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B·GPS 무분별 차량장착 400만대::)

병원 직원 강병수(32·고양시 일산구)씨는 지난 2005년 자신의 리갈 승용차에 부착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주행중 시청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제정이 추진중이란 말을 듣고 당황했다. DMB가 운전에 위험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불법인지는 몰랐던 것. 강씨는 “업체에서는 광고도 하고 잘 팔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불법이라니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올해 과속단속 등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위성수신장치(GPS)를 구 입한 택시 운전기사 이석준(43·서울 강동구 성내동)씨도 법규정을 모르긴 마찬가지. 이씨는 “안전운전에 도움이 되고, 다른 택시들도 달고 다닌다”며 “이런 것이 불법이라면 법을 아예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GPS와 DMB, 내비게이션 등에 관한 도로교통법의 관련 규정이 현 실과 괴리된 상태로 4년째 방치되고 있어 이들 장치를 장착한 운전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현재 GPS 장착 차량은 160만대, 내비게이션(DMB포함) 설치 차량은 240만대 가량으로 각각 추산 돼 모두 400만대 가량의 차량이 사실상 불법 운행중인 셈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제49조 1항 4호)은 속도측정기기를 탐지할 수 있는 장치(GPS)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 자동차에 설치 된 외장형 GPS는 모두 불법부착물이 된다. 다만 자동차에 내장된 DMB는 주행 중에는 작동이 안 되도록 출고되기 때문에 합법적이지만, 상당수 운전자들은 이 내장형 장치를 주행중에도 작동할 수 있도록 개조해 불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차량 출고 후 추가 설치하는 DMB의 경우 대부분 주행중에도 TV시청이 가능하도록 개조돼 사고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이 같은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법규 모호·인력 부족·운전자들의 저항 이유 등을 들어 사실상 단속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윤성철 혜화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장은 “단속 대상이긴 하지만 단속여부에 대한 경찰청 차원의 공문이 내려온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현실적으로도 단속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

다.

박찬숙 의원과 김충환 의원(이상 한나라당)이 각각 내놓은 차량 내 GPS 등 부착물 합법화와 운전중 DMB 시청 금지 등을 핵심 내 용으로 2004년, 2005년에 각각 발의한 도로교통법개정안은 여전 히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운전 중 휴대전화 이용은 법적으로 규제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위험한 것으로 지적되는 ‘주행 중 DMB 시청’은 규제 법규가 존재하지 않아 단속을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김인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운전자는 전방주시의무가 있는데 DMB를 시청하면 전방주시율이 50% 이하로 떨어 진다”며 “외국은 기술적이 가이드라인도 있고 법도 있지만 한 국은 미비하다”고 말했다. 최근에 크게 유행중인 5~7인치 대형 내비게이션은 아예 법에 조항이 없다. 정보통신 기술발전으로 내비게이션과 GPS, DMB 일체형도 판매되면서 관련 산업도 팽창하고 있으나 이 역시 관련 규정이 없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산자부나 정통부는 관련 산업을 육성 하라고 하는 데 비해 도로교통법에서는 규제하려고 해서 관련 업계도 혼란에 빠져 있다”며 “교통안전과 산업 현실을 반영한 법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재권·조성진기자 gjac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