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전략적 찬사’ 무조건 남는 장사 (처세술 1)
- (서경)포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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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아첨’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를 최고의 절창으로 떠올릴 것이다. 제1공화국 시절, 국부(國父)라 불리던 ‘대통령 각하’가 방귀를 뀌자 어떤 장관이 주위 사람들의 눈총에도 아랑곳 않고 “각하, 참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알랑거렸다는 것인데, 이후 이 말은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아부의 대명사가 됐다. 어디 그뿐이랴? 지금 이 순간에도 누리꾼(네티즌)들은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를 소재로 아부의 세계를 비꼬면서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다. ‘현명하고 재치 있는’ 독자들을 위해 퀴즈 하나를 퍼왔다.
○○○ 대통령이 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가 튀어나오며 말했다.
“각하! 이번 방귀는 제가 뀐 걸로 하겠습니다.”
여기서 등장인물인 ○○○과 ×××를 맞혀보기 바란다.
정답은? 물론 인터넷에 있다.
이 복잡하고 심란한 시대에 왜 갑자기 점잖지 못하게 아부 타령이냐고 언짢아할 독자들도 계실 것 같다. 하지만 아부에 대해 지금껏 아무 논의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게 아닐까? 왜냐하면 아부는 너와 나, 우리와 그들, 이곳과 저곳,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인류사회에 뿌리내린 엄연한 사회활동(심지어 동물도 아부를 한다)이기 때문이다. 그 누가 아부를 즐겨 하랴마는, 아부를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특히 아부가 우리의 인생살이를 더욱 부드럽게 하고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전략적 칭찬’이라고 설파한 리처드 스텐젤(‘아부의 기술’의 저자)의 견해를 따른다면 어느 누구도 아부와 동떨어져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하면 능력이자 처세술이고 남이 하면 어쭙잖고 비열한 행동이며, 받을 때는 달콤하지만 마지못해 할 때는 쓰디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전략적 찬사’의 단계를 뛰어넘어 삶이 곧 아부이며 아부가 곧 삶이라는 심오한 경지에 이른,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수준의 고수들도 즐비하다.
발랑대고 살랑거리며 알랑거리면서 지문이 닳도록 손바닥을 비비고, 만두를 빚으며, 김밥을 말면서 입 안의 혀처럼 굴며 비행기를 태우는 것은 아부의 기본 테크닉일 뿐이다. ‘회장님, 회장님!’을 외치면서 딸랑딸랑 “나는 당신의 종이올시다”를 맹세하는 지경을 지나면, 누가 보든 말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아부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 떨어지는’ 아부를 바라보면서 가슴을 치며 짜증을 냈던가?
왜 하필 지금 아부인가? 우리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아부의 ‘유전자’를 더욱 밝고 타인을 배려하는 상생의 씨앗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드러내놓고 아부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사회적인 고백성사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서로를 격려하고 즐겁게 해주면서 자신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칭찬’의 시대를 열어갈 것을 제안한다. 특히 진정한 민주사회가 대화와 타협을 기초로 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전략적 아부’는 더욱 중요해진다. 아무리 뜻이 다르고 상대방이 밉다 해도 이제 제발 막말은 하지 말자.
특히 서로를 ‘존경한다’는 정치인들이 솔선수범해 품격 있는 아부에 바탕을 둔 정치문화를 보여주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진실한 ‘아부의 달인’이 당선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경쟁자 비판자에게도 전략적인 칭찬을 할 수 있는 금도와 용의주도함을 갖춘 분, 나라의 자부심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협상의 달인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헛된 것일까?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에게 ‘지금’ ‘여기’서 아부를 말하는 필자의 충정은 절실하다. 감히 말하건대 ‘전략적 아부’는 삶과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다.
임정근 교수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커뮤니케이션학(석사), 사회학(박사)을 공부했다.
[주간동아 2007-03-14 09:30]
○○○ 대통령이 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가 튀어나오며 말했다.
“각하! 이번 방귀는 제가 뀐 걸로 하겠습니다.”
여기서 등장인물인 ○○○과 ×××를 맞혀보기 바란다.
정답은? 물론 인터넷에 있다.
이 복잡하고 심란한 시대에 왜 갑자기 점잖지 못하게 아부 타령이냐고 언짢아할 독자들도 계실 것 같다. 하지만 아부에 대해 지금껏 아무 논의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게 아닐까? 왜냐하면 아부는 너와 나, 우리와 그들, 이곳과 저곳,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인류사회에 뿌리내린 엄연한 사회활동(심지어 동물도 아부를 한다)이기 때문이다. 그 누가 아부를 즐겨 하랴마는, 아부를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특히 아부가 우리의 인생살이를 더욱 부드럽게 하고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전략적 칭찬’이라고 설파한 리처드 스텐젤(‘아부의 기술’의 저자)의 견해를 따른다면 어느 누구도 아부와 동떨어져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하면 능력이자 처세술이고 남이 하면 어쭙잖고 비열한 행동이며, 받을 때는 달콤하지만 마지못해 할 때는 쓰디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전략적 찬사’의 단계를 뛰어넘어 삶이 곧 아부이며 아부가 곧 삶이라는 심오한 경지에 이른,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수준의 고수들도 즐비하다.
발랑대고 살랑거리며 알랑거리면서 지문이 닳도록 손바닥을 비비고, 만두를 빚으며, 김밥을 말면서 입 안의 혀처럼 굴며 비행기를 태우는 것은 아부의 기본 테크닉일 뿐이다. ‘회장님, 회장님!’을 외치면서 딸랑딸랑 “나는 당신의 종이올시다”를 맹세하는 지경을 지나면, 누가 보든 말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아부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 떨어지는’ 아부를 바라보면서 가슴을 치며 짜증을 냈던가?
왜 하필 지금 아부인가? 우리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아부의 ‘유전자’를 더욱 밝고 타인을 배려하는 상생의 씨앗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드러내놓고 아부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사회적인 고백성사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서로를 격려하고 즐겁게 해주면서 자신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칭찬’의 시대를 열어갈 것을 제안한다. 특히 진정한 민주사회가 대화와 타협을 기초로 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전략적 아부’는 더욱 중요해진다. 아무리 뜻이 다르고 상대방이 밉다 해도 이제 제발 막말은 하지 말자.
특히 서로를 ‘존경한다’는 정치인들이 솔선수범해 품격 있는 아부에 바탕을 둔 정치문화를 보여주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진실한 ‘아부의 달인’이 당선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경쟁자 비판자에게도 전략적인 칭찬을 할 수 있는 금도와 용의주도함을 갖춘 분, 나라의 자부심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협상의 달인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헛된 것일까?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에게 ‘지금’ ‘여기’서 아부를 말하는 필자의 충정은 절실하다. 감히 말하건대 ‘전략적 아부’는 삶과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다.
임정근 교수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커뮤니케이션학(석사), 사회학(박사)을 공부했다.
[주간동아 2007-03-14 09:3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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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분들에게 잘보이고싶으나 그렇게하면 동료들사이에서 눈치보이고 이런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하겠습니다.
요즘엔 아부라기보단..립 서비스라고들 하죠..^^;;
어색하지 않은 자리에서..상대방 듣기 좋으라고 가끔씩 던지는 한 두마디는..그리 나쁘지는 않는듯 합니다..
다만 뭐든지 과할때가 문제이겠지요..^^;;
어색하지 않은 자리에서..상대방 듣기 좋으라고 가끔씩 던지는 한 두마디는..그리 나쁘지는 않는듯 합니다..
다만 뭐든지 과할때가 문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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