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전인 2001년 9월, 전 세계가 9.11 테러로 들썩이고 있을 때 우리 가족은 다른 문제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가장이고 남편이며 아빠인 내가 '금연'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듯한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당시 4살이었던 딸 하영이는 아빠의 선언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엄마의 표정과 말투를 흉내 내고 있었다.

"정말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실패하는 거 아니야. 민선씨 욕심 부리지 말고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또 실패하면 창피하잖아."
"아빠 정말 할 수 있어? 이번에는 정말 할 거야?"

'담배를 끊는다'는 말을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이렇듯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연' 결심을 밝힌 것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금연'을 선언한 것이 최소한 5번은 넘었다. 결혼하면서부터 시작된 '금연'에 난 번번이 실패만 하고 있었다.

처음 금연을 선언한 것은 결혼을 한 직후다. 아내는 유난히 담배 연기를 싫어했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그저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비염'이라는 질병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난 '금연'을 결심 했다. 비염은 호흡기 질환으로 담배연기와는 서로 상극이다.

그러나 금연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식사를 하고난 후에 담배를 물지 못하면 왠지 속이 더부룩했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도 담배가 없으면 왠지 불안했다. 그리고 가장 큰 걸림돌은 술자리였다. 술과 담배가 언제부터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술만 한잔 들어가면 담배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영향도 있었다. 주변에서 함께 부딪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애연가'였다. 마지못해서, 끊기가 힘들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담배를 끊을 이유를 전혀 찾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더 산다고 그 좋은 담배를 끊으려 하느냐?"
"스트레스 왕창 받는 것이 담배피우는 것 보다 건강에 더 해롭다고 하더라."

이런 식이었다. 담배를 절대로 끊지 말아야 할 이유가 끊어야 할 이유보다 최소한 백가지 정도는 더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겹겹이 포진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금연'을 한다는 이유로 권하는 담배를 받지 않았을 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더라."

이정도로 거의 협박하는 수준의 말을 들으면 나 스스로도 명분을 찾은 셈이었다. '담배를 애써서 끊지 않아도 되는 이유' 또는 '한 가치만 더 피워도 되는 이유' 등. 이러다 보니 결국 3일을 채우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울 땐 구수한 맛, 지나고 나니 '악취'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양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다. '금연'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담배를 끊다가 실패하면 도리어 피우는 양이 증가한다'는 말로 금연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최소한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아내의 뱃속에 하영이가 들어서고부터 담배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아내가 있는 모든 곳이 '금연구역'이 되다보니 퇴근 후에는 거의 담배를 입에 물 수가 없었다. 자동차도 금연구역이었다. 자동차는 아내가 타고 있지 않더라도 담배를 절대 피울 수 없는 금연구역 이었다.

한 가치만 피우더라도 냄새가 차안에 배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차량용 재떨이는 동전을 담아두는 '동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재떨이에는 동전이 담겨져 있다.

하영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금연구역은 계속 지켜졌다. 뿐만 아니라 퇴근한 이후에는 몸에 배어있는 담배 냄새까지도 없애느라 애를 써야했다. 담배냄새를 풀풀 날리면서 집에 들어설때면 아내의 표정이 곱지 않았다.

그럴 때는 아내가 야박하다는 생각도 했다. 집안에서 담배연기를 내뿜는 것도 아니고 몸에 배어있는 냄새를 없애지 못하고 집안에 들어온 것뿐인데 너무하다는 생각에서다.

아내의 표정이 곱지 않았던 이유는 '금연'에 성공한 이후에야 알 수 있었다. 담배를 피울 때는 담배 냄새가 구수한 것 같았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악취였다. 특히 담배를 방금 피운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는 훨씬 더 심했다. 아내는 갓난아이였던 하영이에게 그 지독한 냄새를 맡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영이가 태어나고 난 이후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심해지면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피우는 담배 한 가치가 옆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는 그 회의가 점점 깊어졌다.

금연을 결심할 당시에 언론을 통해서 담배의 해악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해악 중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피해가 더 크다는 내용이 있었다.

2001년 9월에 '금연'을 결심했다고 아내와 딸에게 선언하기 까지는 이러한 과정이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는 사실이 날아가는 담배 연기처럼 허무하다고 느꼈을 때 금연을 선언한 것이다.

담배 피우는 꿈을 꾸기도

결국 난 금연에 성공했다. 2001년 9월부터 2006년 9월까지 담배를 한가치도 피우지 않았다. 이정도면 이젠 자신 있게 '금연에 성공했다'고 밝힐 만하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담배를 끊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난 그저 '갑자기 담배가 싫어졌다'고 대답한다. 담배를 끊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어떻게 담배의 유혹을 이겨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럴 때는 좀 장황하지만 설명을 한다. 담배를 끊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난 담배의 유혹을 운동으로 극복했다. 식사 후 속이 더부룩할 때도 운동을 했고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도 운동을 했다. 운동이라고 해봐야 특별한 것은 없다. 무조건 뛰는 것이다. 마을 옆 개천가를 많이도 뛰어 다녔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오고 땀으로 옷이 범벅이 될 때까지 뛰어다녔다.

어려움도 있었다. 금단현상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주변 사람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한가치만 피워볼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한가치가 열가치가 되고 열가치가 한 갑이 되어 다시 금연에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또다시 금연에 실패한다면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꿈을 꾸다가 깨는 일도 있었다. 이럴 때는 금단현상이 생각했던 것 보다 심하다는 생각에 혼자 웃기도 했다. 군대를 제대한 후 몇 년간을 다시 군대에 가는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이 있다. 이것과 비슷했다. 꿈에서 담배를 실컷 피우면서 '금연'에 실패한 것을 자책하다가 깨어나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꿈이었다고, 실패하지 않았다고.

담배를 끊은 지 5년이 흐른 지금은 '담배를 피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 시절이 아득하다. 10년 넘게 담배를 피워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9월의 서늘한 바람도 담배를 끊는 일에 일조를 했다. 그 바람이 없었다면 개천가를 지치도록 뛰어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과 함께 담배와의 인연은 5년 전 9월에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