 속에 있었던 '뒷듬이' 마을은 푸른 소나무 숲 속에 숨겨진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은 땅이 척박하였으므로 담배밭을 일구고, 옹기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작은 마을이었지만, 기해박해(1839년) 때 천주교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오랫동안 교우촌으로 이어져왔다. 천주교도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이곳에 정착 이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담배를 경작했다고 하여 담배촌이라 칭하게 되었다. 수리산은 박해 시대 때 외계와 단절된 천혜의 피난처 구실을 해 왔다.
김대건 신부와 함께 한국 최초의 방인 사제로 피땀 어린 사목 활동을 폈던 최양업 신부의 부친 최경환(崔京煥, 1805-1839년) 성인의 묘가 수리산 적막한 골짜기에 모셔져 있다. 이곳에는 남부럽지 않은 집안을 일구어 오다가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향을 멀리 떠나 방랑해야 했던 그들 일가의 애환이 서려 있다. 최경환 성인은 본래 청양 다락골 사람이었다. 3대째 신앙을 지켜 왔고 지역에서 당당한 풍모를 자랑하던 최씨 집안은 장남 최양업이 신학생이 되어 마카오로 떠난 후 고발을 빙자한 수많은 협잡배들로 인해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과 함께 서울 벙거지골, 강원도 춘천 땅으로 유랑길을 나선다. 하지만 계속되는 배신자들의 등쌀로 다시 경기도 부평을 헤매야 했고 최후에 정착한 곳이 바로 수리산 깊은 골짜기였다.
1837년 7월 수리산에 들어와 산을 일구어 담배를 재배하면서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을 모아 교우촌을 가꾸면서 그는 전교 회장직을 맡아 열렬한 선교 활동을 편다. 하지만 그를 쫓는 발길은 이 깊은 산 속에까지 미쳐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기록에 보면 그는 체포라기보다는 스스로 순교의 각오로 포졸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는 어느 날 새벽 포졸들이 집앞에 들이닥치자 "어찌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직 동이 트질 않았으니 좀 쉬었다가 떠납시다."라며 동네 사람들에게 순교의 용기를 북돋는다. 그의 부인 이성례(李聖禮)가 차려 준 아침을 먹고 난 포졸들은 40여 가구에서 골고루 한 명씩을 잡아갔지만 최경환만은 아들을 유학 보냈다는 죄목으로 부인 이성례, 아들 희정·선정·우정·신정 그리고 젖먹이까지 모두 일곱 식구를 잡아가 옥에 가두었다.
1839년 9월 12일 최경환 성인은 치도곤을 맞은 후유증으로 옥에서 치명한다. 그리고 이듬해 1월 31일에는 그 부인 이성례가 당고개에서 참수된다. 어머니의 참수를 앞두고 소식을 들은 어린 4형제는 온종일 동냥한 쌀자루를 메고 희광이를 찾아가 단칼에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보내 달라며 쌀자루를 건네는 눈물겨운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당일 한칼에 목이 떨어지는 어머니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어린 자식들은 동저고리를 벗어 하늘에 던지며 어머니의 용감한 순교를 기뻐했다고 전한다.


9. 수원 성지
수원의 주요 순교 현장으로는 재판이 이루어진 동헌인 화청관, 죄인들을 잡아 가둔 곳으로 6간 초가 감옥인 현초옥, 형이 집행된 곳으로 군 사령부에 해당하는 중영이 있다. 중영이 순교장소임을 나타내는 근거 자료로는 알릭스 신부의 편지(1897), 김윤영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글(1922년 4월 29일, 5월 1일), 감리교회 회보(1937년 8월 17일) 등이 있다.
초대 유수 채제공 재직시 화성 축성에 참여한 다산 정약용(요한)은 방화수류정 서쪽 벽면에 벽돌로 십자가를 표시하여 수원 지방의 초창기 천주교의 흔적을 남겼다.
박해 기간중 수원에서의 박해가 매우 혹독하여 병인박해 이후 천주교에 대한 구전(口傳)이 사라졌으며, 종교의 자유를 획득하고 천주교가 수원에 정착(1923년 11월초 수원 본당 창설)하였음에도 박해의 영향이 사라지지 않고 미신적이 토착 신앙만이 득세함으로 첫 성당을 짓고(1932년 11월 13일 봉헌 축성)) 악의 무리를 물리칠 수 있도록 주보성인을 성 미카엘 대천사로 정하였다.


10. 어농 성지
어농성지는 을묘.신유박해 순교자 기념 성지입니다.

- 1760년 윤유일(바오로), 경기도 여주 점들에서 탄생
- 1789~1790년 밀사 윤유일이 두 차례 북경에 다녀옴
- 1794년 주문모(야고보)신부, 지황(사바)과 함께 입국
- 1795년 주문모신부 체포령이 내려짐(을묘박해 발생). 윤유일, 지황, 최인길 순교
- 1801년 신유박해 발생. 주문모신부 새남터 순교. 여회장 강완숙(골룸바)서소문 밖 순교
   동정녀 공동체 회장 윤점혜(아가타) 양근 순교
- 1987년 어농성지 축복식(김남수 주교집전)
- 1995년 주문모 신부 첫 미사 봉헌 및 윤유일 순교 200주년 기념 순교자 현양대회
- 1996년 교황청에서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7위"를 하느님의 종으로 인준, 시복 수속
   교령발표
- 2002년 어농성지 성당 봉헌식(최덕기 주교 집전). "을묘, 신유박해 순교자 기념성지"로 선포

11. 죽산성지
죽산의 순교 사화는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들뿐이다. 박해를 피해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김 도미니코의 가족이 교우인 사실을 안 마을사람 십여 명이 작당을 하고 찾아와 열일곱 된 딸을 내놓지 않으면 포졸들을 불러 몰살시키겠다고 협박, 기어이 딸을 빼앗아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60세의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한 여기중은 한 가족 3대가 한자리에서 순교했다. 또 여정문은 그 아내와 어린 아들이 한날, 한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법으로는 아무리 중죄인일지라도 부자를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처형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죽산에서는 부자와 부부를 함께 처형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죽산 관아에서 심문을 받고 끌려가 순교한 처형 장소가 '잊은 터'이다. 지금은 굴착기로 깎아 냈고 목장의 한 귀퉁이로 변해 버렸지만 목장이 되기 전에는 노송이 우거지고 길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골짜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이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송문주 장군이 지키고 있는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이진터"에 진을 친 몽고군은 송문주 장군에게 패하여 "사리틔 고개"쪽으로 패주해 달아났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도 친지도 한번 끌려가면 영영 볼 수 없는 곳, 그 참담한 비극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죽산 읍내에서 15리쯤,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그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설이 있다. 지형이 조금 도드라져 이렇게 불렸다고도 하고 땅이 진흙이어서 신을 땅에 두드려 패지 않으면 신 바닥에 붙은 진흙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두들기는 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한 많은 땅으로 변한다.
용인, 안성, 원삼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포졸에게 잡혀 가는 호송길에 이 주막거리는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되곤 했다. 포졸들은 줄줄이 묶어 둔 교우들을 툭하면 갖은 트집을 잡아 두들겨 패곤 했다. 또 뒤쫓아온 가족들은 잡혀 온 교우들이 맞는 것을 보고 땅을 두드리며 원통해 했다. 이래저래 '두들기'는 두들겨 맞는 곳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12. 천진암 성지

1. 한국천주교회창립선조 5위 묘
이벽성조를 중심으로 젊은 학자들에 의해 한국천주교회가 시작된 곳인 천진암은, 여러 역사 자료에 의하면, 천주교 강학회가 열릴 당시, 폐허가 된 버려진 암자로 소개되고 있고, 후에 다산이 쓴 시에도 천진암을 가리켜 寺破無舊觀(절은 파괴되어 옛모습을 볼 수 없구나)라고 읊은 구절이 있다. 또 강학회 이후에도 절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은 홍경모의 남한지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원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약150여년 전에 절이 완전히 없어져 그 이후로 화전논밭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논밭이 되어버린 천진암터를 1978년에 처음으로 변기영 신부가 매입하면서 본격적인 천진암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1979년에 경기도 포천군에서 광암 이벽 성조의 묘를 기적적으로 찾아 이장하였고 이후 1981년에 정약종,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 성현 등의 묘를 이장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한국천주교회창립 선조 5위 묘역이 조성되게 되었다. 5위 성현 묘역은 천진암성지의 지성소로서 경건하게 기도하고 참배하는 성역이므로, 일체의 오락과 식사가 금지된다.

2. 100년계획 천진암대성당터
성역로를 따라 300m 정도를 올라가면 약 5만여평의 광장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100년계획으로 대성당을 짓고 있는 현장이다. 천진암 대성당은 한국천주교회창립선조들의 자발적인 교회창립정신과 거룩한 순교정신을 오늘에 기리고, 또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건립되는 민족대성당인 동시에, 한민족이 대를 이어가며 건축함으로써 길이길이 민족화합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100년계획으로 건립되고 있는 성당이다.
동서남북의 길이가 각각195m, 지붕높이가 85m인 천진암대성당은. 유교의 서원과 불교의 대웅전 지붕과 처마 및 천주교회 성당의 내부 구조를 종합하여 설계되었는데, 이는 천진암이, 유교 학자들이 불교암자에서 천주교를 시작한, 儒ㆍ佛ㆍ天이 합류한 성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성당터에는 교황 요한 바울로 2세의 천진암대성당 강복문이 새겨진 머릿돌(27톤, 4m X 1.5m X 1m)과, 대성당 중앙제단에 놓일 제대석 (길이 10.5m, 넓이 2.3m, 높이1.5m, 무게 87톤)이 있다.

3. 성모경당
1988년에 터를 닦기 시작하여 1999년에 축성식을 가진 성모경당은 (240평, 폭20m, 길이 40m, 천장높이15m) 약 1000여명의 신도가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경당으로서, 20여년간의 천진암 성역화 사업과 수많은 공사 중에, 무엇보다도 인사 사고가 없도록 특별히 보호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모님께 봉헌한 경당이다. 이 경당은 대성당이 지어지는 동안 다목적 용도를 겸하여 어머니성당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4. 박물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역화를 계기로, 신앙선조들의 여러묘소 발견, 발굴, 이장, 각종 유물과 친필, 관계 고문서 수집 및 103위 시성 추진 자료, 200주년 기념관계자료, 등 한국 천주교회의 소중한 유물과 자료들을 수집하여, 보다 안전하게 보전하고, 체계있게 정리, 전시,활용케 하기 위하여, 1980년대 초부터 추진되어 온 천진암 천주교 박물관은 1992. 2. 15 김남수 주교님에 의해 정식으로 승인을 받았다.
박물관 건물은 1988년 터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지난 1997년에 기초공사를 완료하였고, 조만간 본건물을 올릴 계획이다. 현재, 박물관 옆에 위치한 임시 전시관에 창립선조들의 묘 이장과 관련된 유물 일부가 전시되어 있어, 순례자들이 미리 신청을 하면 관람할 수 있다.

5. 조선교구 설립자 묘 ; 성정하상, 유진길의 묘
이땅에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해 수차례 북경을 다녀오고 조선교구의 설립을 위해 헌신하신 성정하상과 성 유진길의 묘가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묘역 앞에는 정하상 성인 기념비를 세울 계획이며, 또한 경기도에서 건립한 청소년 야영장이 바로 앞에 있다.
[서경]in╂∑rNⓔⓔDs

아들래미 지금 초등학교 2학년~

이넘이 5살때, 차를 몰고 싶어 하길래, 대학생이 되어야 운전면허 딸수 있다고 하자,

"스포티지 대학교 가면 내가 가질거야!~" 하길래 OK한것이 코가 끼었죠.

몇년 남은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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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서경]쭘마
미리내성지는.. 저희 시댁 다녀옴시롱 길 막힐때 지나오는길목에 있습니다.
미리내성지가시는 길이 안성으로 가실꺼면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약간의 고사태라... 조심을 하시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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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2005.08.05.
크리스마스는 절에서
저는 성당에 가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맘이 좋지 않을때는 울 티지에서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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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8
2005.08.05.
[서경]대검중수부
울엄니께서도... 지난주에 수녀님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성지순례 다녀오셨답니다...
아... 성당가야 하는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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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2005.08.06.
[서경]베루토[JH]
천주교 신자분들이 꽤 계신것 갔군요...
위 12개 성지중에 세군데(남양성모성지,미리내성지,천진암성지)는 가 보았네요..^^

아~~저두 성당 가야 하는데....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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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
200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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